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해방 60년이 된다. 우리는 식민지 수탈과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폐허로부터 눈부신 경제적 성공을 이룩하였으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초 일류기업과 상품, 브랜드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교육의 힘이었다. 앞선 세대들은 인간은 오직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모름지기 사람은 배워야 산다’고 믿었으며, 그것이 곧 대한민국의 진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제도 교육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소홀히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교육받은 훌륭한 개인이 많다는 것은 소중한 사회적 자본이며,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를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희망이기도 하다. 교육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생산, 유통, 소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식기반 정보사회로 생산양식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문맹률이 세계 최저인 나라, OECD국가 중에서 중ㆍ고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단연 상위권이고, 미국 대학이 배출한 외국대학 출신 박사 중 서울대학교 졸업생이 가장 많으며,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대학입학 정원이 더 많은 나라, 그런 나라에서 지난 수능시험에서 일부 수험생들이 핸드폰을 이용하여 컨닝을 하였다.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의 시험지를 대리로 작성해주고, 학부모를 상대로 점수 장사를 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유력 인사와 부유층 자제들의 성적을 부정한 방법으로 올려주었다. 지방의 일부 의과대학 대학원은 의사들을 상대로 석ㆍ박사 학위 장사를 하고, 대학생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대리출석ㆍ시험을 의뢰하였으며, 대기업의 강성 노동조합은 취직 장사를 하였다.
이 모든 탈도덕적인 행태의 원인으로 사람들은 학벌사회, 입시제도, 돈 중심적인 가치관 등 저마다 그럴싸한 원인을 제시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지식과 창의력 교육에 주목한 나머지 인성, 도덕 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의 전달 속도가 느렸던 산업사회에서는 어떤 도덕적 행위지침은 장기간 유효했던데 반해, 정보사회에서는 도덕의 근거설정이 어려워지고, 옳은 것ㆍ좋은 것의 기준이 빨리 변하기 때문에 도덕적 정당화가 지속되기 힘들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가치 있는 것’의 기준이 변하는 가치 불확실 사회에서 ‘많이 아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인격적으로 품위 있는 사람’보다 존경받는다. 인터넷과 개인 휴대통신의 발달은 모든 공적인 의사소통을 사적 담화(私密化)로 격하해버리고, 첨단 네트워크 기술은 신뢰에 기반한 현실공간의 의사소통보다는 가상 공동체의 비언어적 소통으로 대치된다. 한마디로 기술 의존적 사고방식이 도덕적 품성을 대신한다.
기술의 세계화는 전통을 해체하였고, 이는 전통에 뿌리내려 있으면서 사회통합의 든든한 끈이었던 정당한 권위를 무너뜨렸다. 권위의 해체는 존경할만한 어른이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통령, 경찰, 소방수, 선장, 선생님, 아버지의 권위가 보호되지 않는 사회에서 도덕적 강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적 대 붕괴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사회질서는 모색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성취와 세계일류는 고도한 불신의 땅에 세운 바벨탑에 불과하다. 세상은 결코 퇴행하지 않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척 하는 자, 힘 있는 자, 많이 가진 자일수록 부정의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이 인간사의 법칙이라고 자괴해서는 안된다.
후기 기술사회의 인간 교육은 문명을 도덕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강제된 공적 제도’를 시급히 마련하여야 한다. 기술 문명의 도덕화는 성숙한 시민사회, 일류 국가로 가는 길에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의 강(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