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어진 것을 잘 나누는 것은 사회를 정의롭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본이었다. 이른바 정의란 응분의 몫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재화가 무한정하다면, 욕망에 따라 나누면 될 것이다. 거기에는 싸움도, 많이 가진 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몫을 무단히 내어주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재화, 재능, 서비스가 희귀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럴 경우 강제로 나눌 수밖에 없으며, 아주 정교한 나눔의 기술이 아니고는 다툼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인류는 수 천 년 동안 어떻게 하면 만인이 승복하는 공정한 분배의 룰을 정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처럼 강제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나누어주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가장 좋은 것(socially good)’으로 꼽는 돈을 자발적으로 내 놓기도 한다. 죽은 후는 물론이고,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신체 일부를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발적 나눔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든다. 돈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지만, 결국에는 자발적 나눔이 돈보다 더 좋은 사회적 선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재화와 용역은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 마음속에 근심으로 자리하지만, 나눔은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마음의 평안으로 돌아온다.
본지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자들이 서비스, 돈, 생명, 재능을 얼마나, 어떻게 나누며 사는지 조사했다. 조사결과 불자들의 나눔 정신은 우리 국민 평균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불자들은 생명나눔에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진 것을 나누고, 빈손으로 어울리는 것, 즉 ‘나눔과 어울림’이라는 불교의 기본정신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눔은 숭고한 것이기 때문에, 인위가 개입해서는 안 되고, 선한 의지(free will)의 장터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 지배 사회에서 나눔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이게 하는 제도가 필수적이다. 개인의 자발성에 맡겨두기보다는 제도와 시스템을 정착시킴으로써 나눔이 ‘잘난 사람들만의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보편 문화로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