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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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황제를 두들겨 패다/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선문답중 황제 될 사미 뺨 때린 황벽 선사
훗날 황제에게 ‘깡패스님’ 시호 받을 뻔

중국역사에서 왕권과 교권은 협력관계인 동시에 긴장관계였다. 그런 까닭에 출가자가 왕에게 예의를 어떻게 갖출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교단을 유지해야만 하는 선지식어른들의 화두이기도 했다. 고지식한 율사인 여산혜원 스님은 원칙론에 입각해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子論-사문은 설사 왕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절을 해서는 안된다)’을 저술하여 왕과 출가자의 관계를 이미 정립해 놓은 터이다. 인도에서는 종교인인 브라만 계급이 정치인인 크사트리아 계급 위에 있으니 왕에게 절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왕 위에 하늘 이외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황제를 ‘천자’라고 부르는 문화권이다. 따라서 출가자 역시 당연히 신하로서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강요당해야 했다. 이 와중에서도 스님들은 불법에 의거하여 출가자의 정체성 확보를 위하여 알게 모르게 왕권과 늘 줄다리기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신심있는 왕이 등장하면 바라문처럼 살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면 훼불 내지는 법난을 당해 수드라 계급처럼 숨어서 지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염관선사 회상에서 황벽 스님이 공부할 때 일이다. 한 사미승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미는 당나라 훼불의 주역인 무종을 피해서 절로 도망쳐 온, 뒷날 선종황제가 될 인물이었다. 선사가 열심히 목탁을 치면서 예불을 지극정성 올리고 있는데 이것을 곁에서 보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제왕학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또 게다가 절집풍월까지 이미 얻어들을 만큼 들은 처지였기 때문이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승(僧)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라고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어디에다가 예불을 하십니까?”
아니! 이것 봐라. 머리에 삭도물도 안 마른 놈이 제법 질문을 할 줄 아네. 그렇다면…
“불에도 법에도 승에도 구하지 않고 늘 하는 예불을 하고 있을 뿐이니라.”
사실 선문답은 여기서 끝났다.
사미가 알아듣고서 한소식 해야 하는데 엉뚱한 소리를 또 하는 것이었다.
“예불은 해서 무엇합니까?”
그러자 황벽 스님은 할과 방이 필요한 순간인지라 그 사미승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각본대로 하면 ‘그 사미는 그 순간 깨쳤다’ 하고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스님께서는 후학을 너무 거칠게 다루십니다.” 이제부터는 피차 중생놀음으로 전락해 버렸다.
“얻어맞아도 싼 놈이 무슨 거칠게 다루니 마느니 할게 있느냐? (입은 살아가지고)” 그리고는 연거푸 두 대 더 때렸다. 도합 석 대였다.
뒷날 그 사미는 선종황제로 즉위하였고 황벽 선사 역시 한 산중의 방장이 되어 법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황제의 자격으로 선사에게 시호를 내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릴 때 절에서 지낸 인연으로 신심은 여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그 스님에게 얻은 맞은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추행사문( 行沙門-정말 거칠었던 스님)’이라고 호를 지었다. 점잖게 표현한 ‘추행사문’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깡패스님’쯤 될 것이다. 그 때 마침 재상인 배휴 거사가 이 교지를 받아들고서 깜짝 놀라 이렇게 간언하였다.
“세 차례 때린 것은 삼제(三際) 즉 삼세 동안의 번뇌를 끊어주려고 하신 자비행이오니 호를 단제(斷際)라고 바꾸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사에게 얻어맞고서 업장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더니 배 정승의 안목쯤 되니까 이렇게 둘러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황제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한 까닭에 황벽 스님에게 ‘추행’이 아니라 ‘단제’라는 시호가 내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낄낄낄. 그러게 아무나 두들겨 패는게 아니라니까.
200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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