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참 좋은 계절에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왔다. 하기는 어느 계절 어느 날짜를 딱 집어 부처님오신날로 삼는 것은 어찌 보면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는 음력 사월 초파일을 부처님오신날로 알고 있지만 남방불교에서는 전혀 다른 날을 부처님오신날로 기리는 걸 보더라도, 어느 날이 바로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짜라고 딱히 집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확한 날짜를 확증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런 날들의 의의가 부정된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우리가 어느 날을 잡아 성인의 생신을 기념하는 데에는 날짜와는 상관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하도 일상의 살림살이 꾸려나가기 바쁘고 내 한 몸 추스르기도 버겁다 보니 미처 엄두도 못 내는 더 큰 생각과 더 큰 삶의 가치를, 성인을 기념하는 그런 날을 빌미로 해서 모처럼 되살려보는 것이다.
나고 죽는, 오고 가는 모양으로 부처님을 보려하면 결코 부처님을 못 본다고 경전에도 숱하게 얘기했다. 나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왕자로서 누리던 온갖 권세와 영화를 미련 없이 버리고 수행의 길에 나서 마침내 깨달았고 바로 그 때문에 부처님이라 일컫는 이에 대해서, 생일이니 제삿날이니 하는 것은 실상 엉뚱한 얘기이다. 다만, 우리의 분주한 마음이 늘 부처님 생각으로 살기는 워낙 어려운지라, 그렇게 날이라도 잡아놓고 그분이 열어 보인 참되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사는 길을 내 삶 속으로 가져오는 기회로 삼는 것일 터이다.
부처님의 생각과 행동을 닮아보자고 마음을 내는 순간 우리는 겁부터 덜컥 낸다. 다 버리고 출가하라고? 그 엄청난 투자가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려나? 내게 그런 능력이 있나? 그렇게 겁을 내지 말고 달려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경전에서 숱하게 일러주지만, 그런 겁을 내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겁이 나면 별로 겁 안 내고 한 걸음 부처님 생각에 다가가 흉내 내 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초파일 연등에 내 이름, 가족 이름 대신에 남을 위한 기도를 적어 매다는 것이다. 그게 내게, 내 가족에게도 훨씬 더 복되는 일이라는 게 부처님 가르침인데, 왜 우리는 그런 간단한 것조차 행하기 어려워하는 걸까? 그런 반성을 해볼 기회가 되는 것도 부처님 오신 날의 중요한 의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