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쇼오몽, 혹은 상(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세계는 주관이 만든 환상(三界唯心, 萬法唯識)”이라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듣고 있습니다. 강의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 뜬금없이 영화 얘기 하나를 해 볼까 합니다.
불교적인 너무나 불교적인 영화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는 1951년에 <라쇼오몽(羅生門)>이라는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대상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동시에 수상하여, 일본 영화를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소문만 듣던 그 영화를 미국에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흑백의 낡은 필름이 일반 극장 상영관 한편에서 상영되었습니다. 관객은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관심 있는 일반인 몇 명뿐이었습니다.
저는 상영이 끝나고, 그들이 하는 토론까지 다 듣고 나서, 손을 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불교적’이며, 인간 인식의 영원한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를 개관해 주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 출시되지 않은 듯합니다. 귀국 후 서울예대 영화과 강한섭 교수께 부탁하여 일본 NHK에서 방영된 것을 녹화한 테이프를 빌려 본 적이 있고, 저번 대만의 학회에 들렀다가 덤핑가로 팔고 있는 이 영화의 DVD판을 사올 수 있었습니다.
첫 장면은 폭우가 쏟아지는데, ‘승려’와 ‘나무꾼’과 ‘걸인’이 쇠락한 절터의 라쇼오몽(羅生門) 아래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나무꾼은 자신이 목격한 기이한 사태를 탄식을 섞어 들려줍니다.
서로 다른 증언들
‘나무꾼’: 숲 속을 걷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여자 모자가 떨어져 있었고, 좀 더 가다보니, 남자의 모자, 밧줄과 부적이…. 이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사무라이의 시체가 있었다. 나는 놀라서 관청에 신고했다.
장면이 바뀌어, 악명 높은 ‘산적’ 다조마루가 밧줄에 묶여 관청에 잡혀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순순히 시인합니다. 여기까지가 서곡입니다. 문제는 이 살해를 둘러싼 진실입니다. 그 사건에 개입한 사람들의 증언이 서로 너무나 달랐던 것입니다.
‘산적’ 다조마루의 증언: “그때 산들바람만 불어오지 않았어도…. 사무라이와 그 아내가 길을 가고 있었다. 사내는 걷고 여자는 말을 타고 있었는데, 산들바람이 베일을 살짝 들추었다. 거기 드러난 여자의 얼굴은 천사 같았다. 나는 여자를 가지겠다고 작심했다. 길을 막아서서 사내에게 조선산 검을 싸게 팔겠다고 유혹, 숲 속으로 끌고 가 밧줄로 묶어버렸다. 그녀는 남편이 당한 꼴을 보고, 단도를 빼들고 달려들었고, 나는 간단히 그녀를 제압하여 키스를 퍼부었는데, 놀랍게도 그녀가 나를 받아들였다. 일을 마치고 갈 길을 가려 하자, 여자가 막아섰다. ‘이리된 마당에, 두 남자를 섬길 수 없으니,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내를 풀어주고, 정정당당히 칼까지 쥐어주고 결투를 벌였다. 격한 싸움 끝에 사내를 찌르고 나서 둘러보니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절간에 숨어 있다 발견된 여인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무라이의 아내’ 마사코: “산적은 나를 범한 다음, 남편에게 조롱을 퍼붓고 나서,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남편에게 다가갔으나, 남편은 몸을 버린 나를 차가운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절망적 심정으로, ‘그런 시선을 못 견디겠어요.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라며 단도를 꺼내들고 남편에게 다가가다가, 격한 마음에 실신해 버렸다. 깨어나 보니, 남편은 이미 죽어 있었고, 나는 정신없이 강가로 달려가 몸을 던졌으나, 목숨이 모질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걸인’은 짜증을 내며, 들을수록 헷갈린다면서 투덜댑니다. 그러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승려’는 이번에는 살해당한 남자, 그 ‘사무라이’의 증언을 들려줍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요. 걱정 마십시오. 무당의 도움을 빌렸습니다.
‘사무라이’ 다케히로: “산적이 아내를 범할 때, 나는 질투를 느꼈다. 아내는 아름다웠다. 그런데, 일이 끝나자, 아내는 놀랍게도 산적에게, 나를 죽이고 자기와 함께 달아나자고 유혹했다. 이 제안에, 산적조차 놀랍고 불쾌해 하면서 부정한 아내를 벌주라면서 오히려 나를 풀어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내는 도망가 버렸다. 나는 수치와 회한에 떨다가 아내의 단도로 가슴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잊지 못한다. 앞서가는 산적의 허리를 붙들고,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가리키며, ‘아노 히토오 코로시테 쿠다사이, (저 남자를 죽여주세요) 하고 외치던 아내의 얼굴을….”
과연 진실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이 죽은 자의 독백에도 나무꾼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듭니다. “내가 본 시체에는 단도가 아니라 칼이 꽂혀 있었어!” ‘나무꾼’의 증언은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땅바닥에 있는 여인의 모자를 줍고 나서 숲 사이로 훔쳐보니, 산적은 여인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결혼해 달라고 애걸하고 있었다. 산적의 제안에 난감해진 여자는, 두 남자가 결투로 해결하라면서 남편의 밧줄을 끊어주었다. 그러나 남편은 ‘너 같은 년 때문에 내 목숨을 걸고 결투할 생각은 없다’면서 ‘네 년이 죽어라’라고 퍼붓는다. 산적도 겁이 나서 주춤했다. 그러자 여인은 둘 다에게 ‘사내답지 못하게시리’하고 비웃었고, 이 비웃음에 두 남자는 마지못해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당당하고 늠름한 결투가 아니라, 잔뜩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빙빙 도는 꼴이 측은할 지경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어쩌다 산적의 칼이 남편의 가슴에 찔렸다. 그 사이에 여자는 도망갔다.”
이쯤에서 우리는 드디어 ‘객관적 진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합니다. 그러나 안도는 아직 이릅니다. ‘걸인’은 ‘나무꾼’에게, “아직 숨기는 것이 있지? 다 털어놓지 그래”라고 다그칩니다.
그때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라쇼오몽의 뒤편에 버려진 아기가 있었습니다. 걸인이 아기의 옷을 벗기려 하자, ‘나무꾼’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걸인은 “단검을 훔쳐간 도둑 주제에…”라면서 나무꾼에게 대들지요.
걸인이 기어코 아기의 옷을 벗겨내 챙겨 떠나자, 승려는 인간 존재의 ‘거짓’에 대한 깊은 환멸에 젖습니다. 나무꾼이 아기를 데려가려고 손을 내밀자, 승려는 “아직 더 훔칠 것이 있느냐”라고 화를 냈고, 나무꾼은 자식 하나쯤 더 있어도 별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 아기를 돌보고 키우겠노라고 말합니다. 승려는 이 말에 인간에 대한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나무꾼에게 아기를 건네줍니다.
이것이 영화의 스토리, 그 대강입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