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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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봄날이 온다면 무엇을 막론하고 다 녹일 수 있어
자기 선장 주인공을 진짜로 믿고 맡겨 보라!

너무나 유혹이 많아요


불교와 인연을 맺고 줄곧 선원에 다니면서 주인공의 끈만 쥐고 간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공부해 왔는데, 갑자기 제 주변에 마음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각자 자기의 방법만이 옳은 정법이라고 합니다. 영가 기도를 올려야 한다, 제사를 지내야 한다, 108배를 올려야 한다는 등의 말들을 합니다. 가는 방법은 달라도 목적지만 같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어쩐지 지금은 더 혼란스럽습니다. 영가 기도문을 읽고 108배를 올리는데 머리가 아프고 몸 상태가 영 안 좋아지더니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 같습니다. 분명 무엇이 잘못된 것 같은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어요. 마음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유혹 속에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혜안이 얼마나 필요한지 실감하였습니다. 한생각 내 주십시오.

자기를 이끌어 가는 자기 자신을 믿고 가다 보면, 어떠한 게 잘되다가도 딱 멎고선 안될 때나 답답할 때가 생길 때에는 반드시 공부의 재료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불도 꺼졌다 켜졌다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켜고 사는 것도 아니고, 바다가 잔잔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파도가 일게 됩니다. 그러니까 파도와 잔잔한 물과 같이 동등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동등한 이치를 알기 위해서 자꾸 그런 일이 생기거든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겨요. 그거는 탤런트가 영화를 만드는 데 아무리 힘들어도 한마디 하고 나면 괜찮아 지듯이 그런 거와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빨리 수습하려면 공부시키느라고 답답하게 모르게 만들고 끄달리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바로 그 자리에 놓으면 그게 다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답답하다고 해서 그러지 말고,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공부했어도 ‘이게 뭔가?’ 하고 한탄하지 말고 모든 걸 거기다 맡겨요. 한탄하게 하는 것도 너고 답답하게 하는 것도 너다 하고선 내려놓을 때, 그게 습관이 되면서 어떤 거든지 다 거기다 놓고선 가게 되면 실험을 통해서 체험을 하게 되고 이러면서 자연적으로 문이 열리게 되는 그런 이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우치고 안 깨우치고, 본래 깨우치라고 돼 있는데 그렇게 여러분이 딱 막아 놓고는 안 하니까 그렇죠. 그래서 살아생전에 그 도리를 알아야, 내가 죽어서도 떳떳하고 절대로 꿀리지 않는다고 그러는 겁니다. 꿀리지 않아야 어디든지 내 자유껏 갈 수가 있는 거고, 내 자유껏 건질 수가 있는 거고, 내 자유껏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즉 말하자면 살아서 인가가 됐기 때문에 죽어서도 인가가 나게 돼 있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한테 이렇게 가르치는 거 정말 서로 다 감사하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모두가. 내가 항상 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이 자기 뿌리를, 자기 선장 주인공을 진짜로 믿고 맡겨 보라는 거예요. 벌써 맡기고 사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려놓지 못하니 사단들이 나고 괴로워하는 거죠. 또 사단을 얘기할 때도 보면 공부하는 사람들은 본론만 얘기하고 가는데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겪는 얘기를 모두 다 합니다. 그러면 벌써 그건 자리가 잡히지 않았다는 결론이거든요. 자리가 잡히지 않았는데 어떻게 방방 안 뛰겠습니까? 자리가 잡힌 사람은 그런 걸 해결을 하고 가거든요.
우리가 고등 동물로써 사람 중에도 진짜 사람이 돼야 부처님 한도량에 태어난다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면서 고(苦)를 고라고 생각하면 고가 되는 거고, 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고가 아닙니다. 그래서 고라고 집착을 한다면 그건 멸하질 않아요. 그래 도를 이루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깐 여러분의 생각에 따라서 도의 길을 걷느냐, 그렇지 않으면 망상의 길을 걷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이 생 한 철 살면서 우리가 부처님 한도량에 이르려면 이렇게 공부해 가지고는 되지 않지 하고 열심히 하세요, 뭐든지.
왜냐하면 지금 살면서 그저 배고프다, 못 입는다, 돈이 없다, 어디 취직이 안된다, 취직해서 다니다가 떨어졌다, 이런 거를 가지고 그냥 벅석거리면 오히려 그것이 제동이 걸리질 않아요. 떨어지게 하는 것도, 굶게 하는 것도, 살게 하는 것도 바로 당신이 하는 거니까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그냥 놓고 편안해야 해요. 그건 뭐 몸뚱이가 펄펄 뛰고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한 찰나에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가는 마음의 부처 속에서 나오는 보살들이 전부 응신이 돼서 돌봐 주시기 때문에 자기 몸뚱이가 이끌어지는 거죠.
그리고 또 때로는 이렇게도 되는 수가 있죠. 한자리를 믿고, 한 뿌리를 믿고 의지하고 해야 나무가 크게 자라는데, 그렇지 않고 ‘에이그, 저기 가서 한번 해 봐야겠다.’ 하고 저기 가서 한번 해 보고 저기 가서 한번 해 보고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죠. 정말 진짜로 바다로 나갈 수가 없어요. 자기가 이 세상에 형성돼서 나온 구녘도 그 구녘이고 들어갈 구녘도 그 구녘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 들어가는 거보다도 살아서 들어가야 하기에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겁니다. 깨우치지 않았어도 그렇게 자꾸 닿는단 말입니다. 관하면 자꾸 닿아요. 닿아서 모르는 게 없어요. 그런데 그걸 못 참아서 관해도 안된다고 하면서 그냥 모두 그러거든요.
여러분과 나와 다른 것이 뭐냐 하면 나는 지금 죽는다 하더라도 모든 걸 내버렸어요. 우리가 항상 얘기하죠. ‘봐도 본 게 없고 들어도 들은 게 없다. 만나도 만난 게 없고 또 가고 와도 가고 온 게 없고 모두 제자리걸음이고 하나도 한 게 없다. 내가 먹은 것도 없다. 내가 어떤 걸 먹었을 때 내가 먹었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먹은 것도 없고 한 것도 없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금덩어리가 돼서, 그게 자불이 통한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당장 죽는다 하면 거기에 그냥 푹, ‘어쩌면 좋은가’ 하고 야단법석들을 하시는데, 그래서 친척들한테도 식구들한테도 미리미리 관하는 도리를 알려 줘라 하는 거죠. 급하면 그래도 나올 테니까 말입니다. 때로는 어떻게나 답답한지 몰라요. 자식들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왔을 때에 제일 답답한 거예요. 본인도 잘 모르는데다가 관하는 도리를 자손들한테 가르쳐 주질 않아서, 그것이 재산 물려주는 거 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안 가르쳐 주고 말이에요.
부처님께서 항상 자기가 그대로 자기 자불을 알아서 여여하게 살아라 이랬는데, 누구에게나 본래 다 갖추어져 있고 만법을 들이고 내는 것도 다 그대로 여여하다고 하셨는데, 그러니 각자 자신을 발견하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예전에 때로 “시자야!” 불러서 “예!” 그러면 “응, 알았다.” 이러는 선지식도 있었다는데 말입니다. 사계절이 오는 거 보세요. 이게 전부 여러분의 스승입니다. 하나도 스승 안 되는 게 없는데 마음이 들떠 가지고 빨리 좀 해 보려고 여기 가서 해 보려고 하고 저기 가서 해 보려고 하고, 이러한 마음을 가졌다면 그거는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게 아닙니다. 말이 아무리 좋은들, 이론이 아무리 좋은들 몸 떨어지면 입도 떨어지고 입 떨어지면 말도 떨어질 텐데 말이 좋다고 들으러 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믿어야 되나요?


저희들이 공부해 나갈 때 어떤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지요? 그리고 마음을 어떻게 집중을 하면서 관해야 하는지요? 보이는 모습을 다 벗어 버리고 주인공 자리에 의식적으로 하나가 돼야 하는지요? 아니면 텅빈 공체로서 대우주와 하나 된 상태가 되어야 하나요? 아니면 마음을 형상화시켜서 하나로 집중을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요.

어느덧 입춘도 우수도 지나고 경칩이 다가오는데, 입춘이라고 한 뜻은…. 어디다가 갖다 붙여도 말이 되고 뜻이 됩니다. 형체적인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자는 거죠. 또 우수에는 입을 뗀다고 하죠. 우리가 이렇게 문을 열고 나오면 말을 하고, 말을 하면 움죽거리는 게 되는 것이 바로 우수, 경칩이죠.
그래서 봄이 오는 마음은 마음의 문을 여는 날이고, 입이 트이는 날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거고, 경칩은 우리가 마음대로 자유껏 뛸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이름은 있되 이름 없는 이름이기에 함이 없이 한다 이런 말입니다. 이름도 그냥 공연히 생긴 게 아닙니다. 알고 본다면 이름도 천차만별로 많지만, 그 이름대로 자기의 차원과 모습이 주어져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마음의 봄날이 온다면 무엇을 막론하고 다 녹일 수가 있고 얼릴 수도 있어서 자유스러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본래 자기 뿌리와 싹이 동시에 같이 태어났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염주도 많이 걸고 다니는데 줄에다 알을 꿰어야 염주가 되죠? 그렇다면 사람도 염주와 같이 그렇게 겸해서 가지고 나왔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어디를 찾아야 하고 어디를 믿어야 하고 이런 게 없이, 육신과 정신계가 본래 꿰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염주알은 어디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염주를 꿴 줄이죠? 줄은 정신계라고 비유할 수 있고, 알은 물질계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염주는 불가부득 누가 믿어라 안 믿어라 할 게 없이 줄을 믿어야 하겠죠. 그런데 믿는다는 언어도 붙지 않는 겁니다. 그대로니까, 그대로 꿰어져 있으니까, 그대로 염주가 되듯이 인간이 된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라는 위치에 놓여 있으면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해야죠? 그리고 인간으로서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이 필요하죠. 그럼으로써 그대로 믿어라. 그대로 같이 겸해 있으니 그대로 믿어라 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거를 안다면 줄이다, 알이다 하는 이름을 찾을 필요도 없죠. 안 그렇습니까? 내가 비유를 할 때에 싹은 뿌리에 붙어 있고 뿌리는 바로 싹을 살리기 위해서 생긴 거니까, 그렇게 아주 밀접하게 붙어 있으니까 무조건 믿어야지요. 그 뿌리로 인해서 사는데, 다른 데 어디를 믿는다는 겁니까? 그대로 믿어야죠. 종교를 믿는다 안 믿는다도 떠나서, 부처님을 숭상한다 안 한다 이걸 떠나서, 그대로 자기를 믿어야죠. 바로 싹을 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해요, 뿌리가! 그리고 모든 것은 그 뿌리가 흡수해서 올려보내니까요. 싹은 또 모든 걸 흡수해서 아래로 내려보내고요. 이런 거니까 내가 믿으라고 하지 않아도 그대로 결집이 돼 있다니까요. 염주와 같이 말입니다.
항상 얘기하듯이 저 은하계나 태양계도 그렇지만 지구도 그렇게 염주알처럼 줄에 매달려서 돌아갑니다. 마음의 줄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돌아간다 이겁니다. 인간도 이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줄은 매듭도 없고 시발점 종점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은 시발점이 있고 종점이 있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이 안에서 훌떡 벗어나야, 정신계 물질계를 벗어나야 자유권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겁니다. 이 물질계 테두리 안에서는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법이 정신계로 무(無)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그런 광대무변한 묘법입니다.
그러니 믿으란다고 믿지도 말고, 믿지 말란다고 안 믿지도 말고, 또 누가 이러고저러고 한다고 해도 흔들리지 마세요. 무조건 자기 뿌리는 자기 싹을 지니고 있으니까 누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절대로 흔들리지 마세요. 부처님의 뜻과 인간 생활 자체와 진리가 바로 합류화되어야 진리지, 만약에 거기에서 벗어난다면 부처님 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꼭 누가 믿어야 한다고 해서가 아니라 자기 뿌리를 자기가 믿듯이, 염주알이 자기 줄을 믿듯이 그렇게 믿는 겁니다. 염주알이 저절로 줄에 꿰어져 있기 때문에, 튼튼하게 꿰어졌기 때문에 염주알은 걱정도 안 해요. 줄 끊어질까 봐 걱정도 안 하고, 줄에 매달려 있으니까 그대로 줄을 믿고 믿는다 안 믿는다도 없이 그냥 하면 그대로 움죽거려져요. 그러니까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지금 여러분의 뿌리와 싹이 그대로 한 몸입니다. 그대로 믿으시고 맡겨 놓으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뿌리를 믿지 못해서 맡겨 놨다가도 못 믿어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믿는 사람은 한 번 맡겼으면 맡긴 그 자체가 아주 뚜렷하게 정립이 됩니다. 그러니까 의심도 없고 근심도 없습니다. 그런 마당에서 좀 시일이 가서 풀릴 수도 있고, 시일이 안 가고 단박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바로 천차만별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니까, 조급해서 아이구! 요렇게 맡겨야 하나, 저렇게 맡겨야 하나! 하는데 그렇게 몰락 놓을 수 없을 것이면 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태어난 게 불찰이 아닙니까, 네? 뿌리로 인해서 싹이 났는데, 자기 영혼의 뿌리가 자기를 형성시켰는데 그렇게 못 믿어서야 어찌 삶을 보람 있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배워 가지고 믿어야 되겠다 이러는 게 아니고 본래 꿰어져 있으니까 믿으라는 겁니다. 믿고 맡겨 놔야 할 데가 바로 윗눈썹과 아랫눈썹이 마주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이 되시겠죠? 이름을 믿을 겁니까, 형상을 믿을 겁니까? 이 세상에 누굴 믿겠습니까? 이 세상에 누굴 믿어요? 부부한테도 할 말, 못할 말 가려서 해야 되고 자식한테도 가려서 해야 합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알고, 슬프고 즐겁고 한 거는 자기 뿌리만이 알고 있는 겁니다.
즉, 마음내기 이전의 마음은 죄 알고 있는 겁니다. 마음내는 건 아무렇게나 막 그냥 나오는 대로 마음을 내겠지만 마음내기 이전의 마음은 아주 정확합니다. 더하고 덜함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 낼 때 마음의 선장한테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주고 안 주고가 없습니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람이라면 부처님 될 수 있는 능력이 99%가 됩니다. 이건 한 찰나 생각만 잘한다면…, 아까 얘기대로 무식하고 안 무식하고, 부자고 가난하고, 못나고 잘나고 간에 반드시 한 줄에 꿰어져 있는 염주알과 같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염주알을 꿴 그 줄을 믿어야 하는 거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믿고 다스리고 행하면서,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는 줄 알고 그 자리에다 되놓는다면 앞서의 게 없어지고 새롭게 입력이 들어가면서 보람 있는 새 삶이 나온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오거든 모든 것은 마음의 용광로에 다 놓으십시오. 자가발전소 용광로에다가 다시 돌려놓고 관하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 자기 뿌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려놓질 못하고 자꾸 끄달리는 겁니다. 놓고 맡길 수 있다는 건 믿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생각으로만 공부하지 말고 먼저 일체를 그 자리에 돌려놓고 맡기고 지극히 관하세요.

기독교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저는 중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오늘 기독교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절에 다니는 불자 가족인데 말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종교 시간에 일 주일에 한 시간씩 종교 수업을 받아야 되고 아침마다 아침 예배와 기도를 꼭 해야 하는데 내신 성적도 중요하니까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걱정이 되어서 질문드립니다.

기독교든 가톨릭교든 불교든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을 해야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자기가 수습을 해야 하고 자기가 돈을 떨어뜨렸다면 자기가 집어야지 누가 대신 집어 주는 사람 없어. 대신 죽어 주는 사람도 없고, 대신 아파 주는 사람도 없고, 대신 먹어 주고 대신 잠자 주고 대신 공부해 주는 사람도 없고, 대신 깨우쳐 주는 사람도 하나 없어. 그러니깐 자신으로부터 주처가 있는 거지 타의에 주처가 있는 게 아냐. 그러니깐 무엇을 하든 간에 자기 주인공을 믿고 그 자리에서 한다는 걸 믿으면 돼.
예수님도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나를 믿지 않고 타인을 믿는다면 도깨비장난 같고 귀신장난 같은 거니라!’ 이랬거든. 그런데 ‘나’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야. 듣는 사람들이 ‘각자 나’라고 해야 될 텐데 그냥 ‘나’라고 했으니깐,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한 건데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듣질 못했어. 즉 말하자면 나를 믿지 않으면 모두가 도깨비장난 같고 귀신 놀음 같고 허무하다고 이랬거든. 그거를 신자들이 예수님만 믿고 딴 거는 믿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못났든지 잘났든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너를 형성시킨 보배가 바로 너의 불성이니라. 너의 뿌리니라.’ 이러신 거지. 그러니까 이 몸뚱이는 나무로 비유했고 그 근원은 바로 뿌리로 비유를 했단 말이야. 그래서 ‘네 나무는 네 뿌리를 믿어야 공덕이 있고 자유를 누릴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느니라.’ 했거든. 그랬으니까 따르기는 따르되 믿는 것은 너를 믿어라 이거야.
그러니까 불교다 기독교다 가톨릭교를 떠나서 그렇게 모두 타의에 의존하고 믿고 그러면 기복이란 얘기야. 기복으로 믿어서는 공덕이 하나도 없어. 오히려 자꾸 거죽으로 끄달려서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이 되지. 자식들한테도 그 문제들이 확대가 되고 나가서 잘못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런 거거든. 그러니까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너의 주처가 있기 때문에 학교도 다니고 절에도 다니고 공부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 일거수일투족을 주처에서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서 정돈만 된다면 절대로 흔들리고 그렇지 않는단 얘기야. 알았지?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데…


가장 근본적인 의문에 관해서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서부터 와 가지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배움을 통해서 알기로는 전생으로부터 윤회가 돼 가지고 여기까지 우리가 왔고, 다음 세상에도 또 윤회가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마는,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나가다 보면 우주 만물과 우리 인간 생명이 과연 어떻게 생겨났는가? 기독교 성경에서는 창세기에 뭐 언급이 있습니다마는 그건 도저히 수긍이 안되는 얘깁니다. 스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많은 깨달음이 있으시리라 믿고 어떻게 이 우주가 생겨났고, 한마음은 어떻게 있어 왔고 또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 우주의 근본 자체가 여러분 마음에 직결되어 있어요. 여러분 몸이 오대양 육대주도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몸속 내용을 보시고 뇌를 보세요. 얼마나 복잡하고 거대하게 되어 있나. 그것을 볼 때에 여러분이 나로부터 알고 간다면, 좀 오래 살려면 오래 살고 이젠 옷을 벗어야겠다 그러면 벗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주천하 만물만생이 다, 즉 말하자면 벌레에서부터 진화되는 것은 생각에, 마음에 의해서 진화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의식 자체가 바로 요런 거다 하고, 모르면 귀도 먹고 그러면 벌레는 벌레대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가 어떻게 가다 보면 벗어나게 되겠죠. 인간도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차원에 따라 전체가 차원이 크고 눈이 뜨여지고 귀가 뜨여지는가? 이러한 문제에 의해서 여러분이 편안하게 살 수도 있고 편안치 못하게 사는 여러분도 있는 것이 바로 중생이다 부처다 하는 그 백지장 하나 사이를 두고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거 먼저 생각하지 마시고 공부를 진짜 하려면 무조건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주인공을 진짜로 믿고 거기다 일체 생활을 다 맡겨 놓고,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고, 당신만이 나를 끌고 다닐 수 있고, 당신만이 내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고, 내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 해결사는 내 주인공밖에 없다. 대신 가 줄 사람도 없고, 대신 먹어 줄 사람도 없다. 내가 혼자 와서 혼자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참나를 발견하고 감응이 될 때, 그때에 한 번 하늘을 쳐다보고 울고 한 번 땅을 내려다보고 땅을 치고 울 때 그때 바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진짜 자유인 말입니다.
열반이라는 것이 뭔 줄 아십니까? 콩이 아주 잘 익었다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콩깍지가 탁 벌어지지만 덜 익은 거는 속껍데기가 짝짝 붙어 가지고는 아무리 까도 안 까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죽음에 의해서 고생을 하고 죽는다는 뜻을 비유한 얘기입니다. 까져야 할 텐데 안 까지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몸을 벗는다는 이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고 싶으면 툭 건드리기만 해도 콩깍지가 탁 벗어지게끔 이렇게 할 수 있는,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는 대로 해 나가되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마세요. 이 생각이 나걸랑 바로 내려놓고, 저 생각이 나걸랑 또 맡겨 놓고, 울고 싶걸랑 자기 주인공을 붙들고 울고, 감사하걸랑 그 자리에 감사하고, 그렇게 한 일 년 계속 가 봐요. 진짜로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모두 겉껍데기로서 앨 쓰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없으면 아무도 없어요. 내가 불이 붙어서, 몸에 불이 닿았을 때 남이 내 불을 꺼 주는 게 아니라 제가끔 자기 불 끄느라고 애를 쓰지 누가 불 꺼 주는 사람 없어요.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가엾게 생각하고 자기 주인공한테 감사하고 사세요. 때로는 자기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 이것도 보여 주고 저것도 보여 주고, 꿈에 보여 주고 생시에 보여 주고 그러는데 속지 마세요. 그래서 환상천도 넘어서서 모든 것에 속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200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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