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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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만 채점하는 세상/최종석(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한 학생이 사지선다형 시험 문제 25개 중에서 20개는 확실히 알았기에 맞는 답을 골랐다. 그러나 나머지 5문제는 모르는 것이기에 솔직하게 모른다는 것을 표시했다. 즉 4개의 답(?) 중에서 아무 것도 고르지 않고 시험지를 제출한 것이다. 집에 돌아온 학생에게 그의 부모는 시험을 잘 보았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25문제 중에서 20문제는 아는 것이기에 답을 골라 표시했고 5문제는 모르는 것이기에 답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 학생의 부모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야 이놈아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누구한테서 배웠니? 선생님께서 그렇게 모르는 것은 표시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든? 넷 중에 맞는 답이 하나 있다는 것을 너도 분명히 알고 있지 않으냐. 그렇다면 넷 중에서 대충 비슷한 것을 찾아서 표시를 해야지, 어째 그냥 놓아두고 왔냐. 속이 터진다 속이 터져. 너같이 융통성 없는 얘가 이 험악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정말로 걱정이 태산이다. 앞으론 모르는 문제라도 제발 찍어라 알겠니?” 하면서 아이를 나무랐다.
그 학생은 부모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분명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바른생활 시간이나 윤리시간에 늘 선생님으로부터 귀가 뚫어지게 들은 것은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 학생은 담임선생님에게 자신이 한 일을 설명했다. 담임선생님은 그 학생의 설명이 다 끝나자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겠는데, 네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너도 잘 알잖니.
네가 비록 어떤 문제를 몰라서 정답을 표시할 자신이 없다고 할지라도 넷 중에 하나는 정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않니? 그렇다면 네가 아무렇게나 골라도, 정답을 고를 수 있는 확률은 25퍼센트라는 대단히 높은 확률이야.
그런데 그걸 표시하지 않고 그냥 놔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란다. 철수야, 미안하다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나만 더 말해 줄께. 너희들이 답을 답안지에 표시한 것을 채점할 때 말이다. 구멍을 뚫어 정답표를 만들어 맞는 답을 세어 점수를 먹이지 않니. 너도 보아서 알지? 그러면 선생인 나는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전혀 알 수가 없어.
나는 그저 까맣게 칠해진 것만 세어서 점수를 계산하는 거야. 마치 퀴즈놀이를 하고 있는 기분이야. 학생 하나하나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으며, 무엇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학생과 교사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전무한 거야. 나도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구나.”
위 이야기는 우리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정직을 강조하면서도 실은 요행과 부정직함을 가르치고 있는 모순에 대한 반증이다. 즉 수학능력시험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부정행위를 했다고 그 학생들을 잡아 가두고 벌을 주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사지선다형 문제 속에는 요행과 부정직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답을 하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는 사람을 키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학교교육이 대입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일어난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시험 부정사건은 오로지 ‘승자의 정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커닝과 같은 불법과 반칙을 조장하고 묵인해온 세태의 모습이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파급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목적만 달성되면 그것이 곧 정의로 간주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에서 한없이 절망할 뿐이다. 과연 우리는 수험생들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야 할 것이다.
200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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