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속셈읽기
홍콩이 영국의 지배 하에 있던 시절 홍콩과 중국 본토의 경계선인 심천에는 홍콩 땅 구룡반도를 향해 하나의 거대한 선전 광고탑이 서 있었다. 그 광고탑은 ‘코카콜라(coca cola)’에 대한 광고탑 있었는데, 여기서 코카콜라를 중국말로 ‘쿠쟈쿠라이(苦加苦來)’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표의문자인 중국어는 외래어를 표기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발음이 비슷해야 하고 또한 뜻이 근접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코카콜라는 서구 자본주의 상징적 제품이기에 ‘고통을 더하고, 고통이 온다’는 부정적 의미로 쿠쟈쿠라이(苦加苦來)’라고 적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코카콜라 광고문구가 중국이 개혁개방의 노선으로 전환되고 또한 홍콩이 반환된 이후에는 내용이 달라졌다. ‘고통을 더하고 고통이 온다’는 의미의 ‘쿠쟈쿠라이(苦加苦來)’가 ‘입맛에 맞고 즐겁다’는 뜻을 가진 ‘커커우커러(可口可樂)’로 바뀐 것이다. 같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그 의미가 백팔십도로 달라진 것이다.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의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급기야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를 통과 시키는 망동을 부리더니 또한 고질적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우리의 분노를 촉발시킨지 한달여가 지났다. 이제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왜곡,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일본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중국시민들이 광분하여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한일간 혹은 중일간의 불화가 불을 보듯 뻔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패쇄적 국수주의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고한 미일동맹에 바탕을 둔 패권주의의 발로이다. 여기에 맞서고 있는 중국의 입장 또한 패권주의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천안문 사태 이후 그 어떤 이유에서든 중국에서 대중시위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는 중국에 오래 머물렀던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위가 각지에서 연일 터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본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관제데모라고 치부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 정부에서 일정부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상하이(上海)와 항저우(杭州)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10만 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대규모 반일시위를 방치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속셈은 무엇인가. 이 또한 포스트 아메리카를 향한 또 하나의 패권주의가 분명하다.
사실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식민지배하에 있었던 우리 한국 사람이 갖는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소위 ‘남경대학살’로 불려지는 일제의 만행에 공분하지 않는 중국인은 드물다. 이러한 역사적 만행에 대한 필연적 악감정이 심층에 깔려있는데다 역시 역사왜곡으로 불거진 반일시위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패권야욕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 것이다.
그러나 중일간의 외교적 분쟁은 서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반일시위는 일본이 은근히 바라는 것처럼 공산당에 대한 체제도전으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소정의 목적이 달성되면 ‘쿠쟈쿠라이(苦加苦來)’는 언제든지 ‘커커우커러(可口可樂)’으로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엊그제 있었던 우리의 입장은 잊어버리고 중국의 반일시위가 마치 우리의 분노를 대신 분출해주고 있는 양 통쾌해 하고, 한국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등의 근시안적 안목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중일간의 문제는 언제든지 한중간의 문제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사 중국역사 편입이라는 ‘동북공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며, 통일한국 이후 간도문제 등 국경분쟁의 소지는 엄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 우리가 바다 건너 불구경을 즐기고 있을 수만 있겠는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은 일본과 중국이 똑같은 상대국이다.
일본과 중국은 하루 빨리 세계평화에 역행하는 패권야욕을 청산하고 역사왜곡에 대해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3국이 참여하는 역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 3국의 공통분모로 작용될 수 있는 소위 3국 불교계의 ‘황금유대’의 정신을 확대하여, 호혜협력의 강화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요, 고구려사는 우리의 역사인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사실이 사실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확한 역사안목과 역사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힘이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취직을 위한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역사교육이 전 국민의 필수가 되어야 한다. 역사적 안목을 가진 인재에 의한 힘의 축적만이 진정한 균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확고한 역사관이 없는 민족과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힘은 ‘사관(史觀)의 정립’에서 비롯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