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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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끝만 좋으면 다 좋다구요?
짧은 구절 하나 외기 위해 노력한 주리반특
부족함 알고 애쓴 하루하루가 깨달음의 순간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똑똑해서 부모가 뭐든 가르쳐 주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그렇지 못하여 한 두 마디 단어가 이어지기만 해도 외지 못했습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부모는 세상을 떠났고 형은 한 비구스님에게서 부처님의 가르침 한 토막을 듣고는 그 깊은 뜻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출가했습니다. 그리고 출가한 그날 밤에 삼장을 다 외웠고 깊은 사색과 선정에 잠겨 아라한을 이루었습니다. 홀로 집에 남겨진 동생은 워낙 어리석은지라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걸식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큰스님이 된 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은 거지 행색의 초라한 동생을 보는 순간 측은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형은 하루라도 빨리 동생을 깨우치려고 부지런히 가르쳤습니다. ‘내 동생은 머리가 좋지 않으니 게송 하나만 외게 하자.’
“세 가지 악한 업을 짓지 말고
세상 모든 중생을 괴롭히지 말라.
바른 마음으로 살펴서 탐욕의 대상은 공하다고 알아서
아무 이익없는 괴로움을 멀리 떠나야 하리라.”
동생은 열심히 외웠습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외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옆에서 소 치던 사람들이 그것을 외웠다가 동생이 물으러 오면 가르쳐 줄 정도였습니다.
형은 동생의 우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다른 이에게 보내보았지만 그 사람 역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동생을 절 문밖으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대체 내 머리는 왜 이리도 나쁜 것인가! 사랑하는 형마저도 나를 포기할 정도이니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할 가치도 없는 녀석이다.’
동생은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 서러움에 북받쳐 슬피 울었습니다.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의 슬픔이 부처님에게 전해졌습니다. 부처님은 그를 불러들여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난존자에게 그의 교육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아난 존자도 포기했습니다. 결국 동생의 교육은 부처님 몫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나는 먼지를 턴다. 나는 때를 없앤다’라는 두 구절만 외우거라.”
하지만 동생은 그것조차도 외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에게 먼지떨이를 쥐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절에 있는 스님들의 신발을 털어라. 그러면서 너는 ‘나는 먼지를 턴다. 나는 때를 없앤다’라고 자꾸만 생각해야 한다. 그건 할 수 있겠지?”
처음에는 신발을 맡기려고조차 하지 않던 스님들은 부처님의 의중을 알고 난 뒤에 동생에게 신발을 맡겼습니다. 그는 열심히 털고 또 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의 마음속에는 깊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외우게 하신 먼지와 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열심히 신발을 털던 그의 손이 멈추었습니다. ‘아, 그 먼지는 흙먼지가 아니구나. 욕심, 분노, 어리석음을 먼지라고 말하는구나.’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탐진치 삼독을 깨끗이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맺고 앉아 깊은 선정에 들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어리석던 동생은 아라한을 이룬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주리반특이었습니다.<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제31권>
불자들이면 누구나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무엇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경을 읽을 때마다 ‘그래, 아무리 어려운 부처님 말씀이라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는 깨달음을 얻게 될 거야. 주리반특도 해내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리반특이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는 ‘천천히 깨달아갔다’는 사실이란 것입니다.
멸시와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모자람을 절실히 깨달았고, 짧은 구절 하나를 외기 위해 온 몸으로 노력한 그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는 과정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지요. 일단 붙고 보자는 마음이 수능시험의 부정행위를 불러왔습니다. 어른들의 책임이고 사회의 책임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들 말하지요? 아닙니다. 끝만 좋다고 다 좋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 과정이 좋으면 끝이 좋은 법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는 생각을 주리반특을 통해서 해보게 됩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200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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