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끌고다니는 자기 주인을 진짜로 믿어야
오늘 따라 비가 와서 상당히 불편하시겠습니다. 하지만 물방울은 가죽 속으로 들어가진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날이 춥지 않아서 마음이 좀 푸근합니다. 덜 송구스럽구요.
스님네들이 부처가 아니라 여러분이 부처입니다. 어떤 때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머나먼 데서 밤을 새서 차를 타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러는 걸 생각한다면 참으로 감개무량하고, 바꿔놓고 생각을 한다면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물론 어차피 머리를 깎고 출가했을 때는 다 버리고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끝없는 길을 걷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도 행복하십니다. 왜냐하면 부부와 자식들과 한 가정을 이루면서도 진짜 수행자가 되겠다고 노력하시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일체 만물만생이 다 이런 뜻을 알아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는 수억겁을 거쳐오면서 갖은 모습으로 갖은 것이 다 돼 보고 나서 사람이 됐던 겁니다. 사람까지 올라와서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는 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고해 속에서 어떻게 벗어날는지 그것을 몰라서야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며 어떻게 자유인이 되겠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필연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겁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모습을 바꿀 때는 하나도 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칠 게 없이 다 놓고 갑니다. 하나도 가지고 가는 게 없습니다. 재물이나 보물은 방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집이 아무리 좋아도 대문 안에서 인사를 할 것이고, 친척 부부지간이나 아무리 좋은 친구다 할지라도 동구 바깥에서 인사를 할 겁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업식은 그림자처럼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니 그 업식을 짊어지고 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다면 그 고초는 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 그만이지 하지 마시고 꼭 알아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차원을 높여서 꼭 진실로써 한 걸음 한 걸음, 조그맣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떼놓을 때에 우리는 진실한 실천궁행이 되도록 이렇게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 마음을 닦는 법이란 먼저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면 바로 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굴려놓을 줄을 안다면 굴려놓고서 다시 끄집어내서 착을 가지고 쥐고 놓질 못해서 다시 쥐고 나오는 그러한 문제가 없도록 하시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진실로 지름길입니다. 가정에 어떠한 애고가 닥쳐도 타파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놓고 가는 도리입니다. 지혜롭게 바로 돌려놓는 그 자체 말입니다.
우리가 돌려놓는다 돌려놓는다 하니까 다르게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고, 일이 닥쳐오는 거는 체가 없는 데서부터 체가 있는 데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일이 꼬여들어가는 것도 마음으로부터 일이 벌어져가지고 바로 바깥으로 어지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일이든 그것은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마음으로 꼬여진 거니까, 마음에서 모든 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상대가 벌어지고 얽혀지고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해결을 할 수밖엔 없는 거죠.
그래 엊그저께도 말씀드렸지마는 만약에 한 가정에 구정물이 닥쳤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돌려놓는데 맑은 물로 돌려놓는다면 맑은 물로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만약에 마음이 밀가루라면 밀가루만 고집하지 마시고 밀가루가 화해서 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국수도 될 수 있고 만두도 될 수 있고 하지만 그것은 원자에서 바로 분자로, 인연에 따라서 가공돼서 하나의 만두라는 게 나옵니다. 그렇게 만들어 잡숴라 이 소립니다.
모두가 그냥 어렵다, 아주 괴롭다 이렇게 말만 하시지 말고 실질적으로 행동을 개시해서 바로 실천을 하시는 데에 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발전도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마음의 발전이 아니라면 극난한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만히 있으면 그냥 목석이지 그게 사람입니까? 그러니만큼 수억겁을 거쳐나오면서 경험을 했고 그 모든 것이 한마음 바로 근본, 영원한 근본, 그 근본에 종합돼서 재료가 들어있기 때문에 마음에서 이 생각 저 생각 다 나오는 겁니다. 스스로 입력이 돼서 말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법은 사찰에만 있는 게 아니라, 또 부처님 법은 부처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생활에 바로 쓰고 돌아가는 이 진리가 바로 부처님 법입니다. 딴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용도에 따라서 닥쳐오는 그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오는가를 아는 겁니다. 그런 문제들이 한두 건입니까? 임신을 한다 하더라도 장애자를 낳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런 문제들이 어떻게 해서 오는가 그거를 잘 파악하셔야 될 겁니다. 어디서부터 오는가? 천차만별의 애고가 다 어디서부터 오는가? 바로 자기가 지은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은 데다가 도로 놓고 굴려놔라 이 소립니다. 한두 건이 아닌 그 유전성, 항상 말씀드리지마는 인과성이나 영계성이나 업보성이나 세균성이나 이 모두가 바로 어디서 오는 겁니까? 자기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올 것이고요.
그런데 삼세(三世)를 다 통치하고 일심(一心)으로써 실천궁행하려고 하고 자유인이 되려고 하고 만물의 영장이 되려고 하고 부처가 되려고 하고 법신(法身)이 되려고 하고 관세음, 지장 모든 것이 다 자유스럽게 되려고 하신다면 그렇게 흙물도 맑은 물로 바꿔 먹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일체가 다 한군데서, 한군데서 들고 나는 것이니까 한군데로 놓는 작업만 잘하시고, 굴려놓는 작업만 잘하시고,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마음이 투철하다면, 그리고 믿는 것이 투철하다면, 못났든 잘났든 자기를 믿는 그 마음이 투철하다면 바로 일체 만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타파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법당에서 예배 올리고 음식물을 놓고 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에 바로 여러분이 계시니까 거기 그 자리에 부처가 계신 겁니다. 법당에만 부처님이 계신 게 아니라 여러분이 오시니까 법당에도 부처님이 계시고, 가정에 있으니까 가정에도 계십니다. 또 바로 여러분 몸이 도량이요, 몸속에 들은 생명들이 바로 중생들이죠. 그러니 부처가 따로 있습니까, 어디? 그러니 우리 아까도 얘기했지만 밀가루가 마음이라면 그걸로 별의별 거를 다 먹고 싶은 대로 해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은 밀가루라는 근본을 가졌지마는 가공돼서 국수도 되고 만두도 되고 부침개도 되고 과자도 되고 술도 되고 누룩도 되고 뭐 별거 별거 다 되는 것을, 그것이 아무리 나누어져서 다른 이름을 띠고 나왔다 하더라도 밀가루는 밀가루의 근본이 거기 뚜렷하게 그냥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마음이라는 거는, 마음의 근본이라는 것은 아무리 이리저리 써도 그 마음이라는 것은 떼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어서 광대무변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얘기했지마는, 서춘보 스님이라고 하는 분이 공부를 해서 자유자재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나라에 위기가 닥쳤어요. 그때는 참, 지금과 같지 않아서 모두 그 스님을 상당히 귀하게 생각하고 나라에서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때 중국에서 아주 특이한 보물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그거를 내놓지 않는다면 너희 나라를 없애겠다 하니까 너무나 위기에 처해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서춘보 스님의 자유자재한 능력으로 나라의 위기도 모면하고, 관직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다시 복직을 하게 되고, 나라의 위기를 모면케 한 그 공로로 받은 아주 많은 상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어서 구제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는가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 것은 자유자재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재권 말입니다. 얼른 쉽게 말하면 일체 만물만생의 대권입니다. 아까 밀가루 얘기 했듯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고 했죠? 이 마음 하나로 일체 만법을 다스릴 수가 있는 그런 대권이 있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이것저것을 어찌 말로 다 하리까. ‘이것도 할 수 있다. 이것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을 하리까. 그래서 일체 만물만생의 그 근원, 그 자체를 쥐고 있는 것은 주먹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이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주먹을 불쑥 내밀었다. 지혜가 있고 없는 데 따라서 이 주먹은 아주 얕을 수도 있고 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춘보 스님이 자기 자유껏 자유자재권을 그대로 개시(開示)한 겁니다. 누가 꼭 그렇게 할 때가 돼서 그런 게 아니고 그렇게 올 거니까 준비를 해서 그렇게 잘 맞춰놓은 거죠.
그러니까 우리도 생활 속에서 어떠한 문제가 오더라도 미리미리 대치를 해서 커버를 해나갈 수 있는 그런 여건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이왕지사 말이 났으니 말이지 버스 지나간 뒤에 아무리 버스 보고 여기 와서 서라고 해도 안 됩니다, 그건. 부처님의 가르침도, 정히 당당하고 에누리없고 지혜롭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지 허무맹랑하게 가르치신 게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증을 서거나,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지 말고, 즉 말하자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장소도 마련하고, 어떻게 해야 사람이 많이 다니나, 요런 물자는 어느 지점에다 내야 되겠나, 지금 현 사회에서는 어떠한 것이 제일 잘 먹어 들어가나, 어떠한 것을 잘 쓰고 들어가나 이런 거를 다 살펴서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을 해야지, 그것도 보지 않고 아무 데나 그냥 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돈 꾸고 뭐 해서 그냥 딸깍 망해가지고 집까지 다 뺏기고, 이런 행동은 없어야 되겠죠. 이것이 모두 여러분이 지혜롭지 못한 탓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공부를 하고 다스려나가면 벌써 스스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끔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겁니다. 이건 자동적입니다. 그러니깐 이 마음공부 하고 가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자기가 마음먹는 데에 따라서 법이 된다 이 소립니다. 그런데 믿고 맡기고 그냥 하지 못하고, 믿고 맡겼다고 하면서도 그거를 다시 불안하니까 끌고 나와서 또 그거를 생각합니다. 놨으면서도 불구하고 맡겼으면 맡긴 대로, 예를 들어서 사람이라면 믿고 맡겨야 그걸 받은 사람이 일을 알맞게 충실히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일을 맡겼다 다시 뺏고 또 일을 맡겼다 다시 뺏고 이러면 일을 해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와 같습니다. 그러니깐 맡겼던 걸 도로 뺏어들고 나오지 말라 이 소립니다.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잘 집어먹고 잘 듣고 잘 수행을 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그때 그 시절의 용어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우리 지금 시대 사람들에겐 상당히 어려워서 그걸 뜻으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지금 사람은 지금 용어로써 지금 보고 나가고 듣고 나가는 데서 그냥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말로만 듣고서 그냥 넘기지 마시고 서춘보라는 스님이 그랬듯이 나라에 위기가 닥쳤든, 가정에 위기가 닥쳤든, 어떠한 개인적인 위기가 닥쳤든 그거는 마음먹기에 달렸지 않았겠습니까? 다가오는 걸 타파해나가고 실천을 하려면 지혜롭게 굴려서 자꾸 갈아 써야죠. 갈아놓고 갈아 써야죠. 사람도 헐으면 다른 옷을 입으려고 죽습니다. 기계도 녹이 슬고 망가지면 다른 기계를 들여놓습니다. 그러니까 녹이 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좀더, 내가 이 옷을 갈아입고 싶다 할 때까지 녹이 슬지 않고 입을 수 있게, 빛바래지 않고 녹슬지 않고 그렇게 쓸 수 있게끔. 그걸로 인해서 온 가정이 다 살 수 있는 건데 그 녹이 슬게 하고 빛바래고 잘 돌아가지 않게 만들어 놓는다면 어떻게 가정인들 다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미리미리, 좀 놔둘 거라면 기름을 발라서 딱 녹 안 슬게 하듯이, 마음도 역시 그렇게 미리미리 이 세상 세파 속에서 살아나가려면 너무나 닥치는 게 많으니까 ‘그런 일들, 그런 일들이 모두 닥치지 않게 하는 것도 너밖에 없다.’ 하고 미리 봉을 박아놓는 거죠. 봉을 박아놨어도 앞서에 봉을 박지 못해서 오는 것은, 오고 난 뒤에 박아도 됩니다, 닥치는 대로. 거기다 자꾸 나쁜 것이 돌아올 때 거기다가 굴려놓는 겁니다. 자꾸 돌려놓는 겁니다. 내 기준에 맞게 좋게 해서 굴려놓는 겁니다.
예전에도 그런 얘기 했죠. 이성계가 꿈을 아주 나쁘게 꾸고도 지혜로운 무학 대사를 찾아가서 그 꿈 얘기를 물었습니다. 무학 대사는 그 꿈 얘기를 듣고서 묵묵히 한참 있다가 대답을 했습니다. 꽃이 피었다가 우수수 떨어지는 꿈을 꿨고 그러니 얼마나 언짢습니까? 까마귀가 그냥 울고 가는 꿈을 꿨고, 대문에 허수아비 모가지를 매서 디룽디룽 매달아놓은 걸 봤고, 색경이 걸렸던 것이 그냥 와르르르 떨어져서 깨지는 거를 꿈을 꿨고 그랬으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언짢은 꿈인가. 우리의 상식으로서는 비할 수 없이 언짢은 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거꾸로 다니고 바로 다니고 이런 게 없습니다. 이거 우리가 바로 다닌다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 때로는 거꾸로도 되고 때로는 바로도 됩니다. 그러니 꿈조차, 꿈이 고정됨이 있겠습니까? 그건 마음먹기에 달려있죠. 그러니까 까마귀가 울고 간 것은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에 들 꿈이고, 가옥가옥이니까. 색경이 와르르 깨진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난다는 것이고, 꽃이 우수수 떨어진 것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고, 허수아비가 목을 매서 대문 밖에 디룽디룽 매달린 것은 모든 만민이 쳐다본다는 것이라고 이렇게 꿈 해몽을 해줬더랍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서 임금이 되기도 했더랍니다.
그런 거와 같이 우리가 구정물을 새 물로 바꿔서 먹어라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물뿐이 아닙니다. 물은 어디에도 들어갑니다. 물 안 들어가는 데 없지요? 일체가 물 안 들어가는 데가 없지요. 인간도 피가 없으면 바로 죽습니다. 피도 물이니깐요. 모두가 이 물 안 들어가는 데가 없듯이 우리 마음 이 자체가 바로 굴려서 놓고 바꿔놓는 데 의미가 있고 묘미가 있고 아주 지혜로운 실천이 나옵니다. 놨으면 진짜로 믿고 도로 뺏어가지고 나오진 마십시오. 진짜로 믿어야 합니다. 누굴 믿습니까? 허공을 믿습니까, 이름을 믿습니까 또는 무슨 스님네들 고깃덩어릴 믿습니까? 뭘 믿습니까? 못났든 잘났든 자기를 끌고다니는 자기 마음의 주인을 진짜로 믿어야죠. 자기 마음의 주인만이 자기를 이끌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겁니다. 그거부터 알아야 모든 일체제불의 마음도 거기에 한 찰나에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이런단 말입니다.
우리가 이 공부하는 것은, 여기서 벗어나게 되면 바로 정신계, 마음의 어버이가 된단 말입니다. 정신계의 어버이가 되죠. 구차하게 이 모습을 가지고 또 나오지 않고도 말입니다. 마음의 어버이가 돼서, 정신계의 어버이가 돼서 여러분의 마음에 그저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대로 응해주는 그런 법신, 응신, 관세음, 지장, 용신, 지신 뭐 아니 되는 게 없이 다 되시면서 그렇게 응해주신다 이겁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벗어날 길은 이 길밖엔 없는데 좌천이냐 승진이냐는 겁니다. 인간은 중세계에 지금 살고 있으니깐요.
제일 바빠야 하는 것이 뭐냐? 지금 여러분 사는 것이, 지금 살 양으로 재산, 돈, 옷 좋은 거, 집 좋은 거 전부 이런 거 허무맹랑하게 찾는 것이 급한 게 아닙니다. 이게 급한 게 아니에요. 그거는 그저 꾸러 가지 않고, 그저 굶지 않고, 옷 헐벗지 않고, 길거리에서 자지 않으면 됩니다. 아까도 애기했지만 하나도 가져갈 수가 없거든요. 자기 몸뚱이도 가져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가져갑니까. 그거 쓰다듬고 매일같이 세수하고 수염 깎고 모두 했던 거를 그냥 몽땅 다 버리고 갑니다. 하이구! 그 이뻐하고 미워하고 했던 거를 말입니다. 이 정 저 정 다 들은 거를 다 버리고 가요. 아니, 그렇게 해놓구선 뭐 가질 게 있습니까?
역시 마음 닦아서 내가 이 수레바퀴 속에서 벗어나야 내가 자유롭게 일체 만물만생이 나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모두가 내 자리 아님이 없고 정신계의 혹성이나 어떠한 별성이든지 그 속에 들어가면 나 아님이 없고 내가 아니 되는 게 없고, 태양에 들어가도 내가 태양이 되고, 내가 은하계에 들어가면 내가 은하계가 되고, 달에 들어가면 달이 되고, 나오면 나오는 대로, 또 어떤 사람이 응해달라면, 돼지가 응해달래도 돼지 속으로 들어가면 돼지가 되는 거고, 이렇게 해서 성장을 시키는 바로 정신계의 어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거를 이름해서 부처라고 했던 것은 바로 상하가 없이 모두, 스님들끼리 살 때는 스님이 높고, 상인들끼리 살 때는 상인이 높고, 뱃사공은 뱃사공대로 높고,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높고, 제가끔들 가난하든지 못났든지 잘났든지 그 집안에서는 다 높은 분들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무리 못났어도 내 가정에선 내 남편으로서 제일 높죠. 안 그렇습니까? 가정에선 내 자식으로서 제일 높고, 내 부인으로서 제일 높고 그러니까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이다. 그래서 부처다 이겁니다.
부처라는 것이 ‘나는 깨우쳤다. 내가 제일 높다.’ 하는 그런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두가 높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뜻에서 부처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마음공부 하시는 데 될 수 있으면 거기다 맡겨 놓고 도로 쥐고 나오지 마시고, 맡겼다가 도로 들고 나오면, 서류를 도로 들고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몇 사람 말고는 전부 들고 나와요, 도로. 그러고는 안되느니 되느니 하고 야단이에요. 왜 맡겼는데도 안되느냐 이거죠. 아, 잘 맡겼으면 그럴 리가 있겠나요? 못 맡겼으니깐 그렇죠.
이제 질문하십시오.
▲질문자1: 참선곡에 경허 큰스님이 말씀하신 ‘돌장승이 아이 낳으면 그때 말하리라.’ 하는 마지막 구절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십시오.
▲스님: 설명으로 될 일도 아니에요. 설명으로 될 일이 아니라 마음공부를 잘하면 바로 돌장승이 우는 소리, 애기 낳는 소리, 눈물을 흘리는 소리 그런 것도 다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공부를, 모든 거를 한군데로 몰아서 놓고 한군데서 몰아서 나와도 줄지 않고 늘지 않느니라 했습니다. 그 도리를 알면 바로 돌장승이 애기 낳는 도리도 알고 모두 그렇습니다.
▲질문자2: 원효 스님께서 저희들에게 일러주시고자 했던 말씀과 스님께서 저희들에게 항상 들려주시는 주인공 자리에다 되돌려 맡기시라는 말씀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하여 두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첫째, ‘귀의심원 요익중생(歸依心源 饒益衆生)’ 즉, 뜻으로 이해하면 일심의 근본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봉사하고 유익되게 하라. 둘째, ‘무리지 지리, 불연지 대연(無理之 至理, 不然之 大然)’ 역시 뜻으로 이해하면 이치 없는 것은 지극한 이치요, 그러지 아니한 것이 크게 그러하다는 말씀인데 여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스님: 얼른 쉽게 말하면 모든 마음을 한데 모아 원을 세워서, 예를 들어서 한데 한마음으로 모은 그 마음을, 그 중심을 가지고 들이고 낸다면 바로 이익이 될 것이로다 한 것입니다. 모든 것에 이익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나는 또 뭐라고 말을 했느냐. 그 말은 거기 그렇게 써 있지마는, 한군데다 놓고 한군데로 들이고 내니 그 하나로 돌아가는데 모두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가니까,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니까 모든 거를 거기다 놓고 둘로 보지 말라. 둘로 보지 말고 어떠한 잘못이 됐더라도 내 탓으로 돌리고 둘로 보지 말고 부드럽게 말해줘라 했습니다.
모든 생물들에도 ‘보시하라’ 이렇게 했었죠. 지금은 ‘돌봐줘라’ 이렇게 되겠죠? 그런데 우리가 말할 때 내 아픔 아님이 하나도 없다 이런다면, 그냥 몰아서 다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이렇게 말할 때는 일체가 하나로 돌아가면서 이것이 근본자리로 들고 나는 것이 ‘보시’입니다. 그때 시절의 용어로는 그랬겠죠.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만큼 말이 좀 달라야 알아듣기 쉽겠죠.
그리고 그 다음에 말씀하신 거요, 우리가 안과 바깥이 따로 없겠죠? 안이다 해도 아니 되고, 바깥이다 해도 아니 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 들어오는 문도 여기 안이 아니고 그 안도 바깥으로 나가려면 바깥이 아니고 이렇게 되는 마당에서 바깥이 아니다 그렇다 이렇게 따진다면 크게 이룰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아니다 그렇다 하는 그 가운데서 들어와도 나가야 되고 나가도 들어와야 하듯이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들어가야 옳다, 나가야 옳다’ 이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들어올 때가 되면 들어오고 나갈 때가 되면 나가고 이러는 거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이게 이것도 따질 수 없고 저것도 따질 수 없으니 이게 바깥이다 안이다, 없다 있다 하질 말라. 없다 있다 하질 말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오는 대로 닥치는 대로 그냥 쓰고 행하고 말하고 가는 것이 그대로 법이다 하는 뜻입니다.
▲질문자2: 쉽게 알아들었습니다. 아까도 이성계 꿈 이야길 해주셨는데요, 꿈이란 것을 통해 나의 행동을 참고하고 살아도 좋은가, 아니면 단순히 무시하고 지나가도 좋은가 하는 점에서 과거 경험으로 볼 때 누구나 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꿈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시켰다가 도리어 후회를 하는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거든요. 그래서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을 나의 행동의 참고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는 거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스님: 지금 생시에 생각하는 것도 꿈이에요. 우리가 요렇게 요렇게 하겠다 하는 것도 꿈이거든요. 그런데 자면서 꿈을 꾸는 것도 꿈이거든요. 그러니 꿈 아닌 게 하나도 없지요. 그래서 꿈 잘 꿔라 이러지요. 잘돼라 하는 것도 꿈 잘 꿔라 이렇게 할 수도 있죠. 그러니깐 꿈을 꾸고 안 꾸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지금. 그러니까 나쁜 꿈을 꾸었으니깐 이건 나쁘겠지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되죠. 그러니깐 나쁜 꿈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바꿔서 이거는 나를 가르치는 꿈이다라든가, 좋은 꿈이다라든가, 나를 이끌어주는 꿈이다라든가 이렇게 해서 거기다가 맡겨 놔라 이 소립니다.
또 생시에도 그렇습니다. 생시에도 무슨 생각이 들었으면 ‘아, 이것도 바로 거기서 나오는 건데….’ 그러면 사방을 딱 둘러보고 이것이 해야 할 자린가 하고 한번 검토해보고 결단을 내리는 것도 법입니다. 그것도 꿈이고요. 그것이 꿈 해몽의 실천입니다.
▲질문자3: 제가 이 법을 배우기 전에는 제가 저지른 죄의 대가인지 세상에서 저한테 돌아온 화살을 그대로 다 받아갖고 굉장히 괴로워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 관하는 도리를 스님께 배운 뒤로는 나에게 돌아오는 화살을 무심(無心)으로 받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과거의 괴로움에서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드리고 싶고요.
제가 책에서 보니까, 부처님께서 수행을 하실 때 어느 선지식께 “당신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식처(識處)를 떠나서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깨달았다.”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리고 다음 선지식께 “당신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하고 여쭤봤더니 “난 식처를 떠나서, 무소유처 착을 떠나서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을 깨달았다.”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저는 그걸 알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스님께 지도를 계속 받으면서 그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데 잘 공부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 과정에 대해서 한 번 더 확실하게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스님: 이거 봐. 공부가 안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다 놓고, 되는 것도 감사하게 거기다 놓고 이러고 돌아가요. 그리고 안 보이는 데를 보고, 들리지 않는 데서 들었고, 움죽거리지 않는 데서 움죽거리는 걸 알았어요. 그 말이에요, 그게. 보이지 않는 데서 보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들었고, 움죽거리지 않는 데서 움죽거림을 알았다 이 소리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무의 세계, 즉 정신세계를 지금 물질세계와 이렇게 동시에 같이 작용을 하는 도리를 알려고 이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로 알려고 애를 쓰지 말고 뜻으로 알려고 하세요.
그러니 책을 보는 것도 책이 보게 하지 말고, 책을 보지 말고 보십시오. 말에만 끄달려서는 절대 안 되고 하나를 알더라도 실천을 하는 데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상시의 생활이 그대로 참선이 됩니다. 생활이 그대로 도입니다. 이 도리를 꼭 증득하십시오.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65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