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에 들어가며
오늘날 서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유물론적 질병관과 건강론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일고 있다. 그 진원의 하나는 바로 치유와 더불어 영성을 아우르는 고대 인도 및 티베트의 전통의학 사상이다.
세계 4대 전통의학의 하나인 티베트의학에서는 인체를 단순한 생명유지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몸(body), 마음(mind), 그리고 얼(spirit)의 전인적 건강성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편, 즉 우리 인간의 가장 지고한 가능성에 이르는 교량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티베트의학에서는 신체를 포함한 물질세계(색계)는 대부분 개인마다의 사적인 지각(perception)의 산물이며, 신체를 질병이나 건강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티베트의학은 최근 의료계 일각에서 전체성의학, 전일의학, 전인의학, 통합의학 등으로 표방하는 새로운 세계의학의 흐름에 충실한 ‘오래된 미래의학’의 한 전범이라 할 수 있겠다.
마침 근래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건강의 상태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함을 말한다”에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건강해야 참으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기존의 건강(health) 개념을 새로 개정한 바 있다. 아마도 티베트의학이야말로 그러한 WHO의 ‘건강’ 규정에 충실하고, 완성도에 있어서도 세계 어느 전통의학에도 전례가 없는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자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 의학상의 한 전범임에 틀림없다.
티베트의학은 기본적으로 불교적 세계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티베트의학의 가장 중요한 기본 의서인 <감로정요팔지비결속>(이하 ‘사부의전’)은 네 부의 경전, 총 156장 5,900송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불경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사부의전에는 발생학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물학 진단학 산부인과학 소아과학 정신과학 외과학 독물학 노인병학 양생학 그리고 불임학 등 현대의학에서 세분화된 거의 대부분의 의학분과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의학에는 고대 페르시아-희랍의학에서 인도 아유르베다의학, 그리고 중의학 등 인접 주요 문화권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당대의 최신 의학지견들이 집약되어 있다.
2,500 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서구 현대의학의 대증요법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학의 보고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티베트의학의 면면을 독자들에게 부담스럽지 않도록 가급적 평이한 문체로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티베트 의학은 요즈음 화두로 떠오른 ‘참살이(well-being)’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고, 물질적 풍요 속에 날로 피폐해지는 현대인의 정신적 빈곤을 채울 감로와 같은 자양분이다.
박물관에 한갓 역사적 유물로 전락한 ‘화석 의학’으로서가 아니라 북인도 라다크에서부터 네팔, 부탄, 시킴, 티베트 등의 히말라야 불교 문화권과 몽고, 중국 동북3성, 구소련의 바이칼호 부리야티아공화국에 이르는 광대한 중앙아시아지역까지 온갖 병고와 무명으로 시달리는 중생 구제에 엄연한 ‘제도권 의학’의 한 축으로 살아 숨 쉬는 티베트의학. 그 티베트 의학의 지혜가 현대불교신문의 독자 여러분과 이웃에 한가닥 청량한 법음으로 각인되어 두루 회향되기를 간절히 발원하며 글을 쓰고자 한다.
■ 김재일 교수는 1956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83년 전남대를 졸업하고 86년 고려대 대학원을 마쳤다.
95년 독일 빌레펠드(Bielefeld)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 연구강사를 거쳐 현재 조교수로 재직 하고 있다. 최근 문을 연 ‘한국티베트의학원’의 원장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