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는 왕이 다니기 위해 깔아놓은 어도가 있다. 그것은 얇고 넓적한 박석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종묘 안에 관리사무소를 새로 만든다고 크레인으로 이들을 짓밟아 50여장이나 깨뜨려 놓았다.
이 일이 신문에 보도되자 문화재청에서는 이들 박석이 1984년에 보수하면서 새로 놓은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종묘를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 관리사무소에서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내가 경주생활 중에 즐겨 찾던 곳이 있다. 바로 기림사의 대적광전이다. 이 전각에는 모셔진 삼신불의 위용이 사람을 압도할 뿐만 아니라 배경으로 삼은 탱화도 일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이곳으로 자주 이끄는 것은 신발을 벗고 디딜 때 느껴지는 마루의 생생한 감촉이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짜릿함. 그것은 조선시대, 그것도 후기의 건축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촉이다.
거칠지만 생동감이 강렬하고 울퉁불퉁 투박해 보이지만 빈틈없이 짜여진 그러한 마루였다. 그런데 7년 전에 문화재청에서 해체수리를 하면서 옛 마루를 새 마루로 바꾸었다. 강렬한 역사의 에너지를 내뿜는 마루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 거실처럼 말끔한 마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낭패인가? 종묘의 깨진 박석 소식을 접하자 기림사의 아물어가는 상처가 다시 도진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불국사 대웅전의 마루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불국사에 가면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는데 여념이 없지만, 나는 슬며시 대웅전에 들어가 마루를 온몸으로 느껴본다.
이것은 분명 조선시대 후기의 거칠고 생명감이 넘치는 감각이다. 이 짜릿한 전율은 나로 하여금 줄곧 우리 미술에 빠지게 하는 원동력이다.
오래된 마루를 밟으며 즐길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이다. 중국도 목조건축이 많지만 의좌 생활을 하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마루 위를 걸을 수 있는 곳이 드물다. 일본의 오래된 사찰을 방문하면 마루를 밟는 색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다.
그것은 무언가 깔끔하면서 달콤한 느낌이다. 조선후기 사찰의 마루에서 경험하는 투박하면서 강렬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발끝으로도 충분히 그 나라와 그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질감, 그것은 문화재를 보수할 때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무를 자귀로 거칠지만 멋있게 다듬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솜씨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쉽게 공사를 끝낼 심사인지 거친 것을 아무런 고민 없이 손쉽게 고운 것으로 뒤바꾼다. 그러니 옛 맛이 살아날 리 만무하다.
돌도 마찬가지이다. 경주에 있는 나원리5층석탑을 보자. 이 탑은 8세기 전반의 준수한 석탑이다. 신라시대에서 보기 드문 5층탑에다 그 규모도 제법 크다.
그런데 이 탑도 언제가 보수를 한다고 헌 부재를 빼내고 새 부재를 끼어 넣었는데, 이 역시 정성스런 손길은 찾을 길이 없다. 그 옛날 신라의 석공처럼 한없는 시간동안 정으로 하나하나 쪼는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로 순식간에 갈아버린 것이다.
보수한 탑에는 신라다운 정취보다는 세월을 잃은 기계냄새가 탑 주의를 진동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구의 사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우리들은 위에만 관심을 쏟고 바닥에는 무심할까? 왜 우리들은 쉽사리 새 것으로 바꾸고 질감에는 그토록 무신경할까?
발끝에 전해지는 전율이 점점 발바닥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바뀌어 간다.