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하는 주인공도 깨달음의 주인공도 나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깨달음의 세계에 어서 빨리 들어가고픈 젊은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덕이 높은 큰 스님을 스승으로 섬기며 지냈습니다.
젊은 수행자는 스승을 모시면서 틈만 나면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스승님,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그런데 스승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너만 못하다. 네 스스로 깨달아라.”
젊은 수행자는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얼마나 큰 가르침을 주시려고 이러시는 걸까? 언제나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스승이 혼자 있는 모습만 보이면 젊은 수행자는 뛰어 들어갔습니다.
“스승님, 제발 좋은 말씀을 내려 주십시오.”
“네 스스로 깨달아라. 나는 너만 못하다.”
젊은 수행자는 스승의 무덤덤한 태도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가고 자기 손에 쥐여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젊은 수행자는 무시무시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르침을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스승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큰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외진 곳에서 스승을 기다렸습니다. 오직 끝장을 내고야 말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을 지나던 스승과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수행자는 대번에 스승의 멱살을 움켜잡았습니다.
“이래도 제게 말씀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멱살이 잡힌 스승은 숨이 막혀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는 스승을 노려보던 젊은 수행자는 비장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스승이라 해도 이제 더는 못 참겠습니다.”
스승을 향해 주먹을 치켜드는 순간 스승이 제자에게 말하였습니다.
“네 스스로 깨달아라. 나는 너만 못하다. 제발 네 스스로 깨달아라. 나는 너만 못하다.”
자칫 경을 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목이 조인 채 간신히 내뱉은 스승의 대답이었습니다.
젊은 수행자는 그 순간 무엇에라도 얻어맞은 듯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벼락을 맞은 듯 그는 전율하였습니다. 짜릿한 느낌이 온 몸을 쓸고 내려가자 커다란 돌덩이에라도 짓눌린 양 무겁기 짝이 없던 가슴이 순식간에 개운해졌습니다. 어둡기만 하던 세상이 환해졌습니다.
눈앞이 깨끗해지자 주먹을 쥐고 있는 자신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주먹이 보였습니다. 분노에 차올라 스승을 향해 높이 쳐들었던 주먹이었습니다. 그는 멱살을 쥔 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 앞에 태산이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온몸을 던져 절을 올렸습니다.
책에서는 그가 활연히 대오[豁然大悟]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그의 깨달음의 순간은 벼락을 맞은 듯 전율하였으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는 스승의 말에서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요? 그 수행자 본인이 아닌 이상 그의 깨달음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만 못하다, 네 스스로 깨달아라”라고 되뇌는 스승의 말에는 저 역시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며칠 전 저는 위빠사나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한 낯선 이를 만났습니다. 묵언의 규칙을 깨고 그이는 말하였습니다.
“간화선이고 위빠사나고 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군요. 위빠사나 수행을 한 스님에게서 좋다고 들어서 왔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저보다 앞서 그곳을 떠나갔는데 그가 남긴 여운에는 실망스러움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 ‘좋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초심자를 대상으로 불교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저는 종종 묻습니다.
“왜 이곳에 오셨습니까?”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이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요…”입니다.
불교공부를 좀 해보았지만 알 듯 모를 듯 하고 뭘 말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이들에게 ‘대체 뭘 알고 싶은가?’를 물으면 그들은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갸웃합니다.
번뇌에 시달리는 주인공도 자기이고 깨달음의 주인공도 자기이거늘, 자기가 왜 그곳에 있는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스승은 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너만 못하다. 네 스스로 깨달아라.”
(젊은 수행자는 중국 송나라 때 양기방회 선사이고, 스승은 자명 선사입니다. <직지심체요절> 하권에서 발췌하여 조금 살을 덧붙여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