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출판된 <문제는 항상 부모에게 있다>의 저자 초청강연회 관계로 지난주 잠깐 한국에 다녀왔다. 때마침 한국에서는 고교생이 집단으로 여중생을 성폭행한 사건으로 수능시험 부정에 이어서 또 한번 우리 교육 현실의 암담함을 절감케하고 있었다.
강의가 있던 날 아침, TV의 한 프로에서 여중생 집단 성폭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제작진들은 사건의 원인을 청소년의 성의식 결여와 교육의 허술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건이 발생한 학교를 방문해 교사와 인터뷰를 하고 해당 교육청 관계자와 교육의 개선점을 찾는 것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를 지켜보던 나는 암담함을 넘어서서 일종의 절망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성폭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 근본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또한 문제의 결과를 제거할 수도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번에 발생한 여중생의 집단 성폭행의 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성폭행 사건에서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그건 학교나 교사, 교육청이 아니고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인성의 근본 바탕은 적어도 열살 이전, 그보다 훨씬 이전에 완성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성폭행이나 강간살인 등의 극단적 공격성은 사회구조나 교육적 환경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인성이 절대적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위주의 학교교육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인성의 바탕이 길러지는 곳은 가정이고 부모다. 이번 사건에서 성폭행한 아이들의 부모가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을 협박한 사실만 보더라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더욱 슬픈 일은 사건을 담당한 일부 경찰관들 자체가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가해자들을 훈방조치했고 피해를 입은 어린 여학생들을 도리어 욕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리한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의 열풍으로 부모들과 아이들 모두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 결과 성적과 점수를 아이의 인격이나 품성으로 혼동하는 부모와 선생님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됨됨이와 그릇을 키우는 대신 외우지 않아도 될 온갖 잡다한 정보들을 기억하고 저장하는 창고로 전락시키고 있다.
최근에 미국 플로리다주에 살고 있는 두 부부가 집안일을 돕지 않고 옷을 아무데나 벗어던지는 등 기본적인 도리조차 지키지 않는 아들과 딸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내용이 보도됐다. 이들 부부는 정원에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 먹으면서 두 아이들의 반성과 태도변화를 호소하고 있다. 아들은 파업 닷새째 여전히 본체만체하고 집을 들락거리고 있고, 딸은 3일째 되던 날부터 자신의 빨래를 직접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 부부 역시 자식을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자식의 문제를 깨닫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가 그나마 방법의 효율성을 떠나서 부모로서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하물며 자기 아들이 나이어린 여학생을 그것도 집단으로 성폭행한 행동을 놓고 오히려 감싸고 피해자를 욕하는 우리의 부모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말로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면 학교나 교육청보다는 그런 자식을 낳고 기르고 두둔하는 부모부터 먼저 면접하고 그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보다 시¸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