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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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스님의 스님이야기-승범 스님 (下)/관악산 자운암 상임법사
승범 스님은 어린 나이에 조계산 물을 먹었다. 3대에 걸쳐서 스님을 배출한 집안의 사람으로서는 그리 빠른 것도 아니지만 중학교를 마치던 나이에 출가를 한 것이다. 아버지도 스님으로서 일세를 허튼 곳에 빠지지 않고 살다 가신 분이지만 그 시절 다른 많은 스님들이 그러했듯이 승범에게 그리 맑은 인상으로 남아 있지 못하다.
스님의 자녀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많은 편도 아니지만 밝지 못한 분위기가 있는 데다, 스님들은 가족을 거느리면 당연히 져야 할 부양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당시의 스님들은 삼보정재는 함부로 쓸 수 없다는 다소 궁색한 논리로 빠져나가며(?) 가족들에게 궁핍을 강요했다.
승범의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어서 혹독한 가난의 시련을 겪었다. 누구는 ‘찢어지는 가난의 시련이 없었다면 어찌 봄날의 배부른 뒤 배치는 평화로움을 알겠는가’ 라고 공부하는 소견을 읊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가난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뭔 뜻인지나 아시오?” “아, 알다마다요.”
“알기는 뭘 아라라우?” “나도 안당게 그네”
사실 그 시절엔 봄이나 여름에 들에 난 나물들을 뜯어서 간식이 아닌 주식을 삼을 수밖에 없었는데 봄에 나는 쑥이 가장 잘 먹히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쑥은 섬유소가 많아서 소화되고 남은 찌꺼기가 딱딱하게 굳기 일쑤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한 번 먹은 뒤 다시 먹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밥 먹은 뒤 배 꺼지면 안 되니까 뛰지도 말라고 하던 시절이어서 뒷간에도 가능한 한 참다가 늦게 가도록 하였다. 그 때 생긴 말이 ‘오줌은 참으면 병이 되지만 똥은 참으면 약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참고 나서 누운 똥이 잘 안 나오면 그것이 항문을 찢고 나와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인데 사람들이 물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쓴다고 하였다.
아무튼 승범 스님은 그 시절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아버지가 가신 길인 출가사문의 길로 들어섰다.
“저 사람이 혹독한 가난을 겪어서 그런지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않아. 스승인 나하고도 의견이 갈릴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내 뜻을 따를 텐데, 꼭 자기 의견을 원칙이라고 하면서 굽히지를 않아 소임 살면서 나랑 제일 의견차이가 많았지.”
은사인 선암사 주지 지허 스님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가 얼마나 원칙을 지키려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 원칙을 지키려는 자세가 그의 수행을 돋우는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스스로는 별다른 수행을 해보지 못했노라고 한다.
하지만 승범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말로는 소임을 살기는 했지만 안거기간에 선암사 상선원 칠전선원에서 철나기를 할 때와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선암사 초창기의 터전인 비로암에 살 때가 가장 뜻있는 자기 돌아봄의 세월이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는 은사스님께서 내려주신 ‘이 뭣고’를 늘 참구하고 있지만 아직 소식을 못 보았다고 한다. 육조 스님의 수행가풍을 따르고자 하는 선암사에 상주해서 그런지 존경하는 스님과 가르침을 말해보라고 하자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존경하는 분들이야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혜능 대사의 ‘본래 한 물건도 없음(本來無一物)’과 ‘선도 악도 생각 말라(不思善不思惡)’는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자 노력한다” 고 한다.
그래서 염불과 참선, 간경 등의 달라 보이는 수행문이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달리 보여도 결국 그 목표와 결과는 ‘자기성품 제대로 보기인 견성(見性)’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며 살며시 웃는다.
그렇게 번지르르하게 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좀 이야기해 보라고 말하자 “아, 있는 그대로야 어디 내뱉을 게 있소?” 한다.
승범 스님은 지허 스님의 지도를 받아서 옛 출가자의 전통가풍을 이어받고 있다. 선·조사 및 현재 수행하고 있는 태고종의 스님들이 보수전통의 수행자라는 점을 강조하기에 상좌인 그는 우리 것 익히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참선 수행에서 간경 및 염불 수행까지 수행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것에서부터, 칠전선원을 중심으로 내려오는 선다(禪茶)의 법제(法製), 물푸레나무를 태워서 들이는 승복의 먹물 입히기 등 이미 대다수 스님들이 기억 저편에 던져버린 것들을 차곡차곡 익혀 왔다.
그런데도 여러 가지 사정상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스님의 그것을 다 익히기가 쉽지 않다며 안타까워한다.
200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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