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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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미안해요 지율 스님/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자연과 살고자 배고픔 견딘 앵무새의 마음
조금이라도 닮아가려 노력하겠습니다

자연은 그릇이고, 인간은 그 속에 담긴 내용즉, 물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어도 그릇을 넘으면 담기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삶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릇을 함부로 대하면 금이 갑니다. 그러면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삶은 역시나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실은 자연의 질서에 지배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살아야만 그릇인 자연이 깨어지지 않고 오래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 자연이라는 그릇의 크기에 지배받고 순응하면서 그릇이 튼튼하게 유지되어 준 것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요?
갠지스강 한켠에 우담바라 숲이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어 우담바라의 붉은 열매가 가지에 가득 영글면 온갖 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숲에는 수천 마리의 앵무새가 살고 있었는데 젊은 앵무새의 왕은 우담바라 열매가 익어서 넘치더라도 필요한 분량만큼만 먹고 그 이상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열매가 없어지면 나무가 말라죽지 않을 정도로 나무의 씨앗이나 잎을 씹어 먹고 갠지스 강의 물을 마시며 만족하였을 뿐 결코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제석천은 감동하여 시험해보려고 신통력을 부려서 우담바라 나무를 모조리 말라죽게 하였습니다. 땅에는 가루처럼 부서진 나무들이 산더미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앵무새들에게는 먹을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새들은 나무의 가루를 먹고 강물로 허기를 달래었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숲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제석천은 백조로 모습을 바꾸어 숲으로 내려가 앵무새왕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추위에 강한 우리도 강추위에는 먹을 것을 찾아서 살던 곳을 떠난단다. 새란 본래 그런 것이지. 그런데 너희를 보니 먹을 것 하나 없는데도 이 나무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자 앵무새왕이 백조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오늘까지 이 나무에 기대어 연명해왔지. 어느 때는 과일과 잎을 먹고 어느 때는 가지에 앉아 쉬며 이 나무와 이야기 나누면서 나날을 보내었단다. 그러니 이 나무는 우리의 벗이며 피를 나눈 친구라고도 할 수 있어. 진실한 친구라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법 아니겠니? 나무가 말라죽었다고 해서 어떻게 금방 이 숲을 떠날 수가 있었니?”
백조는 앵무새왕의 말에 감동하였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도타운 우정이구나. 우정을 가르쳐준 너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뭔가 선물을 주고 싶어. 너는 뭘 원하니?”
“우리의 바람은 이 나무가 되살아나는 것뿐이야. 그 이상은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어.”
앵무새의 이 말을 듣자 백조는 곧 제석천의 모습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갠지스강에서 물을 길어와 바스러진 우담바라 나무에 뿌렸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나무는 금새 생기를 되찾았으며 순식간에 가지를 뻗더니 푸른 잎이 무성해지고 붉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을 보며 앵무새들은 좋아 어쩔 줄 몰랐고, 제석천은 이런 모습을 보며 말하였습니다.
“목숨이 있는 자라면 모두 이같이 앵무새왕의 마음을 닮아야 하리라.”(쟈타카 429번째 이야기)
저는 바로 며칠 전에도 KTX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KTX를 탔을 때는 그토록 멀게 느껴졌던 부산을 3시간 안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산 바로 위에 있는 밀양까지 강의 때문에 몇 번 연속적으로 타고 다니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쩜 이리도 느릴까. 제 속도 다 내면 지금보다 한 시간은 더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신속하게 공사를 끝내지 못하는 철도청측이 미련하고 무능하게 느껴진 것을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고백’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사실 그 이후에 제 이메일에는 천성산을 살리자며 공명(共鳴)해 줄 것을 호소하는 글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더딘 개발에 분개하였던 경험을 지닌 터라 차마 공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한 사람의 편리를 위해 그까짓 산 하나쯤이야 파괴되든 말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터에 손가락 몇 번 클릭으로 지율 스님의 그 실천에 동참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지율스님.
지율 스님은 “나를 보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을 보아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어서 기력을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려고 굶주림도 감수한 앵무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200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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