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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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덧없다 참 덧없다 ①/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존엄했던 존재 숨 끊기자 한순간에 부패
귀천 가리지 않는 무상의 이치 눈으로 확인

옛날 성안에 연화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매춘부였습니다. 얼마나 자태가 고운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은 그녀와 하루를 보내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연화에게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그래, 출가하여 스님이 되면 여생을 착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연화는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샘물을 만났고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혔습니다. 그러자 샘물에 여전히 빼어나게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순간 연화는 ‘아차’ 싶었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답기도 쉽지 않은데 왜 이런 미모를 버리고 사문이 되려 하였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마음껏 즐기고 출가 같은 건 뒤에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생각하고서 발길을 돌렸을 때 부처님께서 연화를 교화하시려고 그녀보다 더욱더 아름다운 여인을 변화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두 여인을 샘물가에서 마주치게 하였습니다. 두 여인은 이내 벗이 되었고, 연화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에게 이런저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던 그 고운 여인은 몹시 졸린 듯 연화의 무릎을 베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이내 아름다운 눈을 감고 잠이 드는 순간 갑자기 이 여인은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아름답던 여인의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백옥 같던 얼굴은 썩어 문드러져 구역질이 날 정도의 악취를 풍겼고 곱고 팽팽하던 배는 부풀었다 터지더니 벌레가 기어 나왔습니다. 이빨은 빠지고 머리털이 떨어졌고 사지는 고스란히 허물어져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연화는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진짜 조금 전의 그토록 아름답던 여인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렇게 덧없게 되었는가! 그토록 곱던 여인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말았으니 내가 어찌 영원한 아름다움을 보장받을 수 있으랴. 이제 다시 부처님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부지런히 수행하자.’
연화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을 확인하신 뒤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믿지 못할 네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젊은이도 결국은 노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건장한 이도 마침내 죽음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일가친척이 한데 모여 즐겁게 살다가도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넷째는 아무리 태산처럼 재산을 쌓아둔다 해도 결국은 다 흩어지고 만다는 사실이다.”(<법구비유경>제1권)
지난 12월26일 지구 역사에 대재앙으로 기록될 끔찍한 자연재해가 남아시아에서 일어났습니다. 현재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방이 묘연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희생이 된 사람들 중에 애틋한 사연이 없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희생자들의 사연을 듣자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들에게 그 지역은 파라다이스였고, 유토피아였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싶었고 부부간의, 혹은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고, 효도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재앙의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신을 밟고 다녔다거나 시신이 부패해서 더 이상 신원확인은 어려울 것이라거나 부패한 시신에서 나는 악취로 견디지 못하겠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런 말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고 직후에는 그나마 여전히 아름답고 싱싱한 모습을 가족들의 가슴에 남겨주더니 하루 이틀 지나면서 시신은 이제 전염병을 일으키고 악취를 풍기는, 빨리 처리해야 할 ‘고민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토록 귀하고 존엄했던 존재가 어찌 숨이 끊어지자마자 한 순간에 그토록 가치를 상실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길을 저 역시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니 비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살아난 사람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세계 각국의 숭고한 구호의 손길이 있어 덧없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맛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재앙을 통해서 확인할 것이 ‘따스한 구호의 손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 절세가인이 연화에게 보여준 그 무상의 이치를 우리는 지금 15만 건이나 되는 실례를 통해서 눈으로 확인한 셈입니다. “재앙이 갑자기 찾아오니 피할 길도 없느니라.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일단 죽으면 몸이 썩어 없어지니 속절없이 아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라는 <자비도량참법>의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200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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