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양식·기후 등 따라 다른 이환(罹患) 관찰
한국, 급성장에 각종 서구형 질병 두루 존재
병의 장기적인 원인(遠因)중 마지막은 치(痴) 즉 미망이다. 미망은 안개와 같아 우리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게으름과 나태심을 유발한다. 게으름으로 인해 매사 막다른 궁지에 이르러서야 허둥대게 되고 운동이나 힘든 신체활동을 많이 않으려 하고 때로는 생각하는 것조차도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힘 안들이고 손쉽고 빠르게만 해치우려 한다. 그런 행동 양식으로부터 비만과 우둔함이 초래되고 차례로 체액을 혼란시켜 각종 왜껜 장애들을 유발하게 된다.
병을 초래하는 보다 단기적인 가까운 원인 즉 근인(近因)으로는 잘못된 식습관과 불건전한 생활양식, 기후 계절적 요인, 그리고 정신 또는 혼령이 있다. 티베트의학에서는 부적절한 식습관과 생활양식이 몸과 마음의 여러 병들을 유발할 수 있음을 오래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식습관과 생활양식이 서로 상이한 사회들을 비교해 보면 사회마다 각기 조금씩 다른 이환(罹患)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티베트사람들은 버터 소금 우유 그리고 차를 통에 넣고 휘저어 만든 버터차를 너무 많이 마시는 식습관에 배어 있다. 그리고 혹한과 무더위가 교차하는 북인도의 극단적인 기후조건 속에서 망명정부를 건설하랴 오랫동안 신체적으로 고단한 삶을 부지해 왔다. 그 결과 망명 1세대 노인들에게는 고혈압 관절염 안과질환 청각장애 그리고 척추질환이 가장 흔한 병이 되었다.
그에 반해 서구인들은 사탕 초콜릿 탄산음료에 함유된 당과 지방, 전분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하고 있다. 또한 차 커피 알코올도 너무 많이 마시고 흡연율도 높다. 생활도 늘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고 긴장을 해소하거나 여유를 즐길 겨를이 없다. 도시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에 나가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지내는 탓에 운동을 할 시간이 많지 않다.
출퇴근도 대부분 차로 하기 때문에 걸을 기회가 도무지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심장질환 암 불면증 우울증 치과 질환 소화기질환 피부 및 비만 문제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적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어 왔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완성되었고 경제 사회적으로 고도 선진산업사회에 진입했으며 문화적으로 과소비 다원문화 사회로 발전하였다. 전통과 현대가 서로 충돌하며 습합되는 매우 혼란스러운 격변기의 과도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고유의 짜고 자극성이 강한 음식문화, 60~70년대 개발독재 하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억척같이 일벌레로 살아온 근대화 세대, 그리고 선대가 흘린 피땀의 과(果)로 물질적 풍요와 자유를 구가하게 된 80년대 이후의 세대들이 각기 상이한 성장환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식습관과 생활양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한 다양성 때문에 짠 음식문화에서 비롯된 고혈압과 당뇨병, 개발 시대 과도 육체노동에 기원한 관절염과 척추장애, 체식에서 고단백 육식 위주로의 식습관 변화에 따른 심장질환 암 소화기장애 및 비만, 그리고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피로 불면증 우울증 같은 각종 서구형 성인병과 신경병증들이 우리 사회에 두루 혼재되어 발호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각 문화권마다의 고유한 식습관과 생활양식을 서로 비교해 보거나 우리나라와 같이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적 성취를 이룬 다원 사회의 역학적(疫學的)추이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식습관과 생활양식이 우리 몸과 마음의 건강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몸과 마음의 세 기본에너지인 룽 때빠 그리고 왜껜의 소유형들과 위치 그리고 그 기능들을 설펴본 바 있다. 다음 회에는 그 세 기본에너지가 어떻게 식습관과 생활양식의 영향을 받아 균형을 잃고 여러 장애들을 유발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주대교수· 한국티베트의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