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안 때 묻은 옷이라도 하루 동안에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이, 백천겁 동안에 지은 모든 불선업(不善業)도 불법(佛法)의 힘으로 잘 수순해서 닦으면 일시에 소멸하는 것이다. <심지관경>
지난 2월 말 <도산잡영>(이황 지음)이라는 책을 펴낸 을유문화사가 이 책을 전량 수거해 다시 제작할 방침이라고 한다. 책을 출고한 뒤 다시 한 번 검토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일종의 ‘책 리콜’인 셈이다.
잘못된 부분은 책 전체 300여 쪽 가운데 4쪽에서 10여개 문장의 글자가 다른 글자와 겹쳐있는 것이었다. 인쇄과정에서 빚어진 실수였다. 이런 경우 정오표를 만들어 책 속에 끼워 넣어 오류를 바로잡기도 한다. 하지만 을유문화사는 책을 다시 찍기로 한 것이다.
제품의 결함에 대해 보상하는 소비자보호제도인 리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보통 부품을 교환하는 수준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책 리콜은 전체를 다시 찍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막대한 손실을 감안해야 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소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우리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남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남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내 이익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기업은 소비자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
물론 을유문화사의 이런 선택은 독자에 대한 당연한 의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뉴스거리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원칙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이 화젯거리로 등장한다. 그만큼 드문 일이라는 얘기다.
을유문화사는 적어도 금전적으로는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독자들로부터는 신뢰를 얻었다. 그 신뢰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을유문화사는 더 큰 것을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