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크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썼다. 그는 원시시대의 인간은 자연 속에 살면서 나무열매를 따먹고, 사냥을 하며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인간사회에 씨족, 부족국가가 생겼고, 또 근대국가로 이행되면서 땅을 많이 차지한 국가, 개인과 땅이 없는 국가, 개인 간에 불평등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우리나라의 남녀 불평등문제에 대입시켜 볼 수도 있다.
유사이전에는 모계 중심사회였다. 그런데 농경사회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힘든 일은 남성이 하고, 비교적 쉬운 일(가사)은 여성이 하면서 어려운 일을 한 남성이 사회의 중심축에 진입했다. 거기에다 남존여비의 사회질서를 강조한 유교문화가 이 땅에 뿌리를 내렸고 그 후 일제식민지, 전쟁. 경제개발 등 시대적 아젠다(Agenda)가 진행되면서 남성중심사회는 ‘굳혀진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여성들에게 사회진출의 문을 열어 놓지도 않으면서 여성을 ‘암탉’ 운운으로 폄훼하면서 여성의 능력, 자질을 일방적으로 평가 절하시켰던 것이다.
사실 헌법상에는 남녀평등이 시퍼렇게 살아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은 취업, 고용조건, 사회적 역할에서 현저하게 차별을 받고 있다.
여성만이 갖는 임신, 출산, 자녀양육 부담을 사회가 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불우한 환경의 미혼모, 저소득층의 근로여성, 빈곤선이하의 모자가정 그리고 윤락여성이 있다. 그들은 여성복지의 대상자(Client)로 늘 남아 있고, 정부당국자나 사회의 확실한 원조대책을 받지 못한 채 음지에서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은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밑바닥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면, 2001년 현재 HDI(인간개발지수)에서는 총 162개국 중 27위이며, GDI(여성개발지수)는 146개 나라 가운데 29위에 머물러 있고, GEM(여성권한척도)은 64개국 중 6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행정 관리직 중 여성비율은 5%에 불과하고, 정무직 여성비율도 세계 평균10.8%를 밑돌고 있다. 국회의원 진출도 13%로 세계163개국 중 평균 15%에 미달된다.
또 미국의 마스터카드 인터내셔널이 최근 13개 아시아, 태평양 국가의 남녀 사회 경제적 수준인 노동시장의 여성참여도, 대학교육, 임원비율, 평균이상 수입비중 등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가 13등을 했다는 것이다. 경제활동 참가율도 남자 73.7%에 비해 여자는 48.3%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2005년 1월 통계청) 또 여성이 취업하고 있는 분야도 임시, 일용직급이 많다.
위의 통계치가 갖는 의미는 남녀 간의 불평등이 역사적으로 묵시적으로 진행되어 온 ‘관습법’일 수도 있고 또 여성 스스로 남성의 성(城)에 안주 해온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웨덴의 경우 전쟁이 났을 때 남성들이 했던 탄광 광부, 기차운전, 중장비운전 등을 여성들이 맡아서 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성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현재 스웨덴은 국회의원 장관의 4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도 대단한 면이 많다.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여자 선수들. 각종 골프대회에서 보내오는 승전보. 한국 여성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보통 여성’이다. 거기에는 강인하고 억척스러움이 있고, 아름다운 자태가 함께 존재한다. 그 모습이 우리의 어머니요, 누이요 그리고 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제 21세기 국가발전의 ‘뚜껑을 따지 않은 보고’는 여성 인력과 고령자 인력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국력신장의 바로메타가 될 수 있다. 여성의 문제는 ‘그에게 매일 물고기를 나누어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 더 절실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