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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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찰나 놓고 하루살이로 살아야
우리는 정신계와 물질계의 교차로에 서있어

이렇게 추운데도 불구하고 한자리를 해 주신 여러분을 볼 때에 정말 100% 벗어나서 세세생생 삶의 보람을 느끼며 자유인으로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그런 분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우나 더우나를 떠나 테두리 안의 물주머니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을 가지셨으니 얼마나 갸륵한 일입니까. 내가 다 고개가 숙여집니다. 하여튼 어항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이 공부를, 공부라기보다도 생활 속에서 함이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묘법의 도리를 여러분께서 잘 알아서 행하시도록 노력하십시오.
아무리 부처가 된다, 벗어난다, 안다 할지라도 놓아야 합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 가고 아는 것도 물어가면서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내가 단식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겠으니 나중에 여러분이 질문하세요. 알아도 질문이고 몰라도 질문이에요.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여 같이 공부하는 데 동참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몰라서만이 아니라 알아도 해야 합니다.
단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한마디 하겠습니다. 보통 불상을 만 불을 모셔놔도 하나가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하나가 빠지는지, 또 원효 대사가 설총에게 쓰레질을 하라고 그랬을 때에 깨끗하게 쓰레질을 해 놓으니까 한 무더기 집어서 훌훌 끼얹어 놓는 그 까닭은 무엇인가? 운주사에 천 탑과 천 불이 모셔 있었다고 그러는데 공부한 사람들의 의견은 일 불이 있어도 천 불이며 만 불이고 삼 불이 있어도 삼천 불이 될 수 있고 삼만 불이 될 수 있고 삼십만 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와불, 앉아 계신 불상, 서서 계신 불상, 목이 잘린 불상, 다리가 잘린 불상, 코가 떨어진 불상 등 이렇게 모두 다양하게 계신 원인이, 산중에도 보면 병들은 나무, 죽은 나무, 삐뚤어진 나무, 똑바로 서 있는 나무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네들의 살림살이에 속하는 것입니다. 원효 대사가 한 움큼 집어다가 끼얹었다고 하지 않습디까?
완성이라는 건 없습니다. 항상 흐르면 또 들어오고 흐르면 또 들어오고 이렇게 쳇바퀴 돌아가듯 돌아가는 것이 진리지 완성해 놨다고 끝이다 한다면 끝이 아닌 것이죠. 끝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자라도 모자람이 아니고 잘해도 잘함이 아니라는 겁니다.
옛날에 제가 어느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지쳐 쓰러져서 엉금엉금 기어가 조금씩 흐르는 물을 마시는데 한 모금 마시니까 삼천 모금을 마셨다고 하고 또 한 모금을 마시니까 삼천 모금을 마셨다고 하고, 또 한 모금을 먹으니까 두 모금을 마셨다고 하고, 또 한 모금을 먹으니까 세 모금이 아니라 삼세의 모든 물을 다 마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무엇을 생각했느냐면 ‘가도 없는 것이고 와도 없는 것이고 마셔도 없는 것이고 마시지 않아도 없는 것이구나. 이 없는 것 가운데에 아주 선명하게 그렇게 나와 있구나. 그 모두가 같이 돌아가지만 모습이 다 달라서 천차만별로 각계각층으로 차원이 되고 그렇게 모두 다 다르구나. 다르면서도 그 마음은 체가 없기 때문에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법이 되어서 바깥 현상으로 나오게 되고 현상으로 나오면 그것을 우리가 법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모두가 이러하니 완성을 생각하여 끝을 내려 하지 마시고, 꼭 이것을 알아야겠다 하는 마음도 한 찰나에 놓고 하루살이로 한 찰나 사셔야 됩니다. 그래야 지루하지 않고 항상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공부하는 사람들이 단식을 한다고 그러는데 단식이라는 게 밥을 굶고 먹을 것을 안 먹는 것이 단식이 아닙니다. 근본 단식은 먹어도 먹는 사이 없이 먹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얘기하지만 여러분이 아무 생각 없이 걸어왔기 때문에 그것도 단식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왔기 때문이지 만약 걸음을 걷는 대로 움켜잡고 왔다면 그건 단식이 아니죠. 우리가 무엇을 먹을 때 항상 이걸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고 먹습니까? 그냥 먹게 되면 먹는 거지요. 똥을 누는데도 눠야 될까 안 눠야 될까 하고 똥을 눕니까? 일상생활이 그대로 단식이고 그대로 활공법이며 여러분이 그대로 하고 계신 겁니다.
그런데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면서도 마음에 관습 집착 욕심이 끼어 밝게 뜻을 헤아리지 못해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발을 떼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모르시는 겁니다. 그대로 묘법이고 그대로 활공법임을 제대로만 안다면 그대로 넉넉할 겁니다. 그래서 단식이란 닥치는 대로 먹되 먹은 사이가 없이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단식이란 말을 안 할 뿐 단식을 하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 몸속의 많은 자생중생들이 바로 자기이기 때문에 혼자 먹는 게 없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혼자 먹는 게 없고 혼자 보는 것도 없고 혼자 듣는 것도 없고 혼자 가고 혼자 오는 것도 없고 혼자 사는 것도 없고 혼자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혼자 망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여여하게 걸림없이 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본래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지수화풍이 본래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그 바탕으로 인해서 광력 자력 통신력 전력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겁니다. 못났든 잘났든 부자든 가난하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본래 가지고 있습니다.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잘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나온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하고 놓고, 안되는 것은 ‘구정물이 새물로 나오게 할 수 있잖아.’ 하고 바꿔서 거기 놓아야 합니다. 구정물이 나오게 입력이 돼 있다면 구정물만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거라면 구정물도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한마음 속에서 새 물을 나오게 할 수 있잖아.’ 하고 대치를 해서 거기다 다시 놓는 겁니다. 이것이 굴려 놓는 것입니다.
주인공을 믿기는 믿되 굴려 놓지 못한다면 생활에 장애가 있어도 타파를 못합니다. 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해서 천차만별로 다가오는 대로 어찌 다 타파를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마음으로 하는 작업은 돈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물리가 터져야 되고 지혜가 생겨야 되니까 항상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서 뚫고 들어가 앉듯 쪼아야 하는 것이죠. 바깥으로 믿고 이름을 찾는 게 아니고 안으로만 믿고 너만이 해결할 수 있고 너만이 낫게 할 수 있고 너만이 이끌어갈 수 있고 너만이 깨우치게 할 수 있고 너만이 물리가 터지게 할 수 있고 가정을 화목하게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일거일동 자기가 움직이고 걸음 떼어 놓는 것까지 오로지 주인공 뿌리에서 나오는 것임을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이 도리를 배우고 체험하면서 자꾸자꾸 발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마음의 발전이 돼야 지혜도 생기고 마음의 발전이 돼야 창조력도 생기고 마음의 발전이 돼야 시야를 넓힐 수 있고 넓게 들을 수 있기에 한 걸음 떼어 놓을 수 있고 한 걸음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거듭 반복되는 시점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자유스럽게 삶을 살 수 있어야겠죠.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 49년 설해 주신 겁니다.
세상을 보면, 상대를 믿고 상대에게 기도를 하고 상대에게 원을 세우고 상대를 스승으로 삼고 하는데 그것은 아니 됩니다. 석존이 여기 계시다 할지라도 석존의 육신을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을 세워야 석존의 마음이 내 마음을 통해서 내가 됐다 석존이 됐다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를 여러분이 몰라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꽃이 내가 되고 내가 꽃이 되고 석존이 내가 되고 내가 석존이 되고, 또는 몸 안의 수많은 중생들이 내가 됐다가 맘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우리들한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한생각 하기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어느 사람이 와서 묻기를 “스님, 귀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묻기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겁니다.” 하니까 “올해는 잘 보는 사람이 그러는데 물에 빠져 죽을 운수라고 하면서 물가에 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없습니까?”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에 당신이 물귀신이라면 물귀신한테 말려서 죽을 거고 그렇지 않다면 물귀신하고는 멀 겁니다. 당신의 마음이 물귀신이니 물귀신한테 말려 죽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니깐 고개를 갸우뚱하고 가더니, 연세가 많은 분인데 그 후 몇 달 후에 다시 와서 하는 말이, 물가엔 안 나가려고 애를 쓰다가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손님이 오신다고 깨끗이 물청소 해 놓은 계단을 올라가다가 그만 물에 미끄러져 곤두박질을 치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 몇 달을 못 일어났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봉변을 당했는데도 물귀신이 없습니까?” 이러는 겁니다. 아, 그러니 어떡합니까. 그래서 “당신이 물귀신한테 말린 거지 다른 게 물귀신이 아닙니다. 당신 마음이 물귀신이기 때문에 물귀신이라는 마음에 몸이 말린 겁니다.” 그래도 알아들으셨는지 못 알아들으셨는지 그러냐고 그러고는 가십디다. 그리고 여태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게 어줍잖은 말 같지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사실 한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업이 망해서 훌떡 넘어가게 생겼는데 한생각을 몰아서 그냥 쫙 하니까 활기를 띄고 다시 일어났답니다. 한생각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여러분은 한생각을 우습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지만 한생각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한생각이라는 것은 공덕을 말합니다. 한생각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내면의 의식들이 한데 합쳐 주고 일체제불의 마음이 한데 합쳐 주는 한생각입니다.
개별적으로 혼자 하고 혼자 살고 혼자 했고 혼자 벌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원리의 물리가 터져야 우리가 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공해서 내세울 게 없다는 사실, 우리가 항상 생활 속에서 발을 떼어 놓고 움죽거리고 눈을 뜨고 귀를 열어서 듣고 살아도 혼자 듣고 보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혼자 봤다 들었다 산다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자기라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이 속에서 ‘어허! 너 아직도 꾀가 많구나. 내가 이렇게 작용을 해 줘서 네가 다니는 줄 모르고 나를 무시했어? 너 그러면 좀 망해 봐라!’ 이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아집을 갖지 말고 공심 공용 공체로 공식화하고 돌아간다는 사실을 좀더 깊이 생각해서 알게 되면 모두가 유해지고 상대방이 갈고리를 쥐고 찍으려고 하다가도 상대방까지 유해지고 찍으려고 하던 것이 슬며시 놔진다 이 소립니다. 악해졌던 마음들이 선해져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화해서 바뀐다 이거죠. 그러면서도 나에게도 이익되고 상대에게도 이익이 되어 인과응보에서 벗어나고 유전성에서 벗어나고 영계성에서 벗어나서 한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세균성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것이죠. 모든 업보 속에서 벗어나게 됨으로써 스스로 자유스러워진다 이겁니다. 누가 자유스러워라 자유스럽지 마라 하고 억압적인 일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이쪽으로 가면 구덩이에 빠질 건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안에서 잘 인도하여 더 좋게 만드는 겁니다. 마치 자동 컴퓨터처럼 자기 안에서 저절로 나오는 거죠. 여러분이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 어떻게 상대를 원망 안 하고 내 탓으로 돌리면서 돌아가느냐에 달린 겁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뭘 잘못해서 내 탓으로 돌립니까?” 합니다. 그러나 잘못하고 잘하고를 떠나서 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내 탓이죠. 항상 그런 말 합니다만 소가 가다가 언덕이 없으면 비비지 않습니다. 언덕이 있기 때문에 비비죠. 그런 까닭에 우리가 이 세상에 났으니까 이 나온 자체가 바로 내 탓인 것입니다. 잘못하고 잘하고 간에 말입니다.
▲질문자1: 스님, 한마음 도리를 가르쳐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안다는 것과 마음을 본다는 차이점에 대해서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안다는 것도 아니고 봤다는 것도 아닙니다. 아까도 얘기 했지만 평상시 똥 눌 때 똥을 눠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눕니까? 또 먹어야 하나 안 먹어야 하나 하고 먹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그대로 스스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보고 듣고 그냥 하고 있지 않아요? 말과 행과 뜻 모두가 말입니다. 단지 우리가 모르니깐 한마음을 봐라, 참 마음을 찾아라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있다는 증거입니다. 확실한 증거지요. 자기 참마음과 몸이 둘 아니게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겁니다.
▲질문자1: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체가 없는 참마음은 성품의 작용에 의해서만 볼 수 있습니까?
▲스님: 실체가 없이는 참마음이라는 게 없어요. 실체가 있기 때문에 참마음이라는 게 있지요. 그러니까 참마음과 실체가 둘이 아닌 까닭에 그대로 동시에 움죽거리는 그 자체가 그대로 실체이며 참마음에서 나오는 움죽거림이지요.
▲질문자1: 상대성원리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스님께서 마음법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첫째 내가 죽어야 하고, 두 번째는 너와 나와 더불어 죽어야 하고, 세 번째는 더불어 나툴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과, 유가 유를 죽이면 무가 되고 유ㆍ무를 동시에 죽이면 중도이자 공이 되며 유가 무를 살리고 무가 유를 살리면 그 활공법이 전자의 말씀과 같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스님: 유무를 같이 동시에 놔서 함이 없이 한다면 그것이 활공법이죠. 그런데 그것도 이름해서 활공법이지요. 아까 나를 죽여야 나를 본다 그랬지요? 내가 죽어 모든 것을 놓아 나를 발견하고 내가 탄생했다 하더라도 아직은 갓난 어린애와 같아서 첫 번에는 내 자생중생하고 둘 아니게 죽어야 됩니다.
나를 죽여야 된다 하는 것은 내 자생중생들을 나와 더불어 둘 아니게 만드는 것으로 그것이 나를 깨닫는 법이요 내가 탄생하는 법이죠. 두 번째 둘이 아니게 더불어 죽어야 한다는 것은 외부의 모두와 둘 아니게 죽는 도리를 알아야 둘 아닌 도리를 안다는 것이고, 셋째는 둘 아닌 도리를 알기 때문에 둘 아니게 나툴 줄 알게끔 또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처음에도 죽어야 하고 두 번째도 죽어야 하고 세 번째도 죽어야 한다, 나라는 걸 세울 게 없어야 죽는 것이죠. 나라는 걸 세울 게 없어야 둘 아니게 고개가 숙여져요. 둘 아닌 도리에 의해서만이 여래라는 이름이 나왔고 부처라는 이름이 나왔지, 각각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하고 나를 세운다면 부처가 될 수 없고 여래가 될 수 없고 둘 아닌 도리의 나툼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자2: 스님께서 법당을 오르내리실 적에 자명등이 서 있습니다. 그 자명등에 불을 붙여 주시면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자명등이 될 것입니다.
▲스님: 전부 석등이죠. 석등에 불이 원래 켜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움죽거리지요. 본래 켜져 있으니 그 본래 켜져 있는 광명의 빛을 자기가 응용해서 켜고 끔이 없이 켜고 끄고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명등의 불은 켰다 안 켰다가 없이 본래 켜져 있습니다. 활활 타고 있습니다. 영원토록 간직하고 활활 타고 있는 불을 못 보고 모르기 때문에 못 쓸 뿐이니, 그 불이 여러분 앞에 자유스럽게 쓸 수 있게끔 켜져 있다는 것을 아세요. 아까 얘기했죠? 광력 전력 통신력이 충만하게 주어져 있다고요. 그것이 바로 광명등입니다.
▲질문자3: 지난 달에 스님께 말씀드리고 돌아가면서 느꼈던 게 나도 이 공부를 해서 중생구제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중생구제란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습니다. 내가 진짜 무슨 원력을 갖춰서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참된 것이 되겠지만 그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스님께 고통을 호소하고 하소연하는 그 분들 자신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걸 확신시켜 주고 그게 길고 어려운 길이지만 그 힘을 자신이 스스로 밝혀내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도록 이끌어 주시니 중생이 부처임을 알아서 부처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참된 구제구나 하는 걸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쭙고 싶은 것은 아무튼 그날 스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확신을 가지고 제가 제 실생활에 한번 체험을 해 보기 위해서 주위의 아픈 분들이나 저의 부모님 경우를 믿고 맡겼습니다. 그런데 잘 안됐습니다. 하지만 한두 번 안된다고 해서 물러날 나도 아니고 내 평생토록 맡긴 게 다 안된다 하더라도 나와 둘이 아닌 역대 조사들이 피눈물을 흘려가면서 입증을 해왔고 또한 스님께서 이 땅에서 지금 활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왔는데 잘못이 있다면 내가 잘못을 했겠지 그 마음도리가 잘못됐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고 내가 과연 무엇이 모자랐고 뭐가 부족했을까? 그것을 고쳐 나가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스님께 여쭙고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스님: 맹물을 싫다고 할 때는 설탕을 가미하든 소금을 가미하든 가미를 해야 잘 먹일 수가 있겠지? 그러니까 슬쩍 가미를 하라고. 왜냐하면 때에 따라서 불을 켜려면 소켓트도 달아야 하고 이러지 않어? 그런데 그냥 무조건 불을 켜려고 한다면 켜지나, 어디? 그러니까 가미를 해, 하나로. 이 스님도 때에 따라선 끌어다 쓰라고. 가미를 해서 줘야 제대로 먹혀 들어갈 수 있잖아. 잘해 봐요.

▲질문자4: 저는 질문드리려고 이 자리에 앉은 게 아니고 스님께 감사의 말씀 드리려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제가 새 생명을 얻고 환생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됨을 스님께 감사드리며 주인공 자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봄 저는 교통사고가 나서 온 몸이 만신창이 되고 산산조각으로 다 부서졌습니다. 어깨뼈 갈비뼈 14개, 장 파열과 콩팥 파열 골반뼈 구석구석 다 으스러진 상태에서 병원을 찾았으나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기를 권했습니다. 병원을 옮겨 그 병원에서 최선을 다해 보자며 두 차례 수술을 하였습니다. 또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백혈구 수치는 삼만까지 올라가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산지원의 스님들, 그리고 회장님의 주선 아래 처사님이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친견하고 온 후 제 몸은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고 백혈구 수치도 조금씩 내려갔습니다. 저는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스님을 얼마나 찾으며 주인공을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스님! 제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가게 해 주십시오. 주인공! 당신이 있다면, 정말 당신이 있다면 아내로서의 임무와 엄마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갈 수 있도록 당신만은 그렇게 할 수 있잖아!” 하면서 주인공을 찾으며 소리없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스님! 제가 제 고통과 아픔으로 인해 제 이웃의 아픔을 알았고 만물만생의 아픔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워있는 동안 너무나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만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매달린 의사들이 흉부외과 정형외과 외과 이비인후과 등 분야별로 네 분이나 됐는데, 그분들 모두 한결 같이 저를 지극정성 보살펴 주셨고 또 항상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간호사들도 역시 천사의 손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제 주인공의 나툼임을 알았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저에게 그랬습니다. 어쩌면 아줌마한테 의사들이 유독 저렇게 지극히 간호를 하느냐고 할 때 바로 제 주인공의 나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철사로 얽어매는 골반뼈 수술을 해야 되는데 백혈구 수치가 너무나 높아 지금 못하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기침을 하면 그 뼈의 조각조각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의사한테 말씀 드리니 그 뼈의 조각들이 골반에 들어갈 수도 있고 자궁에 들어갈 수도 있고 창자를 뚫고 들어갈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하면서 조금만 수치가 낮아지면 수술할 것이니 그렇게 작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래 주인공, 이것도 당신이 하는 것이잖아!’ 하면서 맡겼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제가 손으로 살며시 골반뼈를 만져 보니 주위가 딱딱하면서 튀어 올라온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기침을 하니까 이젠 움직이질 않는 겁니다, 뼈가. 그전에는 기침을 하면 근육에 따라 뼈가 움직였는데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한테 말씀드렸더니 뼈가 제자리로 들어갔는가보다 하면서 다시 사진을 찍고 진료를 해 본 결과 “아줌마! 안심하십시오. 뼈가 다 제자리에 제각기 찾아 들어갔으니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천만다행으로 제가 수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올 때는 의사들도 가망이 없다 했고, 모든 일가친척 주위 사람들 전부 가망이 없다고 한 제가 너무나 급속도로, 정말 급속도로 빠르게 나아지기 시작하자 의사들은 제가 화제거리이고 또 관심거리였는가 봅니다. 의사들은 “아줌마는 우리가 의술 배운 데 대한 보람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줌마가 참아주신데 대해 우리는 아줌마가 대견스럽습니다.” 그리고 간호사들도 “아줌마는 기적이고 운이 좋은 겁니다.” 하고 말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랬습니다. ‘그래, 당신들이 어찌 이 법을 알겠습니까? 광대무변한 이 묘법을 어찌 당신들이 알겠습니까?’ 하면서 주인공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살지도 못한다 했던 제가 2개월 만에 퇴원하는 영광을 찾았습니다. 제가 스님께, 그리고 우리 법우들에게 너무나 많은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말이 막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지원의 스님들, 그리고 회장님 또 수많은 법우들이 저와 함께 항상 한마음으로 이끌어 준 데 대해 너무나 큰 감사를 드리고 무지한 저에게 이 법을 가르쳐 주신 큰스님께 너무너무 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덤으로 얻은 이 육신은 오직 보살행을 하기 위해서 한마음법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스님: 뿌리만이 나무를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퉁그러진 뼈가 제자리에 가서 앉을 수 있는 것도, 태가 잘못 앉았다가 제자리에 가서 앉아 임신을 제대로 하게끔 될 수 있는 것도, 몸을 맘대로 움죽거리게 하는 것도 자기 뿌립니다. 자기 주인공 뿌리만이 움죽거리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을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내 몸 속에 있는 의식 생명 모습들만이 내 몸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겁니다. 내 몸 안에 들은 의식들이 내가 주인공을 진실로 믿고 맡길 때 통신이 되는 겁니다. 통신이 되면 그 안에서 통신을 받아 가지고 전부 작용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몸이 바꿔질 수도 있고 퉁그러질 수도 있고 좁아질 수도 있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기에 여러분이 닥치는 대로 용도에 따라서 거기에 모든 것을 맡겨 놓으면 어떤 애고든지 불에 타버리는 겁니다.

▲질문자5: 오늘도 스님께서 이렇게 마음의 양식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서 두서없이 말씀 전하겠습니다. 제가 이 공부 하기 이전에는 못 배웠고 없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큰 법을 받든 뒤부터는 모든 즐거움이나 괴로움도 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이제 겨우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스님 법문이나 책자를 많이 보고 절실히 느낀 것은 머리로 알기 이전에 단 한 가지라도 마음으로 알아야만이 진실한 법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았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스님: 그럼, 앞으로 잘 살겠네요.
▲질문자5: 예. 그런데 제가 어떤 인연이 닿아서 올 여름방학 때에 일주일 단식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 주일 단식을 하고 난 다음에 어떤 분이 단식에 관해서 물어보길래 제가 한 방법대로 해 보라고 말씀해 드렸는데 그분이 간암환자여서 제가 덜컹 겁이 났습니다. 겁이 나서 단식을 좀 더 전문적인 분한테 여쭈어 보고 하지 왜 저한테만 물어보느냐고 하니까 꼭 그 방법대로 하고 싶다 하기에 한번 해 보라고 했더니, 그분이 3일 동안 물만 먹고 그 다음에 21일 동안 단식을 했다고 합니다. 포도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단식을 했는데 단식을 하고 난 다음에 건강상태가 좋아졌는지 안 좋아졌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저에게 이야기를 해가면서 자꾸 매달리고 있는데 저는 그 환자를 낫게 해 줄 힘도 없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인연인지 몰라도 자꾸만 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저하고 마음이 통하지만 치료는 안되었습니다. 스님, 그봀„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열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관하는 법을 가르쳐 주든지 어떡하든지 그거야 보살님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의 단식이라는 것은 몸 안에서 전부 작용을 해 주는 묘법의 단식이고 음식을 끊어서 단식하는 거는 잠시 몸을 좀 비워서 병을 낫게 하려는 것이죠. 그러니까 단식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몸을 위해서 한번 해 보는 단식이고 또 한 가지는 마음의 단식이기 때문에 마음에 의해서 전체가 거기 붙어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몸속에 단식의 신호가 들어간다면 모든 것이 다 작용을 스스로 해 주게 돼 있으니까 마음의 단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전에 부처님들께서도 마음의 단식을 권하셨지 먹는 걸 끊어가면서 단식하는 걸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정신계와 물질계의 교차로에 섰다고 봅니다. 지금 현시점에서 이 교차로를 넘어서서 둘 아니게 응용하신다면 앞으로 사는 데 좀 더 편안하게 공심으로서 공용을 하고 사실 겁니다.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75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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