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비구니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이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의식을 일깨운 그 비구니 스님은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여전히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법의 판결이 난 문제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평행선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결국 한 비구니 스님의 고귀한 생명이 스러질 아슬아슬한 낭떠러지까지 치닫고 있다.
물론 스님은 생명을 버릴 생각을 해서는 안되고, 또 그렇게 생명을 잃도록 방치해서도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스님이 모두 한 걸음 물러서는 길 밖에 없다. 너무나 간단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구태여 하는 이유는 이 상식이 너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하는 단식에 대해, 단지 당신의 목숨이 위태로우니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 목숨을 건 이유에 대해 이해하고, 최소한의 조치나마 목숨을 걸 이유를 해소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경우 그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은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믿을 수 없는 환경영향평가를 바탕으로 노선이 결정되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것이 법적으로 정당한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외면적으로는 타당성을 갖추었으나 그 결과는 도롱뇽을 비롯한 많은 생명을 앗아갈 사이비 타당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몸짓이 바로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인 것을 정부는 모른다는 것인가? 그러한 사이비 타당성에 의해 수없이 저질러진 무차별한 환경생태계의 파괴에 대해 무감각해 왔던 정부와 국민 모두를 일깨우는 처절한 몸짓이 바로 지율스님의 단식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납득할만한 대응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율 스님은 우리 온 국민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의식을 일깨운 소중한 분이요, 그 생명은 당신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자리잡게 한 천성산만큼이나 무거운 것이다. 천성산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천성산보다 무거운 당신의 생명을 손상하시지 말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자리잡은 천성산을 돌보는 마음으로 자중자애하시기를 손모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