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公約)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공적(公的)인 약속이다. 공적인 약속은 공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이행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함께한다. 그런데 그것이 일반적으로 헛된 약속이라는 의미의 공약(空約)으로 치부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타락한 정치 풍토, 공인의 말에 대해 철저히 이행을 촉구하는 국민의식이 아직 성숙치 못한 우리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불교계에 대한 공약의 이행도 점검에서도 드러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불교계에 제시한 공약 10개 가운데 크게 보아 4개 정도는 이행되었다 할 수 있고 4개는 이행되지 않았으며, 나머지 두개는 불교계로 보아서도 이행이 불가능한 공약이라 한다. 아직 공약의 40%도 이행하지 않은 노 대통령의 경우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보다는 이행 지수가 높은 것이라 하니 과연 과거 대통령의 헛된 약속 지수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우선은 그나마 높은 이행률을 보이는 것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현실성 있는 약속을 지켜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은 공약 이행률 달성을 촉구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공약 이행을 전적으로 약속한 사람에게만 맡기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며, 약속이라고 해서 또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고 하는 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의 정치는 이상적인 모습을 띄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약속이 이루어진 쌍방의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한다.
결국 불교인들이 공약의 성실한 이행을 앞당기고 촉구하는 결집된 힘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 약속이라고 해서 국가적 차원이나 불교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득실이 불분명한 사안들은 지금이라도 현명하게 판단하여 보류할 수 있는 것은 보류하도록 해야 마땅하다. 불교계를 위하면서도 또 우리 민족과 국가를 위해 시급한 일들을 미리 생각하고 집약해 정치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불자들의 성숙한 정치의식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와 종교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또한 상생 공조하는 이상적 모습을 실현할 수 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행을 촉구하는 데서부터 우리 불자들의 성숙해가는 정치의식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