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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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선사들의 어머니/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대선사들의 어머니라고 해서 ‘보통엄마’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촛불을 끈 채 떡을 가지런히 썰어보이면서 아들을 훈계하거나, 맹자의 어머니처럼 이사를 세 번씩 해가며 아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어디 아무 엄마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동산양개 선사와 그 어머니가 주고받은 편지글을 초발심자들에게 읽어주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곤 하는 명문(名文)이다. 인정머리없이 집나간 아들의 두 통 편지와 그 아들을 늘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한 통 편지가 전부이지만 그 내용이 주는 무게는 경전 한 질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너는 어미를 버릴 뜻이 있으나 어미는 너를 버릴 마음이 없다. 한번 네가 타지로 떠난 뒤로부터 밤낮으로 눈물을 뿌리면서 괴로워하고 괴로워했다. 이미 고향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으니 곧 너의 뜻을 따르겠다. … 다만 목련존자와 같이 나를 제도하여 윤회에서 해탈시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진데 깊은 허물이 있을 것이니 명심할지니라.”
아들은 수행자랍시고 재가자인 어머니보살에게 법문하는 형식이고, 어머니는 인정을 억누르고 마지못해 승화시킨 사랑과 함께 ‘쥐꼬리만큼’의 신심으로 ‘아들법문’을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스님아들’을 감싸 안고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맹모삼천지교’를 능가하는 교과서적인 선사의 어머니들도 있다. 출가한 자식이 수행을 열심히 하여 부모를 구제해주기를 발원한 조동종의 석창법공 선사의 모친이 바로 그런 분이다.
하지만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오랫동안 천동사 굉지 선사 밑에서 크고 작은 소임들을 보면서 사판(事判)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못마땅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출가한 것은 본래 생사를 해결해서 부모를 제도해주기 위함인데, 대중을 위해 소임을 맡아보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구나. 어쨌든 인과를 밝히지 못한다면 그 화(禍)가 나중에 지하에 있는 내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명심하고 명심하여라.”
그 순간 석창법공 선사는 다시 발심해 정진의 길로 나섰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황벽 선사의 어머니는 보통엄마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반대로 아들은 매몰찬 수행자의 표상이다. 희운 선사가 수천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황벽산에 주석할 때 얘기다. 그 때 노모가 의지할 곳이 없어 아들을 찾아오게 되었다. 선사는 그 말을 듣고서 전 대중들에게 모친에게 물 한모금 쌀 한톨도 주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노모는 하도 기가 막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다가 대의강가에서 배가 고파서 엎어져 죽었다. 그런데 그날 밤 선사의 꿈에 모친이 현몽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너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먹었던들 다생으로 내려오던 모정의 정을 끊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쫓겨나올 때 모자지간의 깊은 애정이 다 끊어져 그 공덕으로 죽어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너의 은혜는 말할 수 없구나.”
황벽 스님은 무엇이 출가자의 효도인지, 왜 세속의 정을 끊어야 하는지를 참으로 몸으로 실천해보인 본보기요 만세의 귀감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추상같은 황벽 선사를 참문한 진존숙 선사는 반대로 효자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는 황벽 선사를 친견하고 나서 안목이 열린 이후에 완전히 세상을 등지고서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 은둔하며 모친을 모시고 평생 짚신을 삼고 이를 길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살았다. 이런 그를 사람들은 그의 성을 따와서 ‘진 짚신스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출가자란 인정과 도심(道心) 사이에서 늘 줄다리기를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200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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