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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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원효와 장자/한국학중앙연구원
강 언덕에 어른거리는 게 소냐 말이냐

원효의 글은 비유가 풍부하고 수사가 화려합니다. 가령 <대승기신론소>나 <금강삼매경론>의 서문을 보십시오. 서로 모순되는 두 항을 설정하고, 그것들이 서로를 물고 뒤채도록 몰고 가는 그 현란한 솜씨를… 그 끝에서 우리는 사물의 대립이란 그 자체의 실상이 아니라 우리가 부여한 이름의 차이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원효의 이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미국 스토니 브룩大의 박성배 교수께서는 원효의 서문에서 “치열한 구도 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설이 어차피 방편인 이상, 발화자의 개성과 수신자의 근기에 따라 다양하고 풍부할수록 좋지 않을까요. 설법이든 화두든 맨날 같은 어투로 앵무새처럼 리피트하는 것이 더 안타깝고 쓸쓸한 일이 아닐까요.

원효, 자유로이 노닐며 익힌 불교
원효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수사품업, 유처무항(隨師稟業, 遊處無恒)’이라, 일정한 스승에 매이지도 않았고, 또 불교밖의 문헌도 거리낌없이 섭렵했습니다. 기록은 그가 “불교뿐만 아니라 참서(讖書)와 외서(外書)까지 보았다”고 하는데, 그가 불교를 그야말로 ‘노닐며(遊)’ 익혔던 흔적을 우리는 그의 문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효는 특히 장자에게 크게 빚지고 있습니다. 원효는 그로부터 철학적 통찰은 물론 상상력과 비유의 면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그 실제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앞 강의에서 원효가 화엄의 소식을 두고, “봉황(鳳凰)이 푸른 구름을 타고 올라 산악을 내려다 보는 것과 같다(若乃鳳皇翔于靑雲, 下觀山岳之卑)”고 읊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장자> ‘소요유(逍遙遊)편’의 대붕(大鵬)의 기상을 빌린 것입니다.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그 소식을 얻고 나면, 흡사 “하백(河伯)이 큰 바다에 이르러 시냇물(?) 황하가 좁았음을 겸연쩍어하는 것(河伯屆乎大海, 顧羞川河之狹)”처럼 이전의 가르침이 악착(齷齪)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적었을 때입니다. 원효는 지금 <장자> ‘추수(秋水)편’의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세상에, 황하를 시냇물이라니… 장자의 배포를 짐작하시겠습니까. 티벳쪽 청해(靑海)에서 시작해서 함곡관 근처에서 물길을 꺾어 동해로 흘러드는, 장장 5,500킬로의 긴 강을 시냇물 정도로 내리 깔아 버리다니 말입니다. 그 곡절을 알기 위해서는 제 지리한 설명보다, <장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좋습니다.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누런 황하와 푸른 바다
“가을 물 때가 되어 수많은 지류의 물이 황하(黃河)로 쏟아져 들어왔다. 탁한 물결이 사납게 넘실거리니, 저쪽 둔덕과 강섬에 어른거리는 것이 소인지 말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이 장관(壯觀)을 보고 강의 신 하백(河伯)이 ‘지상의 아름다움은 모두 나에게 있다!’고 기뻐하며 강의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북해(北海)에 다다라 동쪽을 바라보매 바다의 물끝이 잡히지 않자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망망한 대해에 한숨지며 하백은 북해의 신 약(若)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간에 이르기를, 이치를 몇개 깨치고 나면 자기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안다던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소. 또 이전에, 공자의 가르침을 깎아 내리고 백이의 절의(節義)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었는데 지금 그대의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나니, 세상에! 내가 그대의 문전에 와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두고두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뻔 했구료.”
“북해의 약(若)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 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사는 곳에 매여 있기 때문이고, 여름벌레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계절에 걸려 있기 때문이며, 짜잘한 학자(曲士)들에게 대도(道)를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배운 지식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좁은 강하(江河)를 나와, 큰 바다를 보고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으니 함께 더불어 큰 이치를 논할 만하구나.
“하늘 아래 물 가운데 바다보다 큰 것은 없으니, 온갖 개울물이 쉬지 않고 쏟아져 들어와도 나는 넘치는 법이 없고, 내 꼬리(尾閭)에서 끊임없이 물이 새어나가도 나는 마르는 법이 없다. 계절의 변화에도 동요가 없고 홍수나 가뭄은 아는 바 없어, 강이나 개울 따위의 규모와는 아득히 견줄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한번도 그것을 자랑스레 여긴 적이 없다.”
“천지(天地)로부터 형태를 얻고 음양(陰陽)에서 생명을 받은 것들 사이에서 나는, 바다란 존재 또한 커다란 산 속의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나의 하찮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내가 무엇을 뻐기겠는가. 드넓은 천지에서 나 바다의 크기란 전부를 뭉뚱그려도 큰 늪 속의 개미구멍이고, 그 바다에 둘러싸인 육지(中國)란 커다란 창고 속의 좁쌀 한톨에 불과한 것… 인류는 땅 위에 얹힌 수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인데, 거기서 또 한 개인이란 땅 위의 곡식을 먹고 배와 수레로 이동하는, 아홉 대륙(九州)의 거주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 온 생명에 비추어 그는 말(馬)의 몸에 붙은 수많은 터럭끝 하나같은 것이 아니랴.”
“옛 위대한 군주들(五帝)의 순조로운 계승이나 세 현명한 왕들(三王)의 힘든 싸움, 어진 인간들(仁人)의 가슴깊은 우려나 관료들의 근면한 노력들 또한 예외 없이 이런 터럭처럼 하찮은 것들이다. 백이(伯夷)는 이를 포기함으로써 명예로 삼았고, 중니(仲尼, 공자)는 이를 말함으로써 박식으로 삼았다. 이런 것이 다 뻐기는 짓거리로서, 불어난 가을 강물의 장관에 대해 그대가 가졌던 자만심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장자는 화엄의 선배인가
여기 오제(五帝)는 요순을 포함하여 아득한 중국의 전설시대에 불이며 농사, 의료를 일으킨 문명의 영웅들입니다. 삼왕(三王) 또한 그들을 이어 이상적인 통치를 펼쳤던 정치지도자들입니다. 또 어진 인간들이란 타인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동정심으로 사회를 개혁해보려는 뜻을 품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장자는 이 모든 노력들이 인간세(人間世)의 하찮은 노력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런 인간세의 노력들을 자랑하거나 명예로 삼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작태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럼, 어디 물어보겠습니다. 위의 북해 약의 탄식과 화엄의 소식이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토마스 머튼이 선(禪)을 일컬어, ‘불교를 아버지로, 노장을 어머니로 둔 자식’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시고, 또 주자가 중국의 대승 이래의 발전을 장자로부터 빌리거나 훔친 것이라고 혹평했던 것을 두루 참고하셔서, 이 화두를 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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