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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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와 전통, 삶의 질/김상득(전북대 윤리학과 교수)
초등학교 학생이 엄마에게 묻는다. 왜 나는 아빠와 성이 달라? 이는 아직 합리적 사고가 부족한 아이의 물음이다. 합리적인 인간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나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는가?
사실상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이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정자와 난자를 통해 동등한 몫의 유전자를 제공하면서도 어머니는 자궁을 제공하여 1개월 동안 자신의 몸 속에서 아이를 ‘생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 더 가까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지 관습 내지 전통 탓으로 아버지 성을 따를 뿐이다. 조선시대와 같은 신분이 구분되는 유교사회에서는 호주제 제도가 사회 질서 유지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남녀가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성으로 그 사람의 ‘뼈대’를 평가해서는 안 되며 또 그럴 수도 없다. 무엇보다 호주제는 아버지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아이들을 학교나 사회에서 따돌려 불행의 늪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호주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위배됨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일치 결정은 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결정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호주제를 대신할 새로운 가족법을 창조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우리는 호주제가 헌법의 근본정신과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뒤에 숨겨진 의미를 몇 가지 되새겨보아야 한다.
첫째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 재조명이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무엇인가? 이제까지 ‘배의 선장 모델’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여 왔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장(家長)이라는 호칭과 호주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가정은 배가 아니다. 배는 오직 목표 지점을 향해 모든 선원들이 힘을 모아야 하지만, 가정에는 그러한 한 가지 목표가 없다. 가족은 각자 자신의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가장이라는 말은 남자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말이다.
호주제 폐지는 결코 남성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까지 과중한 짐으로 휘어진 남성의 어깨를 바로 펴도록 하는 순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가정은 가장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 행복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이다.
둘째, 우리는 “어떠한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혈연중심의 가정을 이상적인 가정으로 당연시하여 왔다.
그 단적인 예가 콩쥐팥쥐 신화이다. 어린 시절 엄마 무릎에 누워 단순히 재미로만 들었던 콩쥐팥쥐 이야기 속에는 팥쥐 엄마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숨겨져 있다. 팥쥐 엄마가 누구인가? 바로 새 엄마이다. 다시 말해, 팥쥐 엄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미 보편화되고 있는 재혼 가정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이어진다. 혈연적 부모가 아닌, 새 엄마 슬하에서도 훌륭한 자녀가 자랄 수 있다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빌 클린턴은 재혼 가정에서 성장하였지만 한 나라의 위대한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 아름다운 가정을 만든다는 것은 혈연이 아니라 사랑이다.
호주제 위헌 판정은 결코 가정이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대로 참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남성 중심의 가정이 아니라 부부와 자녀 모두가 중심이 되는 가정, 혈연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21세기에 회복되길 기대해본다.
200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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