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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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병석(病席)의 위로
부처님께 귀의한 이후 평생 교단에 공양을 올리며 수행자 못지않게 신앙의 길을 걸어오던 급고독 장자가 무거운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하인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얘야, 어서 사리불 존자님께 가서 내가 무거운 병을 앓아 지금 위독하다고 말씀드려라. 존자님을 뵙고 싶어도 찾아갈 힘이 없으니 제발 가엾게 여기셔서 집으로 좀 와주십사고 청하여라.”
이 말을 전해들은 사리불 존자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급고독 장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장자는 병문안을 온 사리불을 보자 너무나 고맙고 황송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리불은 그를 눕히며 말하였습니다.
“일어나지 마세요. 장자여, 저기 옆에 다른 평상이 있으니 나는 거기에 앉으면 됩니다. 얼마나 아프십니까? 음식을 드실 수는 있습니까? 많이 괴롭습니까?”
사리불의 따뜻한 음성에 급고독 장자는 금세 어린아이라도 되었는지 자기가 얼마나 아프며, 이러다가는 그냥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며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런 급고독 장자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사리불은 말하였습니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만약 착한 일 하나 한 것 없는 어리석은 범부라면 죽은 뒤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겠지만 장자께서는 부처님과 승단을 향한 고결한 믿음을 지니셨으니 그 믿음의 힘으로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즐거움만 생길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악한 일을 많이 하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듣지 못하여 죽은 뒤에 지옥에 날 것이지만 장자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으니 성자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범부라면 지독하게 인색하고 욕심이 많았기에 죽은 뒤에 지옥에 날 것이 걱정되겠지만 장자께서는 언제나 은혜롭게 베풀었고 선한 지혜를 지녔으니 이로 인하여 고통은 사라지고 성자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성자의 첫 번째 자리인 수다원을 얻지 않으셨습니까?”
사리불의 다정한 위로를 듣던 장자는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병석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급고독 장자는 사리불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하였습니다.(중아함경)
병문안이 끝났으니 사리불 존자는 할 일을 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리불은 장자에게 붙잡혔습니다. 급고독 장자가 자신이 언제 부처님을 처음 뵙게 되었으며, 어떤 인연으로 제자가 되었고 어떻게 부처님과 승단에 정사를 기증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장자의 이야기들은 사리불 존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귀하고 바쁘신 사리불 존자를 앉혀 놓고 뻔히 아는 이야기를 다시 되뇌는 급고독 장자에게는 그 시간만큼은 자신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부처님을 향해 품었던 장자의 그 순결한 환희심은 어쩌면 세월의 더께에 눌리고 육신의 병으로 인해 초라하게 위축되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병이 들면 아무리 자기가 열심히 살아왔어도 깊은 회한에 사무치게 되며, 선한 마음으로 지내왔던 평생의 세월이 한 순간에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되는 법이니까요.
사리불 존자는 가장 먼저 환자의 착한 일을 일일이 들어가면서 그를 힘내게 하였습니다. 위축되었던 환자는 힘을 얻었고, 자신이 지내오면서 가장 가치 있었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환자의 그 길고 긴 넋두리를 들어준 것만으로 사리불 존자는 그에게 저절로 삶에 대한 기운이 솟아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장자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제 주변에는 평생 절에 다닌 노보살님들이 계신데 절에 찾아가도 스님들의 따뜻한 시선 한번 받기 힘들다고 낮은 소리로 푸념합니다. 그러다 병에 걸려 자리보전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으로 그 절과의 인연은 끝난다고 합니다. 결국 오랜 세월 길러온 자신의 신앙에 깊은 회한을 품고서 불교에 등을 돌리는 경우까지 종종 생깁니다.
사리불 존자처럼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와서 그 손을 잡아주면서 ‘그동안 참 잘 사셨다’며 건네는 위로의 말 한 마디 듣지 못하는 우리의 ‘노(老) 신자들’. 그들은 치마불교의 장본인이 아니라 이 땅에 불교를 살아있게 해 준 급고독 장자들입니다. 그들의 정성이 소중했다면 이제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200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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