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 염불선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말하고 수행법을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아, 너의 뜻에는 어떠하느냐? 저 부처님을 무슨 이유로 아미타라 부르는가?
사리불아, 저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 없어서 시방의 세계를 비추어도 막힘이 없느니라. 이러한 때문에 아미타라 부르니라. 또 사리불아, 저 부처님의 수명 및 그 나라 사람들의 수명도 한량이 없고 가없는 아승지겁인 까닭에 아미타라 이름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원효는 <아미타경소>에서 “이 <경>은 곧바로 삼계를 뛰어 넘는 두 가지 청정(淸淨)으로 그 근본을 삼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도에서 능히 물러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지향점을 삼는다.
어떤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청정이라 하는가? 저 <논>에서 말하기를 ‘이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기세간청정(器世間淸淨)이요, 둘째는 중생세간청정(衆生世間淸淨)이다’하고 내지 널리 설하였기 때문입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아미타(阿彌陀: Amita)는 참다운 덕(德)을 머금고 있음을 세운 것으로 만겁에도 다함이 없는 이름입니다. <경>을 설하신 주인과 말씀하신 법(法)을 함께 들어 제목에 나타냈기 때문에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해설하자면, 정토는 아미타 부처님이 원행(願行)을 일으켜 청정으로 장엄한 국토입니다. 정토는 청정이 근본입니다. 의보(依報 자연)와 정보(正報 생명)가 청정 광명으로 빛나는 아미타의 세계입니다. 아미타는 무량수명(無量壽命)과 무량광명(無量光明)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은 무량수명과 무량광명의 덕성(德性)을 소유한 부처입니다. 정토는 자비광명의 덕상(德相)입니다. 정토는 일심의 바다입니다.
정토는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성취하는 세계가 아니라, 아미타불이 성취한 세계입니다. 우리는 아미타불이 이미 성취한 세계를 관찰함으로써 본원력(本願力)에 힘입고 자비광명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얻습니다.
염불수행의 법은 아미타입니다. 아미타는 관찰할 법입니다. 여기에 의보(依報)인 자연과 정보(正報)인 생명이 있습니다. 염불수행의 깊은 뜻은 아미타를 관찰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연과 생명을 지혜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염불은 “마음을 정토에 두는 도”이며 “유념유상(有念有相)의 수행”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토문의 염불수행은 칭명염불(稱名念佛)과 관상염불(觀相念佛)로 구별합니다. 칭명은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름으로써 믿음을 성취하는 방편이며, 관상은 지관(止觀)으로 깨달음을 성취하는 염불선입니다.
아미타 염불선은 바로 법신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일심의 진여문과 생멸문 가운데 생멸문에 해당하는 자비광명 곧 자연과 생명의 청정광명을 관찰합니다. 아미타와 관찰할 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미타→청정(본체)→번뇌없음, 무아, 무량수→광명(작용)→의보→자연의 청정광명→보신→별상→정보→생명의 청정광명→보신→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