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 낸 시집 걸망에 담고 만행길에 무료로 나눠줘
법명도 참 특이한 도호(島湖) 스님은 1975년 속리산 법주사에 입산했다. 십 여 년, 그의 말대로라면 강호(江湖)를 떠돌다가 강원도 삼척의 풍곡이란 곳에다 산호정사(山湖情舍)란 토굴을 창건했다.
산천어가 노니는 물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 그 곳 토굴 산호정사에서 스님은 아무 거리낌 없이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그야말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제법 높은 언덕받이에 위치한 산호정사 앞뜰에 이십 년 쯤은 되었을 소나무 가지 위에다 판자쪽을 엮어 매어놓고 그 위에 올라 앉아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계곡을 응시하며 한 나절을 보내곤 하는 사람이 바로 도호 스님이다. 그는 한마디로 괴짜다.
도호 스님, 그는 괴짜답게 행적도 남다르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정천한해(情天恨海)>란 특이한 이름의 시집을 자비(自費)로 출판하고 그 시집을 몇 해 후엔 증보하였으며 얼마전엔 <시로 읽는 무림천하(武林天下)- 우주는 어쩌면 눈물 한 방울> 이란 긴 이름의 명상집을 내기도 했다.
빗소리
우둑커니
오두막집 마루 구석에
쥐어짜 쥐어짜 놓은
걸레같은 외로움
……
미친년 머리카락 숲에
이나 잡으리.
시 같기도 하고 무슨 법어 같기도 하고 허튼 소리 같기도 한 이런 류의 시집을 자비로 출판한 뒤 스님은 배낭에 걸망에 그 시집을 몇 권씩 넣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
혹시, 가뭄에 콩 나듯이, 책을 보시받은 누군가가 책값을 건네줄라치면 그는 아주 좋아하며 공손하게 합장하곤 했다.
속이 답답해지면 그는 몇 가지 옷을 걸망에 넣어 짊어지고 강호유랑 길에 나선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돌아다니다가 그러한 유람인지 방랑인지가 끝나면 그는 그제야 거처인 토굴 산호정사로 연기 스며 들 듯 스며들어 기나긴 휴식에 들어간다.
죽음보다 깊은 잠이요, 죽음 같은 기나긴 휴식에 들어가 한참동안 깨어날 줄 모른다. 곰이 겨울잠에 빠지듯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잠재운다.
도호 스님, 근간에 펴 낸 명상집에서 이처럼 한스런 절규를 내뱉고 있다.
독자여,
어여삐 받아주소서.
오, 끝없는 생사의 길. 저마다 비통한 눈물을 감추고 살아가는 요즈음 시대에 차라리 지구를 절구통에 넣어 박살이 나도록 찧고 또 찧어서 허공에 뿌려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을 어찌하오리까?
독자여,
나의 형제 오오, 나의 동료들이여.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공연히 소리 높이는 이 허약한 중생의 잠꼬대를 대자대비로 굽어 살펴 주옵소서. 나무관세음보살
독자들에게 주는 글 후기에서 이런 한스런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다.
그런 그가 이제 그의 말대로의 강호유랑을, 방랑을 끝냈는지 어쨌는지 몇 년 전부터는 아주 작심하고 여름 하안거와 겨울 동안거를 따지지 않고 꼭 선방에서 보내고 있다.
하안거를 지내고 동안거를 지내고 난 끝엔 어김없이 토굴 산호정사로 연기처럼 스며들어가서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혹은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고 혹은 씻겨져 나간 텃밭을 손보고, 그러면서 그만의 보금자리에서 혼자 머문다. 곰의 한 겨울 기나긴 동면처럼 저 혼자 그렇게 지낸다. 그런 그가 어떨 때는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무척이나 자유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요번 겨울 안거는 덕숭산 수덕사에서 보내기로 했어요. 방부 다 들여놓고 왔어요…”
만사태평이란 듯 그는 하룻밤을 머문 뒤 이 말을 하고 떠나갔다.
찬바람 부는 이 겨울밤에 그는 깨어 일어나 있을 것이다. 깨어 일어나 덕숭산 자락을 휩쓸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그의 끈질기고 한스러운 고뇌가 이제 그 나래를 접고 안녕해지기를 바란다.
■봉화 청량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