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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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네 부류에도 못 드는 ‘우리’/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끔찍한 집단 성폭행 사건에 무책임한 언론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 제자들을 불러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말이 있다.
첫 번째 말은 안장을 올려놓고 채찍의 그림자만 보여주어도 달리는 말이다. 말을 모는 사람의 기미를 잘 관찰하여 적당하게 속도를 맞추고 방향을 잡기 때문에 마부의 의도대로 따라 행한다.
두 번째 말은 채찍 그림자를 보고 정황을 알아채는 능력은 없지만, 채찍이 그 털끝을 스치기만 하면 곧 놀라서 말 모는 이의 마음을 어느새 살피고는 적당한 속도와 방향을 잡아서 달려가는 말이다.
세 번째 말은 채찍 그림자를 보거나 채찍이 털끝에 스쳐도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지만, 채찍으로 살갗을 조금 때리면 곧 놀라서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살피고는 적당한 속도와 방향을 잡아서 달려가니, 등에 채찍이 떨어져야 달리는 말다.
네 번째로 좋은 말은 채찍으로 등을 얻어맞고 고삐를 잡아채야 달리는 말이다. 이 말은 그 어떤 기미도 알아채지 못하다가 제 몸에 채찍이 모질게 와서 박혀 상처가 나야만 비로소 깜짝 놀라 수레를 끌고 달리는 말이다.
바른 법을 공부하는 사람에도 네 부류가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이웃 마을의 누군가가 병들어 고통 받거나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는 말만 듣고도 생사를 두려워하여 바른 생각을 일으켜 열심히 공부한다. 이는 마치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곧 정황을 파악해 달려 나가는 첫 번째 말과 같은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이웃 마을에서 누군가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곧 생사를 두려워하여 바른 마음을 일으켜 열심히 공부한다. 이는 채찍이 털끝을 스치기만 해도 어느 새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따라 달려 나가는 두 번째 말과도 같은 사람이다.
세 번째 사람은 앞의 두 사람 같지는 않지만 친척이나 친구, 자기 동네 사람이 병들어 신음하다 죽는 것을 옆에서 직접 보아야 두려운 마음을 일으켜 열심히 공부한다. 이는 살갗을 조금 맞고 나서야 비로소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따르는 세 번째 말과 같은 사람이다.
네 번째 사람은 제 자신이 늙고 병들어 고통 받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생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서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은 채찍으로 살이 패이고 뼈까지 다치고 나서야 비로소 달려 나가는 네 번째 말과 같은 사람이다.”
<잡아함경>에 들어있는 ‘채찍 그림자의 경(鞭影經)’에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한 해가 서서히 그 긴 그림자를 접어가고 있습니다. 올 한해도 역시나 수많은 사건들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모(歲暮)의 신문은 또 한번의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밀양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 사건이 그것입니다. 피해자가 중학생이고 가해자가 다수의 고등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한데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 사건을 풀어가야 할 책임이 있는 어른들의 마음자세와 행동거지입니다.
도대체 뭐가 사건의 진실인지도 모르게 번져버린 데에는 인터넷을 포함한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게다가 사건만 띄워놓았을 뿐 전문가의 조언이나 해결책을 들려주려는 진지한 자세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이 저 혼자 정신없이 튀겨 놓고 가버리니 다급해진 사람은 사건을 해결해야 할 일선 경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랴, 가해자와 피의자들을 조사하고 분류하랴, 사회에서 마구잡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질책을 감당하랴, 그리고 ‘자기 고장의 명예’를 지키랴 아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 교육당국과 그 학생들의 선생님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 채찍이 자기 살을 때려서 피가 나고 뼈가 허옇게 드러난 지경인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보기만 해도 우리의 청소년들을 염려해야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이미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너무나 태평스럽습니다. 자기 자식이 당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아님 자식은 그만두고라도 자기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만약 부처님이 계시다면 위의 네 가지에 틀림없이 하나를 더하셨을 것입니다. 고통이 이미 침범하여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제 몸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는 중증 마약 중독자와 같은 부류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류에 분명히 이 사건과 연관된 무수한 우리 한국 사람이 들어간다는 것도 아울러 강조하셨을 것입니다.
200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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