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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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참 아름다운 관계, 사제지간/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사리불이 부처님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듣고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다른 종교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불을 숭배하는 신앙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가 사리불을 보자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시오! 어딜 다녀오시는 길이오?”
“부처님을 찾아뵙고 법을 듣고 오는 길이오.”
그러자 그 종교인은 딱하다는 듯 이렇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허허, 아직도 스승의 설법을 듣고 다니다니…. 여태 젖을 떼지 못하였소? 나는 이미 젖을 뗀지 오래요.”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에게 출가하기 전에 이미 자신을 따르는 제자가 수백 명이 될 정도로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부처님 계신 곳을 따라 다니며 낮은 자리에 앉아서 법을 듣는다니 제가 생각해봐도 그는 여간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존자는 태연스레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런가?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오. 그대가 벌써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요, 진정으로 의지할 만한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오. 어미 소가 있다고 합시다. 성품이 거칠고 사나운데다 젖이 적어서 아무리 빨아도 젖이 잘 나오지 않으면 송아지들은 어떻게 하겠소? 어미 소를 떠나게 될 것이오. 그러나 내가 배우는 법은 좋은 진리이고, 바른 깨달음이며, 번뇌를 없애주는 가르침이며, 의지할 만한 가르침이오. 마치 맛있는 젖이 풍부하여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항상 잘 나오기 때문에 송아지들이 떠나지 않는 어미 소처럼 말이오. 내가 오래도록 스승을 자주 찾아뵙고 그 분의 설법을 자꾸만 청해 듣는 것은 그 가르침이 바른 것이고 훌륭하기 때문이오.” <잡아함경>35권(947경)
대체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이기에 사리불 존자가 이와 같은 비유를 드는 것일까요? 스승의 깊이를 가늠할 수준의 제자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스승에 대한 진실하고 소박한 마음가짐을 끝까지 유지했던 사리불 존자는 정작 자신의 제자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도 자못 궁금해집니다.
장사꾼들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며 여기 저기 장사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마침 그들이 길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 개가 장사꾼들의 고기를 훔쳐 먹었습니다.
“저런저런, 아니 우리도 아껴 먹는 고기를 감히 개가 먹어 치워?”
사람들은 그 개를 죽도록 때리고 다리를 부러뜨린 뒤에 그냥 버려둔 채 떠나갔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사리불 존자가 천안(天眼)으로 죽어가던 그 개를 발견하였습니다. 서둘러 성에 들어가 음식을 얻어 가지고 나와 개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개는 음식을 먹고 간신히 기운을 차렸고 사리불 존자는 미묘한 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사리불 존자의 법을 들은 뒤 개는 이내 목숨을 마치고 사위국의 어느 바라문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사리불 존자가 그 집에 걸식을 하러 갔습니다. 그 집의 주인인 바라문은 존자가 홀로 걸식하러 다니는 모습을 보자 자기 아들인 균제를 그에게 출가시켰습니다. 사리불은 균제를 사미로 얻어서 기원정사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설법을 해주자 아이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마침내 아라한과를 얻고는 공덕을 다 갖추었습니다.
도를 얻은 균제 사미는 ‘대체 나는 지난 세상에 어떤 업을 지었기에 이런 훌륭한 분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을까’ 궁금해 하다 지혜의 힘으로 지난 세상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전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리불 존자님의 은혜를 입었다. 내 몸이 다할 때까지 우리 스승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리라.’
그리하여 균제는 계속 사미로 지내면서 대계를 받지 않고 사리불을 모셨습니다. <현우경>
훗날 사리불 존자가 고향에 돌아가서 열반에 들었을 때도 끝까지 그 옆을 지킨 사람은 균제 사미였습니다. 존자의 유해를 부처님에게 가지고 와서 눈물 속에서 스승의 열반을 알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입니다만, 그 깨달음이 인간 속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아름다운 사제관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꾸 우리 곁에서 큰 스승님들이 떠나가십니다. 만난 자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세상 모든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라지만 훌쩍 자리를 비워버리시는 스승님들이 못내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아직 그 젖을 못다 먹었는데 말입니다.
200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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