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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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만물을 내 생명과 같이 생각해야
우물 안에서만 보지 말고 바다로 나갑시다!



계를 지키지 못할까 두려운데…
불교에 입문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신도 오계를 받고자 하는 불자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10계명처럼 오계를 받는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지키지 못해서 나에게 더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사실은 오계라는 것도, 일체 만물을 보더라도 내 생명과 같이 아끼면서 내 생명같이 생각하는 겁니다. 내 생명같이 생각하는데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어떠한 사정으로 또 죽일 수도 있죠. 그러나 아무렇게나 생각하면서 죽이는 게 아니라 둘로 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죽였을 때 바로 인도환생을 하면서 바로 그 살은 약으로 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생이 되지 않죠. 그런데 그거를 모르고 그저 내 생명만, 그냥 나 먹을 생각만 하고 내 잣대로 항상 남을 재는 사람들은 나는 쑥 빼 버리고 남의 생각으로 좀 들어가서 생각을 해 보면 어떻겠나 하는 소리죠.
만물을 보세요. 어떤 사람이 산속에 들어가서 도끼로 나무를 떵 치니깐 피가 주르르 흐르더라는 얘기입니다. 왜냐? 그 사람 눈에 그렇게 피가 흐른 겁니다. 나무가 그 사람하고 인연이 지어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차원이 높으니까 그때부터 도끼를 팽개치고서 나무 장사를 안 했대요. 나무 장사를 안 해도 먹고 살기가 풍족하게 됐더라는 얘기죠. 우리가 공부를 하면 직감적으로 나무도 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에 나무가 도와 달라고 이런다면 가다가 말고 돌아다보고선 뿌리가 패어졌으면 흙을 안겨 주고 ‘잘 있어!’ 하는 거죠.
그러니 마음을 잘 쓴다면 오계가 생사에 관한 건을 다 쥐고도 남음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죽어 들어가는 데도 걸림이 없고 태어나는 데도 걸림이 없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우리가 그냥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청와대를 들어가는데 무사통과로 들어갔다 왔다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가 자성삼보를 믿고 그렇게 하신다면 항상 내가 한 거를 내가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걸 내가 알지 누가 압니까. 그래서 거짓이 거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체크한다는 얘기죠.
오계를 그냥 보통 받는 게 아니라 이다음에 죽어서도 그 오계 받은 게 증명이 됩니다. 그래서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최초의 근본이고, 뭐든지 탐하지 말라고 한 것이 죄상이 앞뒤로 업이 붙으니까 업이 없게 하느라고 그렇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 항상 마음을 청정하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남한테 말을 잘못 전달해서 싸움을 붙이지 말고, 모두 화목하고 그래야 복이 됩니다. 술에 취해서 식구들을 편안치 않게 한다면 모두 불편하고 애로가 많으니까요.
그러니 항상 마음으로 불을 켜야 항상 밝아집니다. 그러니깐 이거는 정확한 반면에 공덕이 되는 거죠. 공덕이 된다면 생사윤회도 벗어날 수 있고 어떠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말로 한다고 해서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 사는 게 그렇게 우스운 게 아니니까요. 정확해요. 하여튼 끝까지 배워서 남을 건지고 나를 건질 수 있는, 나를 사랑하고 또 자비롭게 실천하는 반면에 수많은 사람들을 자비로이 건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컴퓨터의 지적능력이 높아지면…
컴퓨터의 지적 능력이 높아지면 인간 세상이 편해지는 좋은 기능도 있는 반면에 현재로서는 마음을 닦는 수행 능력이 없는 컴퓨터에게 자율에 의한 판단과 학습 능력이 부과되어지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공상 과학 소설 같은 것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대처 방향, 향후 문제에 대한 스님의 가르침을 구합니다.


우리 살아나가는 것도 보이지 않는 컴퓨터로 인해 살아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보이지 않는 자기의 생각으로 망하든 흥하든 규정지어 나가면서 자기가 자동적으로 모두 하죠? 자기 원소에서 컴퓨터 누르듯이 눌러 주니까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찰나찰나 돌아가는 거, 즉 말하자면 거기서 한번 누르고 요거 보고 또 한번 누르고 요거 보고 하는 거처럼 눌림도 받지 않으면서 그걸 스스로 생각을 내서, 생각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오는 거죠. 자동적으로 그냥 나와서 하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하고 사람이 눌러서 나오는 거하고 말입니다.
그럼 우리가 모습은 비켜 놓고 얘기합시다. 마음으로 하는 것은 일체 어떠한 문제를, 큰 회사가 망한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물질이 생겨서 다 해결을 할 수 있는 공식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면 이 사람도 쪼끔 해쳐지고 저 사람도 쪼끔 해쳐지는 거는, 해쳐지는 거는 해쳐지되 아무 큰일이 없이 해결이 난다 이런다면, 그거 생각해 보셨습니까? 컴퓨터만 눌러 보고 보이는 것만 봤지 보이지 않게 우리들의 마음이 그렇게, 이건 말로는 할 수 없으리만큼 된다는 거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를 들어서 ‘스님!’ 이러든지 ‘부처님!’ 이러든지 칠성이든지 지장이든지 부르고선 정성스럽게 하면 그것이 동일하게 마음이 전부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 예를 들어서 세 사람의 복장을 다 달리 해야 되는 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 앞에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줘야 되거든요. 아는 사람 앞에는 아무 모습으로 해 가지고 가도 그냥 대응을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배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죽어도 다 알아보고 살아서도 다 알아보지만, 이 도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죽어도 못 보고 살아도 못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컴퓨터보다도 더 무섭다고 볼 수 있죠.
컴퓨터보다도 더 무서운 게 뭐냐 하면, 이 단계는 사람이 살기 위해서 만든 거지 사람을 귀찮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거든요. 근데 지금 사람들이 잘못 생각을 하고, 게임이니 영화니 이런 거를 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거를 좋게 해서 우리가 잘 살 수 있는데 꼭 악행하고 선행하고 이렇게 싸움을 붙여서 하게끔 만드니 만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이겁니다. 그렇게 문제가 되니까 앞으로 점점 더 악하게 길어질 수밖에 없죠. 인식이 그렇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컴퓨터에 들어가서 본다면 별것도 아닌 것 갖다 붙여 놓고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그걸 죄 잊어버리고서 망하기도 하고 그런단 말입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으로 친다면 정말 언어도단이죠. 그거 3단계로 나누어서 단계가 있는데, 그럼 누구든지 빼 갈 수도 없고 알아 낼 수도 없는데 어째서 그럴까. 지금 이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지혜롭게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컴퓨터 세상이다. 또 컴퓨터를 사람이 만들어서 필요한 점을 쓰기 위해서 만든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양면을 놓고선 생각해 보시면 다 나와요. 진짜로 양면을 놓고 하는 데는, 배우기 위해서 양면을 놓고 하는 겁니다. 그거는 양면이 될 수가 없죠. 악이나 선이나 그냥 공식이니까. 그래서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이러고선 그냥 뭉개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우리가 공했으니까 죄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소리죠.
컴퓨터도 사람이 하는 거니까 그렇게 해야 될 텐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악과 선을 반반씩 가고 있는데 그것이 점점 더 불어나면, 아마 칼을 들었으면 사람 구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악하게 일어나려고 하는 기운이 더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컴퓨터도 세상 사람들이 다 쓸 줄 알아야 능률이 100%로 올라갈 수 있죠. 사람의 마음은 한 발자국을 떼어 놔도 다른 혹성에 갈 수 있다 이런 뜻이에요. 한 발자국을 떼어 놔도 다른 혹성에 갈 수 있고 하니까 컴퓨터로다 눌러서 한 발자국에 부산을 갖다 놓는다 이렇게 되죠.
근데 보살행으로 그렇게 착한 일들을 한다면 정말 이 나라가 부흥될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악한 거를 집어넣어서는 꼭 이기고 죽이고 하게끔 만들어 놓으니 그게 우리 세상살이 살아나가는 데 역행이 된다 이겁니다. 지금 컴퓨터 하나로서 세상이 평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그런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애들까지도 지금 그냥 때리고 부수는 것만 배우니 이거 되겠어요? 그러고도 다른 거는 몰라도 어른들이 싸워서 모두 망하고 그러는 걸 하지 않으면 모두 애들이 배우지 않아요. 물론 어른도 그렇고요. 꼭 도둑질하게끔 가르치거든요. 사람 죽이는 것도 가르쳐 주고 도둑질하는 것도 가르쳐 주고 그래요. 안 그런 거 같아요? 보지 않고 듣지 않은 거는 몰라요. 생전 보지도 못하고 먹어 보지도 못한 거 먹고 싶은 거 보셨어요? 보지도 못하고 먹어 보지도 못했다 이런 거 먹고 싶은 거 보셨냐구요? 그러니까 먹고 싶은 것도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것도 그렇게 나와서 보여 주고 들려 주니까 그렇게 되는 거예요.
모두 한생각에 여러 가지로 모습을 다르게 형성시켜서 내보내서 일을 하고, 원소 자체 에너지가 그렇게 그냥 있으면서 그게 허공을 돌 수도 있다, 그건 허공을 맞잡이로 하는 수도 있기 때문에 근본 에너지는 돕는 일만이 하는 거죠. 돕지 않고 한다 하면 그냥 비뚜로 나가서 그냥 개굴창에 빠지게 하거든요. 잘못하면 밀어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부처님 법이 그렇게 위대하다는 거죠. 부처님 법이 바로 사람의 법이에요. 진짜 사람의 법이요. 그래서 우리는 생명체가 이 육근에 육 팀이 있는데 있는 대로 세포가 다 다르다는 점이 있죠. 그래서 그런 거를 알고 마음공부를 해 나가시는 분들이 열심히 해 나가신다면 골치 안 아프고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의미 없는 존재인 것만 같은데…
지구라는 별도 우주의 수많은 별들 중에 하나의 별에 불과하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조그마한 생명체일 뿐이구요. 더군다나 이 지구라는 것도 수명이 다하면 언젠가는 우주 안에서 사라지고 그 자취조차도 없어지고 그러는 상태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텐데 우리가 짧은 한평생을 수행하고 공부해 간다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요. 의미가 없을 것 같죠.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라는 거는, 우리가 영원한 한마음으로 지금 공생을 하고 있고 공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바로 우리는 다시 큰 집을 지니고 살 수도 있는 거죠.
예를 들어서 지금 지구가 아무 때라도 멸한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 마음에 달려 있어요. 우리가 이 지구의 주인이기 때문이에요.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도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생각을 잘못하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고 한생각을 잘하면 지구가 순탄하게 돌아갈 수도 있는 반면에, 지구 안에도 혹성이 또 생길 수도 있어서 우리 생명이 위대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집이 또 하나 생길는지도 모르죠. 저 북극 쪽으로 말이에요. 그것도 개발할 수 있는 정신력이 인간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가깝게 다리를 놓는 셈이나 한가지죠. 지금 목성 토성 같은 데는, 물론 천왕성도 있고 혜왕성도 있고 그렇겠지마는 지금 목성 같은 데도 지구 같은 혹성이 그 안에 수도 없이 많지 않습니까? 그 큰 집 안에 또 집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듯이 우리 조그마한 요 지구덩어리 하나의 별성 자체가 우리 몸뚱이 하나라고 친다면 몸뚱이 속을 좀 보세요. 의미가 없나 있나. 많은 생명들이 자기 소신껏 분야를 맡아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 이거는 혹성이 아닌가요? 이것도 별성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이게 하나하나, 별 하나 나 하나 하듯이, 별이 그렇게 많이 떠 있듯이 우리도 지금 많은 별이 살고 있습니다. 많은 별이 지금 움죽거리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삼각원형을 이루면서 말입니다.
만약에 태양이 은하계의 가운데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 은하계는 은하계대로 입구에, 즉 말하자면 마음의 밝음에 의해서 모아져서 반사가 된 태양이 중간 지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볼 때는 가장자리에 있는 걸로 보이죠. 멀리 떨어졌으니까 바로 보일 수가 없죠. 그것을 우리가 코끼리를 장님이 만져 보고 벽 같다고 하는 거나 똑같아요. 우리가 혜안이 밝아서 직접 은하계의 그 모든 별성과 더불어 둘이 아니라면 거기서 그대로 볼 겁니다. 둘이 아니니까! 그런데 우리가 의미가 없기는 왜 의미가 없습니까? 이 지구 안에 우리가 주인인데.
만약에 이 몸뚱이 안의 생명들이 다 소멸되면 우리 껍데기는 그냥 송장이 돼 버리는데, 그건 우리의 탓입니다. 우리, 내 속에 들은 생명들이 잘해 주면 이것이 잘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속의 생명들이 잘못될 때는 이 몸도 송장이 돼 버려요. 썩어 들어가고 또는 침체돼 들어가고 피가 통하지 않고 굳어 들어가고…, 이렇게 되거든요. 그런 거와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바로 내 속에 들은 그 자체의 생명들이 한데 합쳐진 그 생명이 바로 나인 것이지 이 껍데기가 나인 것이 아니란 얘깁니다. 지금 지구가 우리의 아주 높은 것이 아니라 바로 지구 속에 들은 우리가 주인이란 얘깁니다. 이 지구를 망가뜨릴 수도 있고 잘 끌고 아주 성하게 잘 갈 수도 있어요. 주인이 잘못하면, 만약에 오는 것도 모르고 가는 것도 모를 때는 다른 혹성이 만약에 지구를 갖다가 부딪칠 때는 거기에 그냥 엄청난 구녘이 나게끔 돼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그 모든 것이, 지구뿐만 아니라 전체의 법망이 다 이렇게, 정말 천체망원경으로 자세히 보면 보일 듯 말 듯 한 그런 것이 다 세포가, 우리가 세포가 이렇게 돼 있듯이, 얽히고설키고 돼 있듯이 다 돼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몸뚱이란 말입니다, 이 지구가. 그런데 우리가 잘못하면, 우리가 이 속에서 그냥 들끓고 온통 보당을 누르고 온통 저희들이 잘났다고 막 저거 하면 한군데가 그냥 다 무질러져 버리지, 뭐. 그렇게 그냥 발칵 뒤집히면 송장 되는 거죠, 뭐. 고렇게 비유를 하는 겁니다, 내가 지금. 그거는 부정 못해요.
만약에 이 안에서 서로들 자기네들끼리 분야를 맡아 가지고 심장 공장 또 대장 공장 소장 공장, 뭐 이자 공장 콩팥 공장, 이런 공장이 많은데 이 공장에서 파벌이 생겨서 만약에 네가 공장이 더 크다 내가 공장이 더 크다 하고서 파벌이 생긴다면, 한마음으로 돌아가질 않고 파벌이 생긴다면, 우리 마음이 지금 살아나가는 데 그렇게 파벌이 된다면 이 속의 생명들도 그렇게 파벌이 생겨요. 그러니까 이 속에서 파벌이 생긴다면 그땐 뭐가 되느냐 하면, 망그러지는 거는 이 육신밖에 없어요, 망그러지는 거는.
그래서 만약에 우리 지구 안에서 세계적으로 볼 때 큰 싸움이 붙었다 하면 이건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건 전체 몸에 그냥 부작용이 오는 겁니다. 그러니 어떠한 공장에서 잘못 파벌이 생겼다, 그 공장 안에서. 딴 공장하고 붙는 게 아니라 공장 안에서, 그 안에서 생명체들이 인제 부작용이 났다 하면 그 공장이, 그 공장만 망가지는 거예요. 그래서 병이 나면, 어디가 나쁘다 그러면 그거 떼어 내야 하고 수술해야 하고 이런 게 생기는 거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내 한생각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 돼 가지고 끌고 가라 이겁니다. 그러니 생명체들이 한데 합쳐진 근원이 바로 내 잠재의식 그 자체의 참이란 얘깁니다, 이 껍데기가 참이 아니라.
그리고 이 몸뚱이를 벗었다고 해서 벗는 것이 아닙니다. 즉 말하자면 별성도 늙으면 옷을 벗어요. 저 별들도 옷을 벗고 그 옷을 벗는 반면에 바로 새 별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 하나에 별 둘이 나올 수도 있고 셋이 나올 수도 있는데, 별 둘이 나올 수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면 그건 껍데기가 돼서 떨어질 때 찌끄럭지는 어디로 떨어지는 줄 아세요? 이런 데로 떨어지지, 뭐. 저런 데로 떨어지고, 다…. 그래서 거기에서, 또 그것이 생명이 살던 습이, 우리네 왜 산소에 갖다가 사람 묻죠? 그러면 그 혼이 살던 습이 있어 가지고 ‘내가 절로 간다, 온다’ 요런 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내가 거기서 살았다’ 이러기 때문에 집에도 하나 붙어 있고 거기도 붙어 있고 저기도 붙어 있고, 죄 붙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없애기 위해서 이 공부를 하는 겁니다.



마음공부를 해서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물질적인 삶에 젖어서 살아가다 보니 수행이나 마음공부가 왜 그리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음공부를 해서 어디에다가 써먹을 수나 있는 것인지 자꾸 의문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마음공부를 해서 어디 써먹을 것인가, 또는 마음공부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고, 또 그저 왔다 갔다 하다가 병이나 나으면 고만이지, 이런 정도로만 공부를 하신다면 병 자체도 못 고치거니와 여러분 몸뚱이 속에 있는 중생들도 제도 못할 것입니다.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과학이다 뭐다 하지만 원자에서 입자가 분자로 화(化)해서 수없이 대기권을 지키고 나가는 그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거,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마음공부라는 것은, 우리 마음이 물리가 터져서 우주간 법계와 더불어 개미 한 마리도 따로 없이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마음이 얼마나 기묘하고 보배인지 잘 모르실 겁니다. 지금 보십시오. 별성이 얼마나 많은가. 헤아릴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인구는 참, 나라마다 조절할 수 있고 ‘몇이냐? 몇 억이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 별성이나 혹성이 얼마나 많은지는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관내에 있는 혹성만 하더라도 아홉 개니 열 개니 이렇게 따로 태양을 끼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서 어디다 쓸 것이냐 하지마는 선의 불종 자체는 악의 불종의 무리를 없애기 위함이요, 또는 악의 불종을 없앰으로써 금성이나 토성 같은 데도 생명의 존재가 살 수 있게, 움죽거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중요시 안 하는데 이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넓히면 크고 좁히면 작고, 고무줄 인생이라고 하죠, 그래서. 이 고무줄 같은 마음을 좀더 우리가 계발해서, 정신계로 발전을 해서 계발을 한다면, 우리가 지금 그러한 문제들도 잘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악의 종에 선의 종이 딱 거기에 입력이 된다면, 그것이 스스로서 착해지고 그 모습을 아주 밝게, 자력과 광력이 여러분에게 충만할 것이라는 얘깁니다. 믿어지지 않으시죠? 믿어지지 않아도 앞으로 믿어지게끔 될 겁니다. 아마도 이것이 증명되려면 한 백 년 거리는 두어야죠.
그러나 그 작업이 뭐가 문제냐 하면 악종, 잠들어 있는 악종을 우리가 바로 선종으로 깨닫게 해 줘야만이 그것을, 말하자면 모든 얼은 조건이나 뜨거운 조건을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는 이것이 증명도 안되거니와, 그러나 이건 엄청난 문제라고 봅니다. 이건 자동적인 끝간 데 없는 진리 속에서 우리가 회합을 하고 모두의 마음이 같이 동조하고 같이 이룩해야 한다는 문제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런 공부를 많이 해야 첫째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나쁘게 될 일이 없죠.
예전에 제가 접시비행기를 봤을 때, 그때는 몰랐는데 그 후에 생각을 하니까 ‘아, 저런 비행기를 움죽거리는 사람들은 너무 에너지가 많아서 우리들이 범접을 못하게끔 돼 있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구가 많아지는 반면에 자원이 부족해지고 능력이 손상되고 정신을 뺏기고, 이러는 수가 많습니다. 혼을 뺏기는 수도 많고요. 여러분의 집에 만약에 집 주인이 없다면 여러분은 다른 세계에 혼을 악으로 뺏길 수도 있죠. 악으로서 존재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되며 지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또 태양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태양이 끼고 돌 수 있는 그 별성들은, 그 생명들은 어떡하겠습니까? 우리의 생명과 똑같습니다. 수명이 길고 짧을 뿐이지.
그러니 여러분의 그 마음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의 그 한마음 주인공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지금 현실에 병고를 앓고 있는 사람마저도 해롭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해롭고, 어떠한 요건에 대해서든가 용도에 따라서 거기에 모든 게 달려 있으니까요. 여러분 마음이 그렇게 귀중하다는 거죠.
서산 대사는 왜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렸겠습니까? 괜히 새를 죽이려고 그랬겠습니까? 아니죠. 공부시키느라고 학인들을 위해서 떨어뜨리기도 하고 계란도 거꾸로 쌓기도 하고 그랬겠죠. 그러나 지금 시대는 또 다릅니다. 우리는 보이는 데 계란을 쌓고, 보이는 데 떨어뜨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생각에 우주를 한꺼번에 보고 돌아가야 하는 그런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한쪽만 봐서도 아니 되죠. 우주복을 입고 지금 화성에도 가고, 달에도 가고, 많은 과학자들이 선동을 해서 그렇게 가곤 했습니다. 인공위성을 띄워서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쓰고 다녔지마는,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게 전부 마음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가 하면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데 50%를 모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데 마음들하고 접근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발견이 되지 않는 것이죠. 또 한쪽에만 가 봐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지구에도 만약에 저 북극이나 남극에 침투했다고 봅시다. 사람이 살아 있다고, 산다고 생명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지구 안에도 모르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북극을 따라서 해안을 쫓아서 섬이나 이런 데는 우리가 모르는 그런 문제들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한다면서 요가를 한다, 또 나는 명상을 한다, 또 단전을 한다 이러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몸 떨어지면 다 떨어지는데 뭐가 끝간 데 없이 남겠습니까? 내가 끝간 데 없는 도리를 체득한 뒤에야 요가는 요가대로, 좌선은 좌선대로, 명상은 명상대로 내가 서려면 서고 앉으려면 앉는 거지 그게 무슨 이름이 주어지고 이름이 박혀 있습니까? 이 몸이라는 건 사대(四大)로 흩어지면 그뿐이지만, 이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영원한 것입니다. 역대 조사들이 사대가 흩어졌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역시도 그렇고요. 우물 안에서만 보지 마시고 바다로 나갑시다. 바다에 얼마나 생명들이 많은가.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도 물 밑에, 태양열이 들어가지 않는 깊은 데 있는 생명들을 건지기 위해서 파도가 치고 소용돌이를 친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셨습니까? 얼음이 어는 것도 더운 김과 찬 김을 조절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바로 도전이다, 그리고 작업이다 이런다면 그 얼음 하나도, 파도 하나도 버릴 게 없는 거죠.
차차로 여러분이 이 공부를 소중히 알고 열심히 하신다면 과학자들이 해결 못하는 것도 여러분 스스로서 해결하게, 아마 그 마음이 응해 주실 겁니다. 가고 옴이 없이 말입니다. 하는 사이 없이 하고, 보는 사이 없이 보고, 듣는 사이 없이 듣고, 자유자재권을 한 손에 쥐고 중용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실 겁니다.
200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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