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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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끝>경전읽기와 마음공부/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부처님 가르침 자기 삶에 접목하려면 항상 깨어있는 생각으로 변화 추구해야

생명체는 육체를 지니고 있는 한 태어나서 열역학적 법칙에 따라 반드시 죽게 되는 일과성(一過性)을 지니며, 또한 자식이라는 또 다른 분신을 태어나게 함으로서 생명체의 끝없는 반복을 되풀이 하게 된다. 이러한 우리 삶의 일회성과 반복성을 들여다보면 부처님 말씀의 뜻을 잘 새길 수 있다.
어느 현자가 죽기 전에 자신의 온 삶을 걸고 해결한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언급해 둔다 해도, 이미 이천 오백년 전 부처님의 설법이 팔만사천경으로 기록되어 있다한들,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이 이미 이천년 전에 쓰여 졌다 해도 그것은 그저 앞서 간 이들의 기록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것을 책으로 남길 수는 있으나 결코 타인에게 줄 수는 없다. 타인에게 줘봤자 머리로는 이해할지 몰라도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옆에서 말하거나 책을 읽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스스로 그 뜻을 알고 있을 때 공감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성현의 말씀을 아무리 어려서 접한다 해도 그러한 기록이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있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삶을 걸어가면서 보고 느껴야만 알게되는 것이다. 어린이가 선인이 남긴 모든 삶의 지혜를 삶 속에서 스스로 알게 될 때 쯤 되면 이제 남은 흰머리와 함께 담담한 미소만이 남는다.
이런 점에서 독서란 일종의 도피(逃避)에 불과하다. 책은 자신이 도피할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환상(幻想)이자 꿈이다. 사람들은 책 읽기를 통하여 책 속의 수많은 꿈의 세계로 도피한 후, 그에 바탕을 두어 또 다른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고 세상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도피를 시도하게 된다. 비록 그 책이 공허한 꿈의 기록이 아니고 저자의 삶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라 하더라도 읽는 자의 몫은 항상 남겨져 있는 것이기에 독서는 여전히 도피처가 되어 버린다. 결국 부처님 말씀이 자신의 도피처가 아니라 자신의 치열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온 몸과 삶으로 말을 하고, 들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깨어있음이기에 항상 생각(觀)하고, 생각하며, 또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수행이다. 불자라면 경전이나 뒤적거리며 지식 속의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지 말고 금강경 사구게만으로도 충분한 부처님 가르침에 당당히 대면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아무리 역사의 누적이 있다고 하여도 결국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항상 제로에서 시작하여 자신만의 고민으로 자신만의 해답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 그렇기에 성자들이 남긴 말씀은 아무리 몇 천 년 전에 쓰였다 해도 우리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항상 새로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우리를 자극하며 활기에 차게 하는 것인가. 끊임없는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야말로 항상 새롭고 경이의 원천임을 아는 것이 곧 마음공부일 것이다.
200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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