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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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덧없다, 참 덧없다 ②/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경전을 읽을 때마다 좀 아쉬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부처님께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내용이 그다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의 인도땅이라면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공해도 전혀 없었고 콘크리트 투성이의 살풍경한 도시도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 우리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자연주의이니 웰빙이니 하는 것들이 조금도 인위적인 힘을 띠지 않고 곳곳마다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나마 저녁해가 토해놓은 노을로 붉게 타오르는 상두산의 풍광을 바라보는 경을 발견하였습니다만 부처님은 엉뚱하게도 이렇게 ‘감탄’하십니다. “보라, 세상은 불타고 있다. 사람도 저와 같이 불타고 있다. 눈이 타고 색이 탄다. 귀가 타고 소리가 탄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불타고 있다.”(<잡아함경>8권197경)
자연에 묻혀 계절의 추이를 노래하면서 그에 은근히 깨달음을 향한 납자의 마음가짐을 실어보는 수행자들의 멋진 글귀가 세상을 감동시키는 요즘의 서정으로 볼 때 부처님은 멋도 없고 아름다움도 모르는 분이심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구 곳곳에서 전해오고 있는 자연재해 소식들은 이런 저의 생각이 얼마나 용렬하였는지를 단번에 일깨워줍니다.
<기세경>이라는 좀 길이가 긴 경이 있습니다.
이 경에는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 되는 네 가지 현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머묾, 세계가 머문 뒤에 파괴됨, 세계가 파괴된 뒤에 다시 생김, 세계가 생긴 뒤에 머묾이다. 이렇게 세계가 이루어졌다가 무너지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된다.”
이런 되풀이˜는 일련의 과정은, 이루어지고(成), 그 상태로 잠시 머물다가(住), 파괴되고(壞), 그렇게 파괴된 뒤에 텅 비고 만다는(空) 성주괴공의 네 가지 모습으로 요약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회성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쉬지 않고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생노병사라는 네 가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지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주변에서 그런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인간에 비해 말할 수 없이 긴 우주의 차원으로 눈을 돌려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하루살이 같은 인간들은 그래서 자신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영원성을 툭하면 자연에 견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거나 사군자의 기상을 배워야 한다거나 세상이 무너져도 변절하지 않는다거나(이 말은 그만큼 세상이 영원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태산 같은 믿음을 품었다거나 혹은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는 삶을 살자고 노래하였으니까요. 이 얼마나 짧고 얕은 식견의 소치요, 얼마나 현란한 세 치 혀끝의 장난입니까?
“나면 죽지 않는 자가 없으며, 천지에는 무너지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천지가 영원한 것이라 여기지만 부처는 천지가 허공과도 같은 줄 알고 있다. 천지도 성패(成敗)가 있거늘 몸을 버리지 않는 자는 또 어디에 있겠는가.”(<불반니원경>)
부처님께서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우주의 이런 긴 주기를 한눈에 보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매우 크고 넓으나 대문은 꼭 하나뿐이고, 그 안에 1백 명, 2백 명 내지 5백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너무나 낡아서 벽과 담은 무너지고, 기둥뿌리는 썩었으며, 대들보는 기울어져 위태롭게 생겼으며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나 전체가 한창 타오르고 있는” 집일뿐이었습니다(<법화경 비유품>).
자전과 공전을 쉬지 않는 지구의 모습을 들여다보십시오. ‘지구’라고 한 마디로 쉽게 표현하고는 있습니다만 그 속에는 인간을 제외하고도 얼마나 많은 생명체와 에너지들이 담겨 있습니까? 그것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달라지고 변해가며 무너지고 새로 만들어지면서 우리를 담고 있는 그릇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중생들 역시 잠시도 쉬지 않고 태어나서 늙어가고 무너지고 있거늘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을 내고 제 마음에 든다고 애착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중생들이 얼마나 가여웠을까요? 삼계가 불타오르는 집이라는 탄식을 토해내신 것을 보면 ‘이 중생들은 제 몸과 지구에 얼마나 더 무상한 일들이 펼쳐져야 그런 미련과 무지를 떨칠 수 있을꼬’하는 깊은 안타까움이 생생하게 전해져 옵니다.
200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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