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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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래의 신상(身相)은 신상이 아니다
원효가 낙산사서 관음보살 만난 이야기

강의를 듣던 외국인 학생들이 묻습니다. “원효 스님은 한국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불교학자요, 실천가라면서요. 그런데 왜 관음보살을 친견하지 못하셨나요?”
원효의 생애나 일화는 손에 꼽을 만치 적습니다. 그나마 그 가운데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지요.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 그리고 그 절로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원효 이야기가 실린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낙산의 두 큰 성인(洛山二大聖)’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강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의상이 동해의 동굴에서 수도하다가 일주일 만에 관음을 친견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스님은 관음이 지시한 자리에 낙산사를 세우고, 받은 염주와 보석을 안치했습니다. 지금의 낙산사가 바로 그곳입니다.

월경대 빤 물을 먹으라니
원효도 관음을 친견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떠났는데, 어느 교외 논에서 흰 옷을 입고 일을 하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원효는 여인에게 수작을 걸었던 모양입니다. “그 벼, 나 좀 주지?” 여인은 흉년이라 벼가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작업이 잘 안되자 실망한 원효는 다시 길을 갔고, 다리 밑을 지나는데, 또 어느 여인이 개짐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짐이란 말이 좀 생소할 터인데, 여인들이 매달 걸리는 마법(?)을 옛적에는 매달 거친다는 뜻에서 ‘달거리’라고 했고, 그때 쓰는 천을 개짐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튼 그 쑥스러운 장면을 그냥 지나쳤으면 좋으련만, 스님은 또 짓궂게 여인에게 물 한 잔을 떠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인은 그런데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표주박으로 그 빨래하던 물을 떠다 스님에게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아마도 화를 내면서, 그 물을 홱 내버리고, 위쪽 상류의 깨끗한 물을 떠다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소나무 위에서 새 한 마리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제호(醍 )를 마다한 화상아!” 제호란 넥타라고 번역하는, 신선들이 마시는 감로수를 말합니다. 놀라 둘러보니, 새는 물론 그 여인도 간 데가 없었습니다. 다만, 신발 한 켤레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지요.
낙산사에 도착해서 보니, 관음보살 상 앞에 신발이 놓여 있었는데, 얼마 전 본 바로 그 신발이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만났던 여인이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효는 그 동굴에 들어가 살아있는 보살의 모습을 친견하고 싶어했지만, 그때마다 파도가 높게 들이쳐서 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제가 좀 보태고 각색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한국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원효가, 누구보다도 먼저 관음보살을 친견했을 그 분이, 정작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와야 했느냐는 것입니다.

프로이트와 조셉 캠벨의 통찰
그 전에 이렇게 핀잔을 주는 분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야? 떠도는 이야기들을 실어놓았을 뿐인데…. 혹은 저자인 일연의 창작인지도 모르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야기나 설화는 철학적 저술이나 종교적 교리 못지않은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허투루 보아서는 안됩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조셉 캠벨이라는 신화학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는 <천의 얼굴을 한 영웅>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진실을 다양한 형식으로 드러내는데, 그런 점에서 할머니 무릎에서 듣는 이야기와 복잡 정교한 철학, 그리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신화, 꾸민 픽션인 소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은 철학보다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신화와 우화, 이야기와 소설에 담겨 있는 진실이 더 진실하고 구체적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수많은 황당하고 비실제적인 이야기들, 일연 자신은 ‘빠뜨린 사실들(遺事)’이라고 하나, 상상과 사실이 뒤섞인 이 이야기들이 그 어느 철학이나 논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왜 원효는 관음보살을 친견하지 못했을까요.” 기존의 정치적 해석은 이렇습니다. 원효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당시 불교계 전체가 그를 시기하고 미워했고, 그런 나머지 이런 ‘덜떨어진 원효’ 이야기들을 만들어 유포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의상이 귀족 출신이었고 원효가 육두품 출신이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여기, 무엇보다 원효가 정통불교도 상에 걸맞지 않게, 술을 마시고 잡배들과 어울리며, 아내와 자식까지 얻은 파천황의 행태가 보태지면, 이런 해석은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정치적 해석보다 더 근본적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원효의 이야기는 불교가 알리고자 한 근본적 지혜, 바로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원효가 관음보살을 친견하는데 실패한 두 가지 사례를 잘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부터 볼까요. 원효는 개짐을 빤 물을 받아 마시기를 ‘거부합니다.’ 저번 강의에서 본 대로, 인생에는 더럽고 깨끗한 것이 섞여 있으며, 우리는 선인과 악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깨끗한 것만을 찾아, 이웃과 환경을 돌아보지 않게 될 것이며, 악을 박멸하고 선을 보존하기 위해 독선과 전쟁을 날로 일삼게 될 것입니다. 그 일상화된 비극, 역사의 고통은 우리의 무시이래의 분별(分別)로부터 연유된 것입니다.

영웅적 수용에 대하여
더러운 것을 마시고, 낮은 자리에 기꺼이 처하는 영웅적 자세 없이는 관음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원효의 이 일화는 그 어려운 결단이 지혜의 근본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원효의 눈을 가로막는 파도는 바로 그 저항, 즉 운명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오랜 저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항의 습성을 줄이십시오. 어쩔 수 없는 조건은 수용하고, 불필요한 저항은 줄이는 것이 불도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그 영웅적 수용(the heroic acceptance)이 웰빙, 잘 사는 길의 요체입니다.
의식무의식적 저항을 줄이면 안팎이 평온해집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훨씬 너그러워집니다. 작은 일에 화를 내는 횟수가 줄어들고, 내 시선 밖에서 사물을 보는 눈이 자랍니다. 그때 여러분 또한 들에서 일하는 여인이 작업(?)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이웃으로 친구로, 나아가 부처와 보살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희구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항과 희구의 파도가 잠잠해질 때, 관음보살은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니, 그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눈먼 욕망과 분별의 파도로 하여 가까이 있는 그분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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