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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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난·마명·용수·세친을 선종조사로 끌어들인 이유/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모든 종파 종합하고 있다는 점
과시하려는 선종의 의도 엿보여

선종의 법맥도를 살펴보면 특이한 것이 눈에 뜨인다. 아난존자를 필두로 세친 마명 용수 등 전혀 선종적 이미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선종의 조사로 편입 되어버린 것일까? 만약 다시 환생하여 이 전등법계도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실까 자못 궁금하다. 위상을 제대로 부여해 놓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긍정하실까? 아니면 이맛살을 찌푸리고 난 후 그냥 모른척하면서 지나가실까? 그 해답은 아마 이럴 것이다. 선종승려로 출가해 있다면 전자일거고 그렇지 않다면 후자일 것이다.
<조당집> ‘가섭’편에는 제1차 결집에 참여하지 못한 아난존자의 고뇌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는 부처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겼고 계를 범한 적도 없는데 왜 깨치지 못했는가?”
그 누구보다도 신심있고 투철한 지계의식으로 잘 살았노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던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였다.
‘왜? 왜? 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밤새도록 거닐다가 새벽이 되니 몹시 피곤하여 잠시 누우려는데 머리가 목침에 닿기 전에 깨달음의 지위를 얻었다.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한 채 곧장 결집장소인 빔빌라굴로 가서 돌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문고리 구멍을 따라 들어갔다.
‘왜?’라는 의문은 의단이 되었고 그것은 하룻밤의 용맹정진으로 이어져 마침내 머리가 목침에 닿는 순간 깨침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일부 다른 문헌에는 결집장소에서 쫓겨난 아난이 대분심을 일으켜 절벽 위에서 졸음을 쫓기 위해 한쪽 발로 서서 용맹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쨌거나 아난존자가 선종적인 방법론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결론은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마명 역시 그의 스승 11조 부다야사와의 대화에서 선사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가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지금 모르는 그것이 부처이니라.”
선종의 서천조통설의 특색은 마명(12조) 용수(14조) 세친(21조) 등의 인도대승불교 각파의 조사들을 선종의 전법조사의 한 사람으로 끌어들인 것은 선종이 종래의 모든 종파를 종합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불교전체를 선의 실천으로 통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금에도 근래에 돌아가신 어른스님들은 이판사판을 막론하고 비문에는 ‘선사’ ‘대선사’ 칭호로 불리운다. 살아있는 사람도 누구든지 ‘00수좌’라고 불러주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배려한 호칭이 된다. 수좌는 수자(修者)가 언제부턴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수자는 수선자(修禪者)라는 말이다. 진짜수좌(首座)는 총림에서 방장 다음의 가장 윗자리에 앉는 어른을 가리킨다. 그렇거나 말거나 수자를 수좌라고 부르는 것이 이미 통용되고 있으니 그냥 그대로 사용하면 될 일이다. 어쨌거나 수좌(수자)는 언제부턴가 선종의 모든 승려를 부르는 호칭으로 굳어졌다. 선종의 입장에서는 설사 도심지 포교당에서 살고 있더라도 살고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선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좌’라고 불리더라도 별로 잘못된 일은 아닌 것이다. 이래저래 선종적 정서는 출가자 모두의 면면에 흐르는 어쩌면 또하나의 업(業)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서론은 이정도로 해두고 이후부터는 처음 의도한대로 선종승려의 재미있는 일화를 통하여 수행과 삶이 둘이 아닌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이 시대를 밝힐 수 있는 지혜를 얻는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200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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