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국방부 대변인의 성명이다. “지휘관의 인격에 대한 인식이 문제다.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인분을 먹이겠는가?” 국방부 장관이 사건의 현장으로 가서 훈련소장과 기타 지휘관들에게 질책한 말이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방부장관이 언급한 말대로 인격을 갖춘 지휘관이나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났다. 각종 언론매체나 네티즌 등 여론은 한결같이 훈련병에 대한 가혹행위를 질타하고 특감을 벌이는 등 부산한 움직임이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군대생활을 경험한 모든 남성들은 시대에 따라 가학적인 형태나 심도에 차이가 있을 뿐 군생활의 오랜 관행으로 치부한다. 군 생활 당시는 가혹행위에 대한 증오를 안고 살지만 전역을 하고 나면 그 또한 즐거운(?) 추억거리로 여기는 관행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영화가 있다. 신병을 훈련하여 전장에 투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학행동과 이에 반하는 사병의 갈등을 처절하게 보여준 내용인데 조교는 신병을 앞에 두고 “지금부터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격권을 박탈하는 무지막지한 말이다. 신병이 전장에서 소모될 소모품임을 강조하고, 고된 훈련만이 전장에서 살아남는 조건이 된다고 역설한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혹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막상 전투에서 전사를 하면 그나마 박탈된 인격은 폐품으로 처리된다.
부상자에 대한 군병원의 처리는 민간에서의 응급개념을 뒤집는다. 치료우선 순위는 경상자와 계급. 당연히 장교 우선이고 경상자는 빠른 치료 후 전장에 재투입한다. 이렇게 본다면 군인의 존재이유나 훈련의 과정, 목표가 가학적인 요소를 내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이 일반인의 상식과 가치가 배치되는 충돌점이다. 전장에서 서로 적군을 죽인다는 것은 가장 가학적인 가혹행위인데 이를 여러 가지 사회학적인 논리로 타당성을 설명하지만 정신의학적인 개인 내면의 욕구를 바탕으로 본다면 가학성의 확대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무의식적 본능에는 서로 상반되는 욕구 즉 파괴적인 공격 욕구와 생산적인 성 욕구가 병존하며, 이런 상반된 욕구의 절묘한 조화와 평형이 생명 유지와 인격 발달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일반인은 공격성의 표출을 억압하거나 순화ㆍ대리 충족시킴으로서 직접 파괴로 이어가진 않는다. 그런 상황을 건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어떻게 하면 공격성을 자극하고 적을 향해 폭발시킬까에 집중한다. 일반인과는 반대로 가학적이고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양태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적군을 소멸시키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군인은 폭력의 잠재력을 부각시키고 ‘전쟁’이라는 가상 전제 하에서 절치부심 훈련해야 한다. 그 가학적 공격성 향상에 여러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은 당연히 일반인의 상식과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군의 잣대로 일반인을 재단해서도 안되며 일반인의 가치체계로 군을 재단해서도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쪽은 공격성의 표출을 다른 한쪽은 공격성의 억압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점을 인정하더라도 사람에게 인격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주문하고 싶다. 이 인격에 모욕을 가하여 분노를 촉발시키는 방법은 지혜롭지 못하다. 훈련을 시키는 지휘관의 잠재의식이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대 명제를 부탁해 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처벌이어야 하고 지휘관은 마땅히 그런 기술을 익혀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