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세 약한 안산서 포교 혼신
외국인 불자에 법당 제공 감동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스님하면 보림(寶林) 스님이 떠오른다. 보림 스님은 기도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토론을 하든지 무엇이든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보림 스님하면 반짝거리는 두 눈이 먼저 떠오른다.
스님은 속리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상고암(上庫庵)으로 출가했다. 법주사 입구에서 걸어서 두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다.
상고암은 속리산 정상 가까이에 있다 보니 연탄이나 기름은 엄두도 못 내고 나무를 땐다. 그래서 스님은 출가하자마자 매일 지게를 지고 땔나무를 하며 행자 생활을 했다.
육조 혜능(慧能) 스님도 출가하기 전에 나무를 지고 저자거리를 걷다가 <금강경>의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구절을 듣고 발심 출가를 했다. 사실 공부라는 것은 앉아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른 나무를 자르고 톱질을 하고 지게질을 하는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공부는 익고 진전되는 것이다.
그렇게 상고암에서 행자생활을 한 스님은 계를 받고 얼마 있다가 중앙승가대학교에 들어왔다. 스님은 학교에서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꼬인 매듭을 푸는 ‘해결사’ 역할을 했다.
중앙승가대를 마칠 무렵, 스님들이 선원에 가네 대학원에 가네 하고 각자 길을 가느라고 바쁘게 움직이던 무렵 스님도 경기도 안산시내 한 복판에 보문선원(普門禪院)이라는 포교당을 열었다. 당시는 조계종 사태와 IMF 등으로 잘 되던 포교당도 문을 닫던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몇몇 스님들이 잇따라 포교당을 열던 때라서 도반이 또 포교당을 여는구나 하고 무덤덤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나는 포교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안산의 보문선원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는 훌륭한 법당으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서울같은 곳에 포교당을 열면 수월할 것인데, 왜 공장이 많고 불교세가 약한 곳에 포교당을 내려고 하는지 몰라 의아해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보림 스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안산은 신흥 공업도시다. 기존 틀이 잘 갖춰진 서울 등은 누가 해도 포교를 잘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안산은 포교하기도 힘들지만 그만큼 부처님 법에 목말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스님은 불교세가 약한 안산에서 새롭게 부처님의 따뜻한 자비로 모든 사람들을 품에 안고 싶었던 것이다.
스님은 개원하자마자 적극적으로 포교에 나섰다. 일반법회는 물론 어린이·청소년·거사 법회를 열고 포교에 앞장섰다. 또 ‘밝은 세상보기 봉사회’를 만들어 노인들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돋보기를 보시하는 행사를 했다. 해마다 경로잔치도 빼놓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건물 한 칸에서 시작한 보문선원은 5년 만에 건물 한층 규모로 확대됐다. 2000년 당시엔 작은 법당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대법당, 어린이법당, 청소년법당, 시민선방을 갖추었다. 양적으로만 커진 것이 아니라, 외롭고 지친 사람들이 부처님법음을 듣고 다시 미소를 배워가는 도량이 된 것이다.
얼마 전 불교계 신문에서 스리랑카나 외국인 불자 노동자들이 신행활동을 할 만한 마땅한 절이 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다른 종교의 적극적인 선교로 개종하는 사례까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불교의 무대책과 소극적인 자세로 불자들을 모두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무척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 문제가 얼마 안 있어 해결되었다. 보림 스님이 마음을 내 임대료를 대신 내고 새 법당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제는 외국인 불자들이 다른 종교 시설을 기웃거리지 않고 따뜻한 부처님의 보금자리에서 신행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무척 감명을 받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위로 갈 것이 아니라 보다 낮고 낮은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몸 부비며 존재해야 진짜 살아있는 불교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중생을 외면하고 오직 고고하게 앉아만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보림 스님과 도반이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보림 스님에게 기자가 “포교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스님은 “포교란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라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다. 비록 작은 날개 짓이지만 이 날개 짓이 모이고 모여서 커다란 바람을 만들고 태풍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