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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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교황이 남긴 것과 남은 자의 몫
바티칸국의 수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위독하다고 하더니 마침내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온 세계의 보도매체들이 연일 장례절차를 보도하고 교황의 업적을 되새기는 기사를 보내주고 있다. 가히 전 세계가 추도의 물결에 휩싸였다고 할 만하다. 각국의 정부 수반이 다투어 애도의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되는 바티칸국의 수장이 서거한 데 따른 외교적 조치라고 볼 수도 있겠고, 세계 각지의 가톨릭 신자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애석해하며 슬픔에 잠긴 것은 해석이 필요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밖에도 종교를 불문하고, 또 문화권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것은 범상한 일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로마 가톨릭과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는, 심지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종교와 지역의 사람들, 나아가 그런 문제와 특별히 관계가 없는 일반인들도 널리 추모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그것은 교황이라는 직위의 제도적인 권위와 무게, 중요성 같은 것과는 별도로, 요한 바오로 2세의 행적과 사람 됨됨이가 널리 존경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으로 즉위한 뒤의 행적에도 그의 신념과 됨됨이가 그대로 묻어나지만, 그 이전의 숱한 일화들이 교황의 법복이라는 무거운 옷과 무관하게 그가 얼마나 인자하며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가 일생을 바쳐 실현하고 확산시키고자 애쓴 가치는 평화와 화합, 사랑, 특히 낮은 곳의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었다. 누구나 그런 가치를 구호로 외치기는 쉽다. 그러나 자기의 삶 자체를 그 가치를 구현하는 데 받치고, 어떤 위치에 있건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권한과 힘을 부단히 이를 위해 쏟아 붓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현실의 정황에 비추어보면 실현하려는 그 가치는 너무나 막막하고 멀어, 그 점을 생각하면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삶을 통해 그 가치를 구현하고자 부단히 애쓰고 또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켜 그 길로 인도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것은 그러한 삶의 전범이다. 거기에서 애써 정치적, 경제적 의미를 끄집어내어서 폄훼할 수도 있고 또 사실 그런 의미도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튼 그러한 삶의 전범은 각자의 작은 몸뚱이를 추스르는 데 급급한 우리 살림살이를 되돌아보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을 받아 삶의 목표와 추구할 큰 가치를 정립하고 이웃에게, 제자에게, 자녀에게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들 몫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는 학생들 손으로 여러 보도매체가 운영된다. 전통적인 모습의 신문도 여럿 발행되고 인터넷 보도매체도 여럿이 있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서도 교황 서거 소식을 다루지 않는 것을 보고 내심 놀라웠다. 주로 학생회의 투쟁 기사에다가 도서관 문제니 식당 문제니 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 것들도 정의(正義) 실현의 문제이니 직접 관련된 당사자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 서거 소식이야 일반 보도매체에서 계속해서 자세하게 전해주고 있으니 굳이 학생들의 보도매체에서까지 다룰 필요는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가 평생 동분서주하며 우리에게 새삼 가르쳐준 그 큰 가치 앞에 가져다놓으면 등록금 인상 문제라든가 성적 나쁘게 받은 과목의 수강기록을 취소할 수 있는 제도라거나 학교식당 밥값과 밥맛 문제는 참 얼마나 초라한 정의인가. 조금만 눈을 열면 그걸 알아차릴 텐데 그러지 못하는 근시안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들 시야 속에 잡히는 바로 옆의 성인(聖人)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다.
200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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