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깊어져 마음마저 팍팍해질때 가장 가까운 이와 나누는 교감은 큰 힘
아주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바라나시국의 왕자가 부왕의 미움을 사서 궁에서 쫓겨났습니다. 부왕은 손톱만한 금붙이도 지니지 못하게 그야말로 발가벗겨서 아들 내외를 내쫓은 것입니다.
깊은 산 속으로 내몰린 왕자와 왕자비는 매일같이 산으로 들로 다니며 근근이 끼니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는 사냥하러 나갔다가 운 좋게도 큰 짐승 한 마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왕자는 의기양양해 집으로 돌아와 포획물을 아내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수확이 아주 좋았소. 어서 불을 피우고 이 녀석을 삶구려.”
아내도 모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서둘러 불을 피우고 솥에 사냥감을 넣었습니다. 한참을 삶다보니 자작자작하게 물이 졸아들었습니다.
‘저런, 어서 가서 물을 길어와야겠다.’
아내는 남편이 요리를 지켜봐 주리라 생각하고는 물을 길러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배가 너무나 고팠습니다. 슬쩍 솥 있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남편은 뚜껑을 열고 솥을 들여다보다 그만 유혹을 참지 못하고 채 익지도 않은 고기를 꺼내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때마침 아내도 자리를 비운 터에 배도 고팠고 모처럼 먹게 된 고깃덩이다보니 남편은 아내 몫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죄다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야 물을 길어서 돌아온 아내.
그녀는 솥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여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예요? 솥 안의 고기가 어디로 사라진 거죠?”
아내는 짐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황당하여 남편에게 이렇게 물어나 본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 남편의 대답을 좀 들어보십시오.
“어? 잘 모르겠는데…. 아! 맞다. 아까 보니 그 녀석이 되살아나서 솥뚜껑을 열고 제 발로 달아나버리더군. 숲 쪽으로 정신없이 도망치던 걸.”
남편은 딱 잡아떼었습니다. 아내는 계속 추궁했지만 남편의 태도는 너무나 완강하였습니다. 남편의 그처럼 진실하지 못한 태도에 아내는 질리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그 일을 묻지 않았고 입에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은 복권되어 신하들의 간청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자연히 아내도 왕비가 되어 궁궐로 돌아갔습니다.
왕은 깊은 산 속에서 자신과 함께 고생해온 아내에게 그 나라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선물하였습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을 만큼 귀하디귀한 보석을 받았건만 왕비는 조금도 기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왕이 물었지요.
“왕비여, 이 나라를 다 팔아도 살 수 없는 비싼 보석이오. 그런데 당신의 얼굴을 보니 어째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 것 같소. 대체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그제서야 왕비는 오래 전 산 속에서 가난하게 지낼 때 자신을 속인 남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가를,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될 것을 딱 잡아뗀 그 진실치 못한 남편에게 얼마나 실망하였는가를 담담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때 비록 우리는 산 속으로 쫓겨난 신세였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어서 두렵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견딜 수 있었고 산짐승의 위협도 당신이 있어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산 속의 생활이 조금도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도망치고픈 유폐생활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어도 더 이상 내게는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되지 못하였습니다.”<불본행집경> 제12권
경전에서는 이 왕자가 바로 지금의 석가모니이고, 왕자비는 야소다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생의 일이 있었기에 야소다라는 싯다르타 태자가 값비싼 장식물을 아무리 많이 선물해도 반갑게 받아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난할 때 그 사람은 자기 본능에 가장 충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배고픔에 더 절실하고 자기변명에 더 매달리고 가까운 이에게 품는 서운한 감정은 더 깊어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난한 이들이 무척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그 사람들의 마음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가난을 달래줄 수 있을까요? 야소다라의 전생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솔직한 마음의 교감, 가난한 배우자를 향한 도탑고 변치 않는 배려…. 분명 이런 것들이 가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