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서 처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아날로그 신호란 정보를 자연 형태 그대로 저장, 처리하는데 비해서 디지털 신호란 신호를 ‘1’과 ‘0’이라는 두개의 비트로 바꾸어서 표시하는 것이다. 음악 정보를 저장하는 LP 전축 판을 예를 들어보자. 악기소리 정보(떨림의 빠르기나 크기 등)를 전축 판에 파진 홈에 저장하고, 이 홈을 바늘이 지나가게 함으로써, 홈에 저장된 모양이 바늘로 전달되게 한다. 파여진 홈의 모양이 음성정보인 것이다. 이에 반해서 디지털에서는 음성정보를 1과 0으로 변환한 후, CD에 1과 0 만을 저장한다. 예를 들어, 큰 음성인 경우는 111로 작은 음성인 경우 000로 표시하고 중간음은 110, 001등으로 약속한 후, 저장된 1과 0의 조합을 약속대로 다시 변환해 주면, 아날로그 신호를 재생할 수 있다. 아날로그 신호를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3개 비트보다는 많은 비트수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날로그 신호는 연속적인데 비해서 디지털 신호는 불연속이다. LP판의 홈의 모양이 마모됨에 따라 정보가 소실되는 반면, 디지털에서는 1과 0 만을 저장하므로 정보가 마모되지 않는 것이 디지털의 최대 강점 중의 하나다.
그러나 과연 자연에서 오는 정보가 연속적인 아날로그일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신호는 연속적인 아날로그 신호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기관의 과학적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불연속적인 신호들을 우리가 연속적으로 느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영화필름 하나하나는 불연속이지만, 눈이 연속 동작으로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기분자의 파동에 의해서 내이에 존재하는 섬모가 떨리면, 청각세포에서 전기적인 신호로 바뀌어서 신경세포를 통해서 뇌로 전달되는 청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전하를 가진 이온 역시 불연속적인 전하이다. 실제로 연속적으로 흐르는 듯이 보이는 전류 역시 불연속적 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의 집합일 뿐이다. TV방송이 끝나고 난 밤, 화면에서 보이는 불규칙한 모양은 불연속적인 전자 한 개 한 개가 임의로 방출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화엄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게송으로 추앙받고 있는 ‘법성게’는 신라시대의 고승이었던 의사대사가 지은 것이다. ‘법성게’에서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량없이 흘러가는 듯이 보이는 대상에 대한 지각이 사실은 한 생각일 뿐이며, 또한 한순간의 생각이 무한 겁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은 자의 경지를 이와 같이 표한 것이다.
과거·현재·미래가 연속적인 아날로그적인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불연속적인 사건들의 합(合)일 뿐이다. 과거의 사건들이 번민으로 다가오거나 , 미래가 걱정될 때, 이를 인식하는 나 또한 불연속적인 생각의 집합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서울대 전기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