옛날 스님들은 결제 철이 되면 선원에 들어가 공부하고, 해제가 되면 전국 방방곡곡의 산천 경계를 두루 돌아다니며 만행(萬行)을 했다. 그래서 이런 스님들을 보통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부른다. 하늘의 구름과 계곡의 물처럼 발길이 가는대로 이리저리 흘러 다닌다는 뜻에서 부르는 말이다. 수행자는 한 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 애착이 생기니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운수납자하면 창운(昶耘) 스님이 떠오른다. 정말 바람 같고 흐르는 강물 같은 스님이다. 스님은 비행기와 관련된 항공대학교를 나와 사회생활을 하다 늦게 출가했다. 늦게 출가한 만큼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생각이 더욱 철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출가하자마자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들고 어려운 두타행(頭陀行)을 실행에 옮겼다.
스님은 손수레를 하나 준비하고 텐트도 하나 준비했다. 그리고 손수레에 간단한 살림살이를 준비하고 전국을 누볐다. 절에 들러 기도도 하고, 풀밭과 나무 밑에 앉아 참선도 했으며, 시간이 나면 시장에 가서 세상 구경도 하였다. 그리고 밤이 되면 손수레 위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만행을 하는 도중 첫 번째 겨울이 왔는데, 밤에는 무척 추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생각끝에 손수레 바닥에 석유 곤로를 설치했다. 쓸 때는 끌어내고 스위치만 넣으면 안으로 쏙 들어가는 그런 시스템이다. 간단한 음식을 해 먹을 수가 있고, 난로 역할도 하는 일석이조의 발명이었다.
창운 스님은 일부러 저녁밥은 마을에 가서 탁발을 했다. 사탄이라고 쫓아내는 기독교도도 있었고, 할 짓이 없어서 이렇게 구걸하고 다니느냐고 구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다가 불심이 깊은 재가불자를 만나기도 하였다. 그들은 따뜻한 밥도 주고 의복과 돈도 주었다. 그러나 스님은 오직 밥만 받고 돈은 절대로 받지 않았다. 스님의 탁발은 수행을 위한 것이며 밥벌이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탁발은 자기 마음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하는데 최고의 수행이라고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탁발을 하는 것은 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는 그런 수행의 과정인 것이다.
하루는 스님이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강원도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대의 차가 획 지나가는가 싶더니 저만치 가서 멈추어 섰다. 그 차는 다시 후진해 와서 스님 옆에 멈춰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님의 꾀죄죄한 옷차림과 손수레를 끄는 힘든 모습이 불쌍해 보였든지, 목욕하라면서 몇 만원의 돈을 쥐어주고 갔다. 스님은 만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지만, 그때만큼은 얼떨결에 받고 말았다고 한다.
스님은 손수레를 현암사 절 밑에 세워놨는데, 누가 자기도 그런 만행을 하려고 그랬는지 훔쳐가 버렸다. 스님은 손수레가 없어지고 나서, 이제는 기동력의 오토바이 시대를 열었다. 다른 스님들은 오토바이 타는 것을 출가수행자 위의(威儀)에 어긋난다고 해서 오토바이를 잘 타지 않는다. 그러나 창운 스님은 상관하지 않는다.
스님의 만행도 일 년 내내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 그래서 강원도에 토굴을 하나 구했다. 여름에 마을 사람들이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며 임시 거처로만들어 놓은 움막이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내려가 버리고, 스님은 그때부터 겨울내내 그 움막을 잠시 빌려 생활하는 것이다.
스님은 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아무도 찾지 않는 그 토굴에서 부처님의 원음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초기 경전들을 본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충실히 살아있는 초기 경전을 보면서 수행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다.
창운 스님은 일 년에 한번 오직 하안거만 들어간다. 요새는 ‘물이 좋은’ 선원에 방부를 들이기 위해 안거가 끝날 무렵부터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러나 창운 스님은 해제하고 나서 해동(解冬)할 무렵, 오토바이를 타고 만행을 하며 여름 안거를 살 선원을 물색한다. 들렀다가 이미 그 선원의 방부가 가득 찼으면 하룻밤 묵고 나오고, 또 산천경개를 천천히 구경하며 다른 선원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터가 좋고 자리 하나쯤 비어 있으면 선원의 관계자를 찾아가 정식으로 방부를 들인다.
스님은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선원에 들어가 참선 정진하고 있다. 세랍이 육십에 가까워지니 흰머리와 흰 수염이 보이는 창운 스님의 두타행(頭陀行)이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각오는 여전한 것 같다. ■청원 현암사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