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학은 과학 철학 그리고 종교가 한데 어우러진 하나의 통학문적 성격을 지닌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그에 더하여 티베트의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분야는 천문점성학이다.
티베트의학에서는 어떤 특별한 약물을 조제할 때나 약초의 채취시기, 뜸 같은 치료법을 시술할 때 꼭 점성학을 따진다. 그래서 매년 멘치캉(티베트의학천문성산대학)에서는 티베트 력의 달력을 발행하여 임상에 참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국티베트의학원에서도 수 년째 멘치캉으로부터 티베트 력을 받아보고 있다. 티베트에서는 모든 약이 티베트 불교의식에 따라 예불과 함께 부처님께 봉헌된다. 따라서 티베트의학의 의술활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종교적 수행이자 방편인 것이다.
티베트의학은 위장병 관절염 천식 피부병 간질환 신장병 심혈관질환 불면증 불안신경증 그리고 중추신경계 관련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에 잘 듣는다. 만성질환의 증상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부터 도려내는 것이다. 질병의 근원을 치료하지 않으면 마치 병든 나무의 뿌리는 그대로 놓아두고 이파리와 가지만 잘라내는 꼴이 된다.
그래서 그 뿌리는 언제라도 다시 병든 잎과 가지로 무성한 나무로 자라날 것이다.
어떤 여자는 수년 째 악성 편두통으로 고생해 오며 통증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진통제에만 의존해 왔다. 그러다보니 계속 진통제의 양만 늘어가고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았다. 편두통의 근원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오랫동안 고생해 오던 만성 변비증이 그 뿌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비증을 치료한 결과 편두통도 말끔히 사라지게 됐다. 만성 질환들이 모두 티베트의약으로 금방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장기간 약을 꾸준히 복용하다보면 비로소 병이 뿌리부터 치유되기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티베트불교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확산되면서 티베트의학에 대한 열기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래서 티베트의학을 직접 공부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역시 언어적 장벽 때문에 주저앉고 만다.
티베트의학의 기본 교과서인 <사부의전>도 영문으로 완역되어 있지 않는 상태다. 1부 <근본의전>과 2부 <논설의전>정도가 다람살라 멘치캉의 정규과정을 마쳐 티베트의사 면허를 취득한 베리 클라크(Barry Clark)에 의해 최근에야 번역되었다. 머지않아 남은 3부 <비결의전>과 4부 <후속의전>도 번역되면 티베트어를 통하지 않고도 티베트의학을 좀 더 심도 있게 접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그러나 티베트의학과 같이 전통이 전혀 다른 문화권의 문헌들을 다른 말로 제아무리 잘 번역해 놓은들 어디 원전만 같겠는가! 극도로 축약되어 있어서 한 소절(송)만 풀어쓰려 해도 수 쪽의 지면이 필요한 마당에 말이다. 한 문화권의 원전들을 본의의 왜곡이나 훼손 없이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되살려 놓으려면 양쪽 문화에 정통하고 두 언어 모두에 능통한 전문 인력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특히 전통의학이라는 특수 분야에 있어서는 의학용어의 이해와 번역에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티베트의학은 티베트불교와 전통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이해와 관심이 확산되면서 세계 지성계로부터 집중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고 있다. 티베트인과 동문화권 사람들만을 위한 권역 전승의학이 아니라 지구촌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누리게 될 세계 주요 전통의학으로서 인류의 건강과 복리 증진에 머지않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대증요법을 기반으로 한 서구 현대의학은 전일의학이자 예방의학적 성격이 강한 티베트의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의학 역시 엄밀한 과학성을 생명으로 눈부시게 발전해 온 현대의학으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병의 치유와 고통 제거라는 공통의 목표와 가치를 위해 두 의학은 서로 상호 보완하는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