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매일신보’에서 ‘석가여래상의 미남석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경주남산에 있던 불상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뒤 총독부관저에 모셔진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총독부박물관에서 이 불상이 총독부 관저 안에서 비바람에 방치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 불상을 옮겨서 여러 가지 대형사건이 터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 불상을 통해서 기독교 장로 대통령에 대한 불교계의 불편한 심정이 표출된 것이다.
2005년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이 불상을 전시하기 위한 협의 과정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이 불상의 어깨 부분에 금이 가고 균열이 생겨서 대여가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또다시 불교계는 어떤 상황인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어느새 청와대 불상은 통치자와 불교계의 미묘한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인연을 따라 청와대에 모셔진 이 불상은 정치적인 상징성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에 구중심처, 그 가운데 임금의 침전에는 백성들이 계절별로 농사짓고 길쌈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인 경직도병풍(耕織圖屛風)이 설치되었다. 이는 임금님이 항상 드나들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잊지 말고 정치에 힘쓰라는 교훈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불상 역시 임금 침전의 경직도처럼 대통령이 불교계의 염원을 헤아리기를 바라는 상징이 된 것이다.
원래 이 불상은 경주 도지동에 있는 유덕사(有德寺)라는 절에 모셔진 것이다. 유덕사란 신라시대 태대각간(太大角干) 최유덕이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절이다. ‘매일신보’의 기사에서 ‘미남석불’로 칭한 이 불상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 전성기 때의 이상적인 형상과 조화로운 비례를 갖춘 조각이다. 지금은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4호지만, 보물로 승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품인 것이다.
최근에 촬영한 사진을 보니, 이 불상은 보호각에 안전하게 모셔져 있다. 다만 자연풍화로 인하여 어깨에 금이 가고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고 한다. 더 이상 손상이 없도록 보존처리를 철저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불상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면서 불교계의 염원이 담긴 상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