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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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려장’ 누구 책임인가/이문재(시인 )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중학교까지는 고향에서 다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대처로 나가, 서울에서 대학 졸업장을 받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다. 든든한 직장을 잡고, 서른 살이 넘기 전에 결혼해 아이는 둘만 낳고, 월급의 일부를 차곡차곡 모아 삼십대 중반에 집 한 칸 장만하면 그럭저럭 중류층의 삶을 사는 줄 알았다.
내 삶은 이 땅의 산업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나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나오는 즉시 사회에 진출했다. 20대 후반에 결혼해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월급을 모아 1990년대 중반, 그러니까 결혼 10년만에 서울 변두리에 있는 25평 형 아파트 한 채를 구했으니, 나는 ‘40대 평균인’에 해당한다. 물론 고향은 시골이고, 부모님께서 마지막까지 고향집을 지키다 돌아가셨다.
이농향도나 핵가족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고 ‘압축 발전’이라고 불리는 가파른 산업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은 늙으신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였다. 새벽에 전화를 받고 고향집으로 달려갈 때마다 산업화의 비인간성을 절감했다. 연로하신 부모님를 모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산업화 정책이었는데도 국가는 잘난 체만 했다. 국가는 연간 수출 증가액이나 국민소득을 내세울 뿐, 가족의 해체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단절은 전적으로 그 부모와 자식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노인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려다 들통이 나자 아버지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아들이 구속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치매에 걸린 부모들이 유기되는 경우는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노인들이 유기되고 있는 것이다. 어디 노인들뿐이랴. 이혼이 급증하면서 버려지는 어린이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는 산업화가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의 성과를 구가하고 있는 국가는 도시화와 핵가족화의 그늘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 버려지는 노인과 어린이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의 깊고 큰 그늘이다. 노인을 버리는 자식, 어린이들 버리는 젊은 부모들을 탓하기는 쉽다. 하지만 비난은 비난에서 그칠 때가 많다. 비난이 비판으로, 비판이 대안으로 이어지려면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고 그것을 공유해야 한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를 추진해온 근본 동력은 경제 논리였다. 노인을 버리는 자식이나 어린 자식을 버리는 젊은 부모들을 패륜으로 몰고가는 것은 대부분 ‘돈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신(新) 고려장’에 대해 나는 함부로 입을 열기가 힘들다. 신 고려장이 줄어들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모아 놓은 재산이 없는 노인, 직장에서 쫓겨난 중년, 세금조차 내기 어려운 자영업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 학비를 대기 힘든 청소년들…. 세계화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예견했던 ‘20 대 80의 사회’(직장을 가진 20%와 직장이 없는 80%로 이루어진 사회)가 눈앞에 있다. 빈부 격차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고령화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국가가 나서야 한다. 가족의 희생을 요구한 국가가 노인과 어린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신고려장의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최근 들어 노인분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있다. 이 참에 노인분들께 감히 당부하고자 한다.
부디 구시대적인 색깔논쟁, 보혁논쟁을 접고, 노인 복지 대책에 초점을 맞춰 주었으면 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생애를 마감할 수 있는 제도와 시설을 하루빨리 마련하라고 정부를 닦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노인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노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 사회 전체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200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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