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선종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것이 선종사를 서술하는 모든 편찬자들의 화두였다. ‘무슨 소리냐?’고 모두가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종사(禪宗史) 즉 <전등록(傳燈錄)> 서술자들은 이 문제 앞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화엄종 천태종 율종 법상종 등등 많은 종파불교가 나름대로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대 속에서 후발주자인 선종의 역사적 정통성 확보는 선종의 명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선종이야말로 부처님의 사상적 정통성을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은 종파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그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작업이 법맥도의 완성이다. 인도의 부처님에서 가섭존자를 거쳐 달마대사 혜능 스님을 잇는 33조사라는 계보의 확립이다. 이 삽삼(?三)조사의 법계를 통하여 부처님은 선종의 제1대 조사 즉 대선사로서 자리매김되었던 것이다.
사실 부처님에게서 선사적인 캐릭터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종의 교판(敎判)인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사상적 기반이면서 상징적 사건인 ‘염화미소’는 나중에 방장실을 염화실이라고 부르게 된 근거가 된다. 이처럼 선종은 ‘부처님은 선사이다’ 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세존께 어떤 바라문이 찾아왔다.
양손에 꽃 두송이를 양손에 들고와서 공양을 하고자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버려라.”
바라문이 왼손의 꽃 한송이를 버렸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버려라.”
바라문이 다시 오른손에 들고있던 꽃 한송이를 마저 버렸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버려라.”
이에 바라문이 말했다.
“저는 지금 빈 손으로 서 있거늘 다시 무엇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에게 그 꽃을 버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 네가 육진(六塵)과 육근(六根), 육식(六識)을 일시에 버려서 버릴 곳이 없는 곳이라야 그 때가 생사(生死)를 면하는 곳이니라.”
이 말을 마치자마자 바라문은 그 자리에서 깨쳤다.
부처님을 방장스님으로 대치시키고 바라문을 만행다니는 납자로 바꾸고 무대를 중국의 어느 총림으로 옮겨놓으면 바로 선문답의 전형적 양식이 되어버린다.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