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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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세상보기-김징자(칼럼니스트·본지 논설위원 )
바른 ‘세살 버릇’ 왜 없을까

신세대란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앞선 세대를 향해 언제나 충격적 차별성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기존의 상식과 가치관을 뒤집고 조롱하며, 끊임없이 낯선 것을 가져와 부모세대를 놀라게 해 준다. 부모세대는 이미 낯선 것에는 거부감을 가지게 되어있으니까.
아마 역사의 발전은 그렇게 이루어져 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린이날 스승의 날 어버이날이 있는 이 5월, 가정의 달에 기성세대들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도덕적 일탈과 버릇없음, 그리고 언어의 황폐화와 대책 없는 폭력화에 난감해 하고 있다.
요즘 어른들이 당연한 변화에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최근 ‘학교경찰’을 탄생시킨 학교 폭력도 그러려니와 포르노 사진에 선생님 얼굴을 합성해 인터넷에 띄우고, 교실 TV앞에 모여 포르노를 함께 보면서 ‘선생님 섹스 한번 할래요?’라는 메시지를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에 올리는 어린이, 청소년들이라면 이를 단순한 변화로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변화의 징조라기보다 인성의 황폐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통제 불능이라는 비명이 들려오고 있다.
일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는 밥상머리 교육의 부재, 인성교육의 부재, 자녀 제일주의에서 나온 부모들의 애정과잉과 자녀를 탓하지 않는 방심에서 문제를 찾는다.
속도,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속도감이 가져오는 어지러운 사회적 과학적 변혁이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런 분석들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아무 대책이 없었고 지금도 대책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부터 동서양 어느 나라에서나 ‘세살버릇 여든까지’라는 격언과 함께 어린이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것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에서는 아기가 말을 시작할 때부터 그들의 기도문을 무조건 외우게 한다. 뜻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입에서 술술 나오게 되면 그 기도문은 그에게 평생의 지주가 되어 어느 날 문득 하나씩 깨달아 가며 종교심과 도덕심을 형성해 가게 된다. 동북아권에서는 서당 등에서 사서삼경 등 고전을 그처럼 외우도록 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지금 한국 어린이에게는 어려서부터 외워 평생 지주로 삼을 만한 그런 교본이 없다. ‘세살버릇 여든’의 교육적 격언을 실천하기 위한 장기 대책으로 한국고유의 그런 교본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하며 여기에 종교의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미래의 종교’라는 확신을 굳혀가고 있는 불교야말로 책임감을 가지고 불법에 기초한 새로운 교본마련에 눈떠 주었으면 싶다.
계 정 혜 삼학을, 연기와 육바라밀을, 평등과 자비를, 하심과 공경을, 불법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효과적인 교본 되기에 모자람이 있을까.
지금 모두 잊고 있는 ‘도리도리’ ‘짝짜꿍’ ‘부라부라’ ‘시상시상’ ‘지암지암’ ‘곤지곤지’ ‘섬마섬마’ ‘어비어비’ ‘아함아함’ ‘질라라비훨훨’은 단군십계명으로 전해져 왔던 육아를 위한 전통 교육법이었다.
아기들에게 단순한 동작과 말 속의 함의(含意)로 우주의 진리를 가르치려했던 이 ‘통견천경(洞見天經)’의 구조를 참고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화시대를 맞아 컴퓨터·인터넷 게임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어린이 청소년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불법에 기초한 교본을 지금부터라도 연구해 보면 어떨까.
200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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