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인 종이 건네받는 순간 깨친 덕산 스님
애지중지하던 저서 ‘금강경소초’ 태워버려
요즈음 불교계의 베스트셀러가 된 <간화선>은 지난 3년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상재(上梓)된 책이다. 드디어 조계사 법당에서 고불식을 마치고 선림의 면면을 빛내고 있는 어른스님들을 모시고 불교계 및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후일담을 함께 나누었다.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말 한마디는 뒤통수를 서늘하게 후려친다.
“불조(佛祖)께 엄청난 누를 끼쳤음을 참회 드립니다.” 영원한 활구(活句)이어야 할 간화선을 시대적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선원수좌회가 찬술자가 되어 문자화시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선원장스님들의 본의와는 상관없이 사구화(死句化)시켜버린 허물이 실로 적지 않음을 통감한 한마디라고 하겠다.
송나라 당시 수행자들이 공안에 대한 ‘주석(註釋)을 버리라’는 내용을 담은 그 <벽암록>의 주석까지 암송하여 선의 본령을 헤치는 폐단을 보다 못한 대혜종고 선사가 그것을 가차 없이 불살라 버린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이미 사구화 되어버린 공안을 활구로 되살려내고자 하는 선사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선종사에는 책을 태우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가장 극적인 스토리로 책을 태운 사람은 ‘덕산방(德山棒)’의 주인공 덕산 스님일 것이다. 그는 본래 금강경의 대가였다. 자신의 저술인<금강경소초>에 대한, 하늘을 찌를듯한 자부심은 평범한 노파의 ‘교외별전적(敎外別傳的)’ 질문을 받고 완전히 한판 패(敗)한 순간 문자의 한계를 절감하고 용담숭신 선사를 찾아간다.
선사를 만나 오랫동안 이런저런 저간의 이야기를 나눈 후 방문을 나섰다. 그런데 이미 바깥은 깜깜했다. 신발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왜 다시 들어왔는가?”
“문 밖이 어둡습니다.”
그러자 용담 스님은 종이에 불을 붙여(원문은 ‘지촉紙燭’으로 표현하고 있다) 덕산 스님에게 건네주었다. 덕산 스님이 그 불을 받으려는 찰나 ‘후!’ 하고 그 불을 꺼버렸다. 그 순간 덕산 스님은 활연히 깨쳤다.
문밖이 어둡다는 말은 나의 무명(無明)을 인정하는 말이다. 또 여기서 지촉(紙燭)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지(紙)는 종이(경전)이고 촉(燭)은 불을 붙였다는 말이다. 이미 용담 선사가 경전 한 페이지를 태움으로써 무명에 가득찬 덕산의 눈을 밝혀 주었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는 복선(伏線)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아침 덕산 스님은 애지중지하던 금강경 주석서를 끄집어내어 법당 앞에 쌓아놓고는 횃불을 높이 들고서 이렇게 외쳤다.
“현묘한 변론을 다하여도 넓은 허공에 터럭 한 오라기를 둔 것이요, 세간의 가장 중요한 것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큰 바다에 물 한 방울을 던지는 것과 같다.” 말을 마치고는 다비장에서 거화하듯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 소초에 불을 붙였다.
사구(死句)는 기존의 어록해설에 의거하여 드는 공안이며, 활구(活句)는 수행자 자신의 사무침에 의하여 드는 화두이다. 조주를 찾아간 수행자에게 ‘뜰 앞에 잣나무’가 활구였다면, <조주록>을 펼치는 또 다른 수행자에게 ‘뜰 앞에 잣나무’는 사구이다. 그렇다고 해서 맨 처음 시원(始源)만 활구의 가치를 담보하라는 법은 없다. 누구든지 ‘뜰 앞에 잣나무’가 조주를 찾아간 한 수행자의 눈에 비친 잣나무처럼 그렇게 닿아올 때 그것은 여전히 활구다.
성철 선사께서 ‘문자를 보지 말라’고 한 것은 어록의 사구화를 경계한 말이다. 사구가 되느냐 활구가 되느냐 하는 것은 문자자체의 허물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이다. 설령 사구라 할지라도 그것을 활구로 바꾸어 놓는 것이 진짜 정법안(正法眼)을 갖춘(藏) 선지식의 역할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