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의 큰 별 숭산 스님이 입적했다. 고봉 선사를 통해 전해 온 임제종의 법맥을 전해받은 조사로서 국제 포교에 다른 이가 이룰 수 없는 큰 족적을 남기시더니, 그 발자국을 거두고는 그렇게 여여하게 가셨다. 세상에 많고 많은 눈 푸른 선지식이 있겠지만 숭산 스님처럼 그 깨달음의 빛을 온 세계에 펼치신 분도 드물기에, 우리는 그 큰 깨달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또 가신 뒤의 빈 자리를 크게 느낀다.
그러나 숭산 스님의 가신 빈자리는 오히려 충만한 빈자리다. 정말 이름 그대로 눈푸른 납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텅빈 충만함을 이룬 숭산 스님의 생애는 깨달음이 한갓 머물러 안주하는 자리가 아님을 보여준 생생한 증언이요, 스스로 낮아짐으로써 더 없이 높아진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 분의 가르침을 이은 한 눈푸른 납자는 한국불교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오로지 한국에서만 큰소리치는 이유를 “한국 스님들은 너무 높아요!”라는 한마디로 갈파했다. 이 말은 숭산 스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시고 외국인들 속으로 파고 들으셨던 그 족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스스로 높임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외국 생활의 밑바닥부터 체험하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가르침을 전했던 스승의 자취를 드러내 주는 이 한마디는 우리 한국불교의 국제화에 큰 시사를 주는 말이다.
단순히 국제 포교에 한정된 말이 아니다. 숭산 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한국불교는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내가 깨달았다고 외치는 데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빛을 드러내는 삶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임을 새겨야 한다. 그러한 사실을 숭산 스님은 쉴없는 국제 포교를 통해서 입증한 것일 따름이다.
스님께서는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 청산유수(靑山流水)니라”라는 송을 남기셨다지만, 우리는 새김 없는 새김으로 스님의 큰 부촉을 읽어야 한다. 한국불교의 세계화가 물결을 타는 이 즈음을 맞아 보이신 원적 또한 우리들에게 말없는 부촉을 내리신 것이 아닐까. 그 부촉을 새삼 무겁게 받드는 마음으로 숭산 스님의 깨달음과 업적을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