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다. 반면 근대 생명과학의 역사는 수백 년도 채 되지 못한다. 더욱이 물리나 화학보다 단순한 서술식 학문인 생물학의 역사는 몇 십 년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왓슨과 클릭에 의해서 기본적인 핵산 구조가 밝혀짐으로써 생겨난 분자생물학의 덕분이다. 어쨌든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한 지식의 축적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그 영역의 확대 역시 눈부신 것은 사실이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무렵 그 당시 생물학적 지식에 있어서 독일에서는 우생학이란 것이 첨단과학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란 좋은 자질을 지닌 부모로부터 나온다는 식의 지극히 간단한 당시의 첨단 유전학적 지식에 의거한 관점이었다.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열등한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제거하거나 출산을 막아야 한다는 사고가 대두됐던 것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견해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잘 연결되면서 히틀러 정권은 그 시대에 잘 나가는 과학자의 견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인종 소탕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한편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물리학계의 천재로 인정된 아인쉬타인에게 당시 들어왔던 제안을 지금 살펴보면 참 우스운 것들도 많다. 이스라엘의 대통령 자리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천재 학자라고 정치를 잘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는 왜 그러한 이야기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람은 생각하는 주체로서 스스로 의미(相)를 부여하는 동물이다. 만들어진 의미는 또 다른 의미를 재생산하면서 연쇄적으로 퍼져 나아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이 부여한 의미의 의미도 모른 채 그것에 휩쓸리어 그 안에 갇혀 스스로 옭아매는 경우가 많다.
생명체는 주위 환경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자신 만의 내부 세계(internal images. 우리가 지닌 사상四相)를 형성하고, 외부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는 그러한 자신의 내부 세계를 통과하여 여과된 형태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 밖에서 들어오는 정보나 과학적 지식이란 것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요즈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가 뜨거운 생명윤리나 혹은 개인의 판단에 있어서 우리가 지닌 이러한 속성에 대하여 심사숙고 없이 그저 표면적으로 보고 들리는 것에만 의거함으로서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던 과거의 모습을 또 다시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생명의학의 지식도 변화한다. 변화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생명의학이라면 지금의 지식만으로 우리 삶을 규정하는 판단을 성급히 내려 행동한다면 위의 우스꽝스런 예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유행하고 잘 나아가는 각종 이미지(相)에 대해 현혹되거나 부화뇌동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리를 지켜 주인 됨을 지켜 나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안목을 지닌 불자로서의 몫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